김정은 ‘文정부 北에 우호적’ 판단… 韓·美공조 균열 유도

- “文집권이 기회” 지령문 의미

“호전세력 소란 피우기 전에”
文정부때 韓·美 틈새 벌리기

“北 核포기 불가능 판단 유도”
美와 직접담판 새 국면 조성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7∼8일 독일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던 기간에 재외공관에 보낸 ‘긴급 지령문’에는 변함없는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또한 북한은 핵·ICBM 보유를 지렛대로 활용해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등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특히 북한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며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을 ‘절호의 기회’라고 표현하면서 한·미 간 균열 유도나 통미봉남(通美封南) 등 다양한 대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19일 아사히(朝日) 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재외공관에 보낸 긴급 지령문은 지난 4일 ICBM급으로 평가되는 ‘화성-14형’ 시험발사가 성공함에 따라 발송됐다. 지령문에는 “‘북한의 핵 개발 포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도록 만들라고 요구하라”, “미국과 담판을 지으라”, “압박에 더해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실현하라”는 등의 지시사항이 담겨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는 우선적으로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무리 강도 높게 북한에 제재를 가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의지는 꺾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결국 백기를 들고 협상에 응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은 핵·미사일 수단 강화로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 국면이 조성됐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궁극적으로 북·미 양자회담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해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문재인 정부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려는 시각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이 지령문에서 문재인 정부를 ‘절호의 기회’라고 표현하며 “호전세력이 소란을 피우기 전에 통일 과업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표면적으로 “미국에 굴종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해 실명은 거론하지 않는 등 비판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통미봉남을 원하면서도 유사시에는 한국을 완충지대로 활용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 원장은 “북한은 대남 온건 전선과 적대 전선을 왔다 갔다 하며 문재인 정부를 북·미 협상에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