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여유·사색… 여름 해변은 ‘철학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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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 장 루이 시아니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루이 시아니는 해변이야말로 철학 하기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한다. 스스로 ‘바다를 사랑하는 철학자’ 라니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잘 모르긴 해도 아름다운 항구도시 세트에서 태어나 자신의 작업엔 늘 바다 색깔과 섬의 향기가 묻어있다는 그는 땅과 바다의 경계인 해변에 서서, 때론 걸으며 생각하고 사유하며 철학자로 자라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해변을 철학자의 최적 장소로 꼽은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 역사를 넘어 철학의 기원에 닿아 있다. 철학이 태동한 곳이 기원전 7세기, 지중해 반대편 해안의 항구 도시 밀레투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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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터키 영토에 속하는 아나톨리 지방, 사모스섬 남쪽에 위치한 밀레투스는 기원전 1000년 이전엔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이었다. 여름이면 30도를 오르내리는 곳. 시아니는 해변에 설 때면 자신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과 바다, 폭풍에 놀라며 세상 비밀을 풀려 했던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를 느낄 것이다. 그는 해변을 거니는 우리들의 고민과 생각들은 여명기 철학자들의 사유에 맞닿아 있다고 했다.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의 원제는 ‘해변의 철학자’(Philosopher a la Plage). 탈레스이기도 하고 시아니이기도 하고 해변에서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저자는 바캉스 해변이야말로 철학자들에겐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번잡한 해변이라면 철학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데 바캉스의 해변은 겨울 해변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자신이 살던 곳, 하던 일에서 떠나 여유를 갖고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책은 철학의 역사를 읊거나 큰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집을 떠나 휴양지에 도착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를 한 사이클로 삼아 그사이 마주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취한다. 해변의 철학 사이클은 이렇다. 떠난다. 도착한다. 놀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옷을 벗는다. 자신을 북돋워 준다. 관조한다. 읽는다. 걷는다. 기뻐한다. 웃는다. 소통한다. 사랑한다. 모래 위에서 논다. 환해진다. 햇볕을 받는다. 그리고 돌아간다. 사유는 부담스럽지 않다. ‘마치 여름날 저녁 해수욕과 식전주 사이쯤 예고 없이 문득 찾아드는 충만한 순간처럼, 부담 없이 가볍고 짧게, 재빠르게 이루어지는 사색’이다.

‘놀라다’ 쪽을 보자. 해변에서 우리는 바다 위로 쏟아지는 빛, 성난 파도, 소금기 머금은 바람, 하늘을 나는 하얀 물새, 장난치는 아이들 소리. 거의 벌거벗은 채 모래밭을 메운 사람들에게 놀라게 된다. 처음 보는 풍경이든, 익숙한 풍경을 다르게 느끼든 놀람은 여행의 단골 항목이다. 저자는 이런 놀람에 대해 ‘놀라는 것 이외에 철학의 다른 근원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전하고, 놀란다는 것은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타인,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수용하는 것이며, 사유는 놀람을 안겨주는 세상에 복귀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네”라는 생각을 계기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러면 무위(無爲)야말로 행복, 자유, 치유를 주는 것으로 오히려 우리 삶이 얼마나 넘치는 과잉 활동,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흥분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그는 철학이란 엄청난 것이 아니라 휴가지에서 자신을 돌아보듯 인간의 눈높이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활동이라고 한다. 휴가를 떠날 때 들고 가 자신의 느낌, 감정과 비슷한 부분을 펼쳐 읽다가 움직이게 되면 덮고, 시간 나면 다시 펼쳐 읽으며 짧게 짧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해변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좀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기를 태양의 사색을 갈무리함으로써 세상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