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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21일(金)
멀고 먼 ‘촛불 청와대’와 ‘野大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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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같은 서울인데도 게릴라성 폭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강우량이 크게 차이가 나듯이 정치도 청와대가 있는 삼청동과 국회가 있는 여의도의 분위기 차이가 극심하다. 지난 19일 하루 동안 삼청동과 여의도는 공기부터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제외한 4당 대표를 청와대 상춘재로 초청해 첫 여야 대표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큰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하지 않나”라며 대선의 앙금을 없애고 야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이 미리 상춘재에 나와 여야 대표를 맞이하고 경내를 안내하는 등 ‘소통 이벤트’ 면에서 돋보였다.

이어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회는 스마트폰 신제품 발표회장 같았다. 세련된 프레젠테이션(PPT)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한 결의대회를 방불케 했다. ‘촛불 정신 구현이 정의(正義)’라는 대원칙 속에 100대 과제를 발표했다. ‘국민이 주인인 정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등의 구호가 행사장에 울려 퍼졌지만, 경험칙상 5년 뒤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나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같은 시각 여의도는 ‘시간이 정지된 곳’ 같았다. 7월 국회 내내 협상을 벌인 추가경정예산안은 여전히 여야의 현격한 입장 차이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조직법은 가까스로 타협점을 찾았다. 문 정부 출범 이후 2개월여 동안 국회가 한 일이라곤 중앙당에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밖에 없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이라면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통과시키면서 다른 법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07석의 자유한국당 홍 대표는 청와대 회동을 거부하면서 청주 수해 현장으로 내려가 하루 종일 일하고 온다더니 1시간 시늉만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이 ‘싸움의 천재’에겐 그저 소음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여권은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하고, 제1야당은 ‘배 째라’식 으로 나오는 이 정국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스럽다. 2020년 총선 결과가 나와봐야 뭔가 가닥이 잡힐 듯한 불길한 예감도 든다. 지금 정치의 위기는 이미 대선 전(前)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120석의 소수 여당이 국정을 주도하기 위해선 야당과의 협치와 협력이 필수다.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한 무슨 수를 써도 여당 단독으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촛불 민심’과 지지율을 무기로 삼으려 하지만 여의도에선 통하지 않는다. 의석수가 힘이기 때문이다.

100대 과제 대부분은 국회의 법안 통과가 필수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선 ‘어떻게’가 빠져 있다. 지금의 이런 국정 난맥은 촛불만 있으면 다 될 것처럼 얘기하는 청와대와 여당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설 중인 원전 공사의 일방적 중단, 최저임금 16.4% 파격적 인상, 공무원 증원, 부적격 인사들의 장관 지명 등을 보면 정책이 가져올 역효과나 피해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 자영업자들이 당장 어려워지니까 세금으로 인상분을 보상하겠다는 발상이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과 같다.

정기국회가 지나가면 문 대통령은 중간 성적표를 받게 된다. 박근혜 정권 탓, 인수위 없는 탓, 야당 탓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아무리 충격적인 사실이 나오고 ‘적폐’가 드러나더라도 국민은 “그래서, 당신은?”이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사정(司正)도 잠시 흥미를 끌지 모르지만, 장기흥행거리는 아니다. 유럽의 정당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하는 이유는 협치를 하지 않으면 정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극좌와 극우가 손을 잡는 세상이다. 내 것을 확실히 내어주고 주고 상대방 것을 받을 때만 협치가 시작된다. ‘나는 정의고 너는 적폐니까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인식으로는 어렵다. 최근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의당을 방문해 ‘대리 사과’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 실패의 근본 원인 중에는 여의도를 멀리하려는 태도가 크다. 문 대통령도 국회를 그저 발목만 잡는 곳으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말의 잔치가 아니라, 입법 잔치를 벌이려면 속히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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