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 “장르·형식 구애 안받고 내 문학 하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12권짜리 소설 전집을 펴낸 작가 윤후명 씨는 “기존 작품들의 형식에 갇히지 않는 나만의 문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은행나무 제공

등단 50주년 맞는 ‘영원한 청년 작가’ 윤후명

“이제 시-소설을 함께 쓸 생각이에요. 장르와 형식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고, 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을 할 거예요.” 작가 윤후명(71) 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이런 소감을 밝혔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세기 내공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는가 하면, 자신의 문학을 새롭게 가꾸겠다는 점에서 ‘영원한 청년 작가’의 꿈을 느낄 수 있다.
윤 씨는 오는 2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문학의집·서울(이사장 김후란)’에서 열리는 등단 50주년 행사에 참여한다. 이날 행사는 그의 문학 제자 모임 ‘문학비단길’이 주관한다. 이 모임은 박찬순, 안영실, 이평재, 최규익, 정승재, 이순임, 양진채, 허택, 이희단 씨 등 윤 씨에게 문학 강좌를 들은 후 문학계에 나온 작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이날 윤 씨의 소설 작품을 낭독하는 것으로 스승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윤 씨는 행사에서 문학 강연을 한 후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와 대담을 한다. 이어서 소설가 황충상, 시인 문정희 씨가 ‘내가 아는 소설가 윤후명’이라는 주제로 축사할 예정이다.

윤 씨는 “그런 행사 안 하려고 했는데…”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평생 문학을 하며 살 수 있게 해 준 주변 분들에게 고맙고, 또 우리 사회에 고맙다”고 했다. 그는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닌데, 마침 이달에 저의 소설전집이 나와서 더 의미가 있는 듯싶다”고 했다.

이번에 12권으로 나온 ‘윤후명 소설 전집’(은행나무 발행)은 그가 지난 4년 동안 작업한 결실이다. 등단 이후 발표한 소설 작품의 원고를 교정·보완하고 대폭 개작했다.

그의 소설은 독특한 스타일로 마니아 독자를 거느려왔다. 서사의 관념을 넘어서는 몽환적인 이미지, 그로 인해 가슴에 깊게 스미는 서정이 특질이다.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윤 씨는 “한글로 글 쓰는 것이 제가 태어난 기쁨 중의 으뜸”이라고 답했다.

“저는 한글의 영혼을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왔습니다. 번역투 문장은 한글로 돼 있어도 한글이 아닙니다. 왜 그런 것이 우리 문학에 다시 살아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윤 씨는 3년 전부터 강릉문화작은도서관 명예관장을 맡아 인문학 강좌를 이끌어오고 있다. 그는 8세 때 고향 강릉을 떠난 후 자주 찾지 않았다고 했다. 60여 년 만에 돌아오는 마음으로 고향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노경에도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의 근원으로 금주(禁酒)를 들었다. 그의 알코올 탐닉은 문학계에 유명했다. 갖은 기행으로 얼룩진 음주벽은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기도 했다.

“금주한 지 10년 됐어요. (술) 끊어서 지금의 제가 있지요. 아시다시피, 제가 누구 말을 안 들었잖아요. 그래서 술 끊으면서 부끄럽더군요. 죽겠다고 술 먹어놓고, 막상 의사가 술 안 끊으면 죽는다고 하니까….(웃음)”

그는 그 과정에서 고통을 인내해 준 아내에게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옆에서 온갖 안 좋은 것을 다 겪어야 했잖아요. 나라면 도망쳐버리지….”

윤 씨는 요즘 시를 쓰고 있다고 했다. 10대 때 시작(詩作)에 몰두했고, 만 21세이던 1967년 시를 통해 등단했던 그였다. 1979년 소설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로 ‘전향’했다. 그의 전향은, 문학평론가 이어령 씨가 “시 근처에 가지 말라”고 충고해줬기 때문이었다.

“시와 소설을 함께 쓰는 것을 ‘박쥐’라고 하며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우리 문학계에 있었지요. 그래서 이후 소설만 써 왔는데, 이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소설도 함께 쓸 작정이다. 그는 “나이가 있어서 앞으로 얼마나 쓸지 모르겠다”면서도 풋풋한 문청처럼 새로운 문학에의 꿈을 피력했다.

“형식과 장르를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소설이라는 게 ‘있다’라고 상정하면, 기존 작품에 갇혀 새로운 소설이 나올 수 없지요. 앞으로 소설은 어떻게 될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새 소설이 나올 겁니다.”

장재선 기자 jeij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