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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학용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26일(水)
‘마중물 정책’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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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요즘 어릴 적 집 안마당에 있던 지하수 펌프가 종종 생각난다. 펌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얼음장 같은 물로 등목을 하면 차갑기가 에어컨 바람 저리 가라였다.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한 바가지 물이 필요했다. 이 물을 부으며 힘껏 펌프질하면 펌프에서 샘물이 솟아 나왔다. 이때 붓는 첫물이 ‘마중물’이다. 어떤 땐 마중물을 여러 번 부어야 물이 나왔다. 아무리 퍼부어도 물 한 방울 올라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마중물도 원리가 있다. 우선, 마중물은 수원(水源)이 풍부한 곳에 부어야 성공한다. 둘째, 마중물은 보조일 뿐 주수단이 돼선 안 된다. 셋째, 마중물은 ‘본 물’이 나오는 순간 그 역할도 끝나야 한다. 마냥 쏟아부어야 한다면 더이상 마중물이 아니다. 넷째, 가장 적은 마중물로 가장 많은 샘물이 나오게 해야 최상의 마중물이다. 끝으로, 마중물을 마구 붓다간 펌프가 고장 날 수 있다. 이 원리를 저버리면 ‘마중물의 함정’에 빠져든다.

추억 속 마중물 단어가 문재인 정부 들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정부가 모범고용자로서 민간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김진표 전 국정기획자문위원장), “공공부문이 좋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김동연 경제부총리), “최저임금 정부 보전은 마중물 차원에서 접근한 정책”(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그런 예다. 문 대통령도 추경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부 노력이 마중물이 돼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 노력이 촉진되길 특별히 기대한다”고 했다. 가히 ‘마중물 정부’라 할 만하다.

마중물 정책의 원조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는 “수요 부족으로 경제가 자생력을 잃을 때 재정 지출이 마중물(priming the pump) 역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 정부 소득 주도 성장의 ‘원작자’가 그이니 현 경제팀이 이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문 정부의 마중물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마중물 원리로만 따져 봐도 그렇다.

두어 개 마중물 정책을 보자. 문 정부는 올해 1만여 명을 시작으로 5년간 공무원을 17만여 명 늘려 청년실업난 해소의 마중물로 삼겠다고 했다. 8조2000억 원의 예산이 든다고도 했다. 대선 공약 당시 제시한 비용의 절반 수준이니 ‘과소 상계’ 냄새가 짙다. 문제는 일단 이들을 뽑으면 향후 20∼30년간 혈세가 족히 350조 원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마중물은 샘물이 나오면 임무 끝이어야 한다. 샘물은 찔끔 나오는데 마중물은 엄청나게 쏟아붓게 됐으니 ‘실패한’ 마중물이다.

‘압권’은 최저임금 16.4% 인상이다.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줄 마중물이 헛물만 켜고 있으니 말이다. 관련 업주는 폐업한다고 야단이고 종업원은 해고 걱정에 좌불안석이다. 연공서열 임금체계 덕에 연봉 5000만 원 근로자도 혜택을 본다니 취지도 무색해졌다. ‘100년 기업’ 경방의 탈(脫)한국은 ‘시장 복수’의 서곡이다. 오죽하면 여당 경제브레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최저임금 1만 원은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자탄할까. 이 마당에 정부는 혈세 4조 원을 끌어모아 후폭풍 뒷감당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나랏돈을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밑 빠진 독에 마중물 붓기’로 펌프까지 망가질 판이니 ‘최악의’ 마중물이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 해도 마중물 효과를 보려면 샘물이 넉넉해야 한다. 보조수단인 마중물을 붓는 건 정부지만 주수단인 샘물을 만들어내는 건 기업이다. 유혹의 마중물을 마구 부을 요량으로 얼렁뚱땅 증세를 들이대는 건 정도(正道)가 아니다. 반시장정책을 양산하고, 임금 인상을 겁박하고, 불공정거래라 혼쭐만 내면 샘물은 바닥나고 마중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정부가 친노동·친기업 정책을 고루 병행해야 마중물도, 샘물도 제 소임을 다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자리의 ‘천적’ 규제는 중단 없이 개혁해야 한다. 집권하고도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은 방기한 채 ‘일자리’를 외치는 건 자가당착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구조개혁도 외면해선 안 된다. 한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노동개혁은 문 정부가 반드시 완수해야 할 지상명령이다. 문 대통령이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당성 있는 정부가 중심이 돼 노동개혁에 나서야 성공한다” ‘유럽 경제의 병자’였던 독일 경제를 구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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