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성장 친화적 거버넌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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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현재 우리 경제의 실상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말은 ‘기로에 선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중진국 함정을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한 성공 사례가 될지, 아니면 선진국 단계의 진입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실패의 사례가 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향후 5년간의 경제정책 청사진을 실행할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경제 패러다임을 ‘대기업, 양적성장 중심’에서 소득 주도로 성장하는 ‘사람 중심,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양적 투입’을 통한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질적 성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을 통한 질적 성장은 기술·노동 집약(skill-labor intensive) 전략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고용 문제’와 ‘양극화 문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질적 성장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의 해소를 동시에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준다.

경제정책 방향에서 구체적인 방안으로 모든 예산과 세제 관련 정책 수단을 양질의 일자리 확대 중심으로 재설계함과 동시에 공정 경제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이 가계와 중소기업 등 경제 전반에 골고루 확산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인 대다수 경제 주체의 경제 의욕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향후 5년 동안 경제정책의 모든 초점을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성장 없는 일자리 창출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정책 방향에서 무엇보다도 선행해야 할 전략은,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목표로 ‘지속적인 성장’을 설정하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지속적인 성장은, 과거처럼 단지 국내총생산(GDP) 몇 퍼센트 이상의 성장이라는 양적 목표를 추구하는 개념이 아니다. 또한, 복지와 분배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는 개념도 아니다. 열악한 복지와 분배 상황은 결코 성장 친화적인 요소가 아니며, 중장기적인 성장에 대한 위협 요소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이다.

이번 경제정책 청사진에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다. 지속적 성장이라는 한국 경제의 중장기적 목표 달성을 위해는 ‘혁신 경제의 추구’라든지 ‘성장 친화적인 분배와 복지 경제의 정착’ 등과 같은 다양한 과제들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효과적인 거버넌스 구축’이다. 효과적인 거버넌스는 최소의 정부(minimal state)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정부(capable state)를 지향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거버넌스의 구축은 정책의 결정과 이행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며,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안정된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의 질과 정부의 건전한 관리라는 차원에서 효과적인 거버넌스가 개혁과 병행해야 한다. 효과적인 거버넌스는 국가의 경제 및 사회 발전의 단계, 기술적 환경, 그리고 대외적 환경 등에 맞게 진화돼야 한다.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이 세계화와 정보화라면,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거버넌스야말로 오늘의 효과적인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효과적인 거버넌스의 구축을 이루지 못하는 한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