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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게재 일자 : 2017년 07월 31일(月)
‘대중독재’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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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박정희 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하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독재자를 기념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 지도자로서 박정희를 평가하는 지지층과 통합을 바라는 여론을 업고 국비 지원을 약속하고,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으로도 참여했다. 이에 반대운동을 펼쳤던 일단의 진보 학자들은 사후 20년이 지나도 줄지 않는 ‘박정희 현상’에 대해 고민했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기억의 정치학’(과거사를 매개로 한 집단적인 정치 행위)은 자신들의 생각과 딴판이었다. 그래서 소수의 가해자와 다수의 선량한 희생자라는 이분법을 버리고, 근대 독재 정권의 특징을 다른 시각에서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임지현 서강대 교수 등이 참여한 ‘대중 독재-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2004년)라는 책이다.

전 근대의 전제정치가 ‘위로부터의 파시즘’이었다면, 근대 독재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을 만들어냈다. 여기서 대중이란 역사·정치적 계기를 통해 형성된 단일한 집단적 정체성과 의지를 가진 군중이다. 이런 대중의 욕구가 권력과 같은 방향이면, 대중은 독재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독재를 정당화하고 대중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는 비판을 받았고,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리고 2017년 7월, 대통령 탄핵과 재판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만에 우정사업본부는 ‘우상화 반대’를 외치는 진보 시민단체들의 압박에 지난해 결정했던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재심의해 뒤집어버렸다. 기념사업들도 취소되고 있다. 반면 노무현재단은 2020년까지 서울 창덕궁 인근에 노무현센터를 건립하기로 했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기념관도 조만간 착공에 들어간단다. 두 사연을 권력교체가 낳은 희비 정도로 봐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기억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것으로 비친다. 또 다른 우상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대중의 집단 죄의식과 분노가 기저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임 교수는 “독재와 민주주의, 좌파 독재와 우파 독재를 불문하고 모든 체제의 성공 여부는 정통성이 전제될 때 구성원이 참여하게 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아래로부터의 동원 체제를 구축하는 게 관건이란 뜻이다. 최근에 벌어진 새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도 그 기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대중의 자발적 동의는 여론조사 결과와 SNS 반응으로 증빙되고, 이를 권력은 국민 동의로 포장한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41.08%)은 80% 안팎의 국정 지지율로 대체됐다. 이를 기반으로 탈(脫)원전이 선언됐고,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도 밀어붙였다. 백년대계를 좌우할 정책 결정을 3개월 시한의 여론조사로 가리는 게 적절한가, 법적 타당성은 있는가를 따지는 건 대중이 바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미리 답을 내놓고,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말의 모순을 되묻지 않아도 된다. 그것으로 대중 분노가 겨냥한 옛 권력의 치적을 엎어버리면 그만인 듯하다.

‘표적 증세’ 결정도 민의를 모았다는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하고, 대통령이 화답하는 방식이었다. 민주당은 초고소득자·대기업 증세에 대해 85%가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들이밀었다. 근로소득자 가운데 48%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상위 10%가 소득세의 75.9%를 부담하는 현실은 무시해도 된다. 그저 ‘사랑과세’ ‘존경과세’로 치켜세워주면 된다. 문 대통령이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없다”고 대중과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통신요금 인하 등의 보상 청구서를 내민 노동·시민단체들은 대중권력을 상징하는 ‘완장’ 수준이다.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는 본회의에 불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마저 줄줄이 고개를 숙이게 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로 보면 문재인 정부를 독재로 분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권력에 힘을 몰아준 ‘촛불’이 ‘불의에 저항한 민주 시민’이었음도 분명하다. 하지만 권력과 대중이 합의한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 행위가 자유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적인 것과 결이 다르다면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대중독재의 측면에서 박정희 현상을 본 학자들은 작금의 현상을 무엇이라고 분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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