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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01일(火)
일상에 대한 가식없는 관조… 그 소박함이 주는 경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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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화가들이 귀족의 화려한 정원과 침실을 그릴 때 중산층의 평범한 삶을 그렸던 화가 시메옹 샤르댕의 ‘가오리’. 샤르댕이 스물다섯 무렵 그린 작품 덕분에 그는 왕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5)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 - 샤르댕의 그림(1)

장 시메옹 샤르댕(1699∼1779년)은 18세기 프랑스 회화사에서 대표적 정물화가이자 장르화가로 평가받는다. 당시 화가들이 귀족들의 화려하고 멋진 정원이나 호화스러운 침실을 그렸다면, 그는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삶을 즐겨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매일 하는 일이나 보고 만지는 친숙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차를 마시거나 편지를 쓰거나, 빨래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일, 혹은 수를 놓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시장을 다녀오는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일상적 사건 옆에는 이런저런 과일이나 요리를 위해 사냥한 오리나 토끼 같은 동물들, 아니면 생선이 있고, 컵이나 물병 같은 식기류도 자리한다. 이런 일상의 풍경을 담은 샤르댕의 그림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차를 마시고 빨래하고 수를 놓고 책을 읽는 나날의 모습들,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300년 전 샤르댕 시대의 사람들과 2017년 오늘의 현대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글은 샤르댕 그림의 그 조용한 파급력에 대한 내 고마운 마음의 헌사(獻辭)다.


# 단순한 것들과 그 너머

샤르댕의 그림들은, 정물화든 인물화든 혹은 장르화든, 어느 것이나 소박하고 담백하다. 구성은 소박하고, 색채는 부드럽다. 토끼나 오리 같은 동물들도 바로크적 풍성함 속에서 화려하게 묘사되기보다는 아무런 장식 없이 지극히 간결하고도 담백하게 묘사된다. 그 구성과 색채는 서로 호응한다. 차분한 구성과 색채는 아마도 부드러운 감정의 절제된 표현일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적 삶의 단순한 물건들은 극적 효과나 비장감에 기대지 않은 채 그저 있는 그대로 그려지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진지하고도 세심하게 자리한다.

이런 진지함은 어떤 경우 더욱 진전되어 경건한 느낌까지 줄 때도 있다. 일상의 물건과 사건이 가식 없는 단순성 아래 어떤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고나 할까? 이것은 물론 화가의 재능에서 올 것이다. 그것은 작게는 사물을 일정하게 연결짓는 구성의식이나, 이렇게 연결된 사물을 서로 어울리게 채색하는 색채감각 덕분일 것이며, 크게는 구성의식과 색채감각을 지탱하는 화가의 세계관적 깊이에서 올 것이다.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은 결국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온다.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현실을 파악하는 예술가의 가치와 지향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그림을 보는 나의 마음도 그 색채처럼 부드러워지고, 그 구성처럼 소박해지는 듯한 것은 그런 이유인지도 모른다. 부드럽고 차분하고 소박한 그림은 부드럽고 차분하고 소박한 마음을 낳는다.


# ‘가오리’의 리얼리즘

‘가오리’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샤르댕이 25세 무렵에 그린 작품이다. 그림 중앙에는 큼직한 가오리가 흉측한 모습으로 하얗고 붉은 배를 드러내며 못에 걸려있다. 그것은 마치 살아서 웃고 있는 듯하다. 왼편으로는 고양이가 긴장한 듯 몸을 웅크리고 꼬리를 뻣뻣이 세운 채, 굴을 응시한다. 굴과 생선이 어지럽게 놓인 것은 이 녀석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같은 산만함은 구겨진 하얀 식탁보로 말미암아 강조된다. 정물화의 이미지가 늘 정적(靜的)인 것은 아니다. 음흉함과 위협은 평화로워야 할 식탁에서 이미 시작된다.

샤르댕의 이 그림은 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일상적인 리얼리즘은 1600년대 네덜란드 회화 이외에서는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 덕분에 그는 왕립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어느 귀족이 이 그림에 감동받고 왕립아카데미에 전시할 것을 권유했을 때, 샤르댕은 이 같은 평가를 믿지 않았다. 그는 학술원 회원들을 시험해보려고 이 그림을 좀 더 작은 방의 구석진 곳에 걸어두었다. 그래도 그의 그림은 다시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샤르댕의 이 그림을 어느 네덜란드 화가의 작품일 것으로 생각했다. 드니 디드로는 샤르댕을 색채와 구성의 위대한 화가로 칭송한다.

이러한 전기적 사실은, 1730년 무렵 정물화 장르가 프랑스에서는 그리 높게 평가되지 않았다는 점이나, 샤르댕이 당시의 대부분 화가들과는 달리 고전문학의 훈련이나 외국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네덜란드 화가를 모범으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나 르네상스 예술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서로가 서로를 비춘다

샤르댕 그림의 본령은 아무래도 소박과 검소함으로 보인다. 이러한 단순성은 그의 그림에 나오는 물건들을 다 합쳐봐야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종류도 많지 않다는 사실에서 이미 나타난다. ‘유리병, 은잔과 과일’(1728년·위 작은 이미지)이나 ‘구리솥과 세 개의 달걀’(1734년·아래 작은 이미지)도 그렇다. ‘유리병, 은잔과 과일’에는 큰 유리병 하나가 중앙에 놓여있고, 왼편에는 은잔이 하나 있다. 잔 앞쪽으로는 레몬 하나가 반쯤 깎인 채 비스듬히 놓여있다. 오른편으로는 배 두 개와 오렌지 하나가 놓여있다. 그뿐이다. 유리병에는 물이 반쯤 담겨있고, 이 투명한 표면에는 오렌지의 붉은 빛이 어른거린다. 되비친 이 연주황색 빛깔은 금세라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반사광은 은잔에 어린 레몬의 흰 속살에서도 나타난다. 하나의 사물은 또 다른 사물을 되비추며 자리한다.

되비춤(reflection)이란 물리적으로는 ‘반사’가 되지만, 철학적으로는 ‘반성’이다. 비추는 반사작용은, 그것이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사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조응(correspondence)이고 화응(和應)이다. ‘구리솥과 세 개의 달걀’에 나오는 솥이나 질그릇은 ‘절구와 분쇄기가 있는 구리 솥’(1734년)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물건들은 샤르댕의 아내나 그의 친구 혹은 후원자가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화가 자신이나 그 가족 혹은 지인들이 매일 쓰고 보고 만지고 사용한 것들이 그의 회화적 소재가 된 것이다.


# 관조하는 일의 행복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을 비춘다는 것은 서로 조응한다는 것이고, 이 조응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 반성이다. 사물의 호응관계를 좀 더 오래, 그래서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이 관조나 명상이 될 것이다. 관조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가장 좋고 즐거운’ 일이다. 관조에는 그 대상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관조는 그 자체로 족하고, 그래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것은 홀로 진리를 생각하는 가운데 자기를 넘어 신적인 것으로 넘어가는 자족적인 일이다. 그래서 행복한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썼다. “더욱 관조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행복하다.” 지금 여기의 삶에서 여기를 넘어 더 좋고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신적인가? 관조란 신적 삶을 닮은 가장 행복한 길이 아닐 수 없다.

샤르댕의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반성하고 관조하게 한다고 해도, 그래서 그 관조가 때때로 신적 차원까지 느끼게 하는 행복한 일이라고 해도, 그 출발점은 여전히 일상이다. 이 일상은 단순소박하다. ‘구리솥과 세 개의 달걀’을 보자. 그림 중앙에는 낡은 누런색 솥이 하나 있고, 그 앞에는 달걀이 세 개 있다. 왼쪽에는 후추 빻는 기구가 있고 오른쪽에는 긴 손잡이가 달린 질그릇 냄비가 있다. 이 냄비는 아마도 찜이나 찌개용일 것이다. 후추 분쇄기와 솥 사이에는 파 하나가 있다. 이런 물건들이 놓인 곳은 돌 선반이다. 이 선반과 벽면은 색채 상으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은 연갈색과 연회색이 섞여 있는, 다소 우중충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준다. 이 물건들은 변변찮고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검소하고 친숙하며 소박해 보인다. 솥 색깔이나 냄비 일부도 연하거나 짙은 나무색으로 비슷하다. 하얀 달걀은 다듬어진 파의 밑동과 색채적으로 호응한다. 샤르댕의 정물화가 보여주는 색채는 그 자체로 조용하고 정적이며 담담하고 시적인 마음의 색깔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물을 끓였을 것이고, 얼마나 자주 국을 데웠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파와 감자와 달걀을 삶고, 또 얼마나 자주 빵을 잘랐을 것인가? 그러면서 가족들은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그날의 일과를 떠올리고, 지친 몸을 다독이며 저녁에는 정담을 나누다가 잠을 청했을 것이다. 그런 나날의 생업에 이 닳고 구겨지고 손때 묻은 식기류와 철마다 나는 과일과 채소들은 한결같이 봉사했을 것이다.


# 단순소박함의 윤리적 절제

샤르댕의 정물화에 나오는 사물들과 그 구성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이 단순한 세부의 어떤 것도 피상적이지 않다. 이 단순소박함은 무엇보다 샤르댕의 색채감(짙지 않은 황색이나 흰색 혹은 회색이나 청색)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배경은 주로 회청색과 연갈색을 띠는데, 전면에 등장하는 색도 짙거나 강렬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연함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표피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화면 속 깊이 스며든 듯하다. 사실 ‘단순소박하다’는 말에는 검소와 절제, 포기와 삼감의 뉘앙스가 들어있다. 검소가 물질적 차원의 소박성이라면, 절제나 삼감은 행동적 차원에서 나타난 소박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절제는 겸손까지 내포한다. 절제하기 위해서는 자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단순성이 구성에서 나타나면 선명함이 될 것이고, 절제가 색채로 나타나면 차분함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선명함은 색채나 구성에서 두루 나타난다. 그리하여 단순함과 소박, 절제와 겸양과 선명함과 차분함은 깊게 얽혀 있다.

그렇다면 화가의 색채는 물리적 재료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면서 이렇게 묘사하는 화가 자신의 마음을 그린다. 색채에는 그의 기질과 성향, 태도와 성격과 지향이 배어드는 것이다. 화가의 색채는 그 영혼의 빛깔이고 세계관적 표현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샤르댕은 한 그림이 완성되면, 그 위에 다시 똑같은 색으로 여러 차례 덧칠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림 전체의 온화한 분위기는 부드러운 색조와 잘 어울린다. 이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로저 프라이는 이렇게 썼다. “샤르댕은 저 무한한 단순성으로 하여 우리의 신뢰를 얻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어디서든 믿고자 한다. 그는 이런저런 인상을 억지로 주려 하지 않는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과 이 사물을 담은 그림과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저 무한한 단순성 속에서 서로 깊게 화응한다. 그림의 감동은 이 자연스러운 단순성에 대한 내 마음의 신뢰에서 온다.

(문화일보 7월 11일자 25면 4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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