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7.11.24 금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02일(水)
서울역 디자인의 모체는 루체른역… 도쿄역 축소판 아니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서울역 전경(위 사진)과 서울역 최종 디자인(아래).

▲  1896년에 준공된 스위스 루체른역(위 사진)과 서울역 초기 디자인(아래).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5) 서울역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식민지배는 근대사를 왜곡하고 우리가 우리의 근대를 수치스럽게 여겨 멀리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식민지배가 심어놓은 역사인식의 프레임은 역사 왜곡을 구조화하고 심화했으며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철도는 식민지배자가 만든 왜곡된 근대사 프레임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철도=침략과 수탈’의 상징으로 알고 있다. 이는 일본이 철도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는가를 말해주고 있지만 여기에는 대한제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의 시선이 담겨 있다. 철도가 침략과 수탈의 도구였던 것은 맞지만, 모든 철도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인철도는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경인철도는 조선의 대중국 외교 루트였던 ‘남대문에서 영은문을 거쳐 의주를 통해 북경에 이르는 길’을 대신해, 서구와의 교류를 위해 건설된 ‘신외교 루트’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역사를 철저하게 지웠고, 지워지지 않는 대한제국의 존재는 왜곡시켰다. ‘침략과 수탈’이라는 키워드 속에 대한제국을 지운 일본의 프레임이 숨어 있을 정도로 식민지배의 폐해는 우리에게 깊이 각인돼 있는 것이다.

경인철도는 대한제국이 안정기에 들어섰던 1900년에 건설됐다. 그런데 경인철도의 이면에는 미국이 있다. 1882년 미국과 수교한 조선은 1883년 인천항을 개항했고, 미국공사관(현 대사관)의 정동 입지를 허락했다. 이후 정동은 외교타운이 됐다. 1896년에는 미국회사에 경인철도 건설을 발주했으며, 대한제국 출범 직후인 1898년에 한성전기회사(1904년 한미전기회사로 개칭)를 만들고 1899년에는 서대문에서 청량리를 연결하는 전차를 건설했으며, 이듬해인 1900년에는 인천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됐다.

철로 위로는 미국산인 모굴 탱크(mogul-tank)형 기관차가 달렸다. 정리하면, 경인철도는 서구 문물을 적극 수용해 근대국가로 거듭나고자 했던 고종의 의지로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인철도 공사 중 미국에 주었던 경인철도 부설권이 일인에게 넘어가고,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경인철도 역시 다른 철도와 마찬가지로 침략과 수탈의 도구로 건설된 것처럼 매도되고 말았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은 빠르게 서울의 관문이 됐고, 1900년 경인철도 건설 이후 인천은 명실상부하게 대한제국이 서양과 만나는 최전선으로 자리 잡았다. 배로 인천항에 도착한 외국인들은 기차로 서대문역에 도착한 후 전차로 갈아타고 시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서대문역은 경인철도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면서, 동시에 대중교통인 전차와 연결되는 최초의 환승역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서울역은 대한제국기에는 개화의 관문, 일제강점기에는 식민도시의 관문이었고, 해방 이후 산업화의 견인차, 민주화의 목격자였다. 강남 개발 이후 고속도로 시대를 맞이해 한때 기차가 쇠락하기도 했지만, KTX고속철도가 개통되고 경의철도가 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국가교통망의 중심을 회복하는 한편, 유럽으로 연결되는 대륙철도의 출발역이라는 잠재력을 갖게 됐다. 여기에 공항철도가 개통되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강원도로 연결되는 고속철도망까지 갖추게 되면서 서울역은 명실상부한 세계도시 서울의 관문이 됐다. 여기에 자동차도로의 수명을 다한 산업화시대의 상징인 고가도로가 보행교로 다시 태어나면서 서울역 주변은 역사도시 재생과 치유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역 역사는 어떤 시기에도 서울에서 가장 중심적인 위상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 건물이니 당연히 조선총독부가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철도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설계자가 누군지 몰랐으며, 너무나 당연하게 서울역사는 도쿄(東京)역사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한 서울역 관련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우선 서울역의 건설 주체는 조선총독부가 아닌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다. 만주에 있는 회사가 한반도의 철도역을 지었다는 사실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만철의 탄생 배경과 목적을 보면 이유가 명확해진다. 만철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철도를 기반으로 1908년에 세운 회사다. 철도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만주의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 국책회사로 일본 정부를 대신해 만주의 식민지화를 이끈 핵심이었다.

이 회사가 1917년부터 한반도의 철도 운영을 맡았다. 일본 정부의 경제적 부담을 덜면서 만주의 식민지화를 꾀했던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를 하나의 교통시스템으로 묶고자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만철의 한반도 철도 운영권은 1925년 조선총독부에 반환됐지만, 함경도 북부 철도는 1945년까지 여전히 만철에 의해 운영되면서 만주 지배와 중일전쟁에서 핵심적인 물류기능을 담당했다. 이 만철에 의해 옛 서울역사가 건축됐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서울역 관련 각종 미스터리도 만들어졌다. 만철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 해산됐으며 이때 만철의 기록도 사라졌다.

설계자 이야기는 다소 복잡하다. 도쿄대 건축과 교수였던 쓰카모토 야스시(塚本靖)가 그린 서울역사 도면이 발견되면서, 설계자가 쓰카모토 교수로 알려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6년 필자가 일본에서 쓰카모토 교수의 유품과 시공자였던 시미즈건설의 자료실을 조사하고 일본의 건축역사학자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울역사의 설계과정을 밝혀낼 수 있었다. 쓰카모토 교수는 설계과정에 참여는 했지만 서울역의 설계자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서울역이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델로 설계됐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낸 바 있다.

주목할 것은 서울역사 건설의 주체인 만철의 성격과 설계 방식이다. 대륙침략의 선봉이었던 만철은 일본에서 뛰어난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었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기차역이 단순해 보이지만, 20세기 초까지 기차역은 오늘날 공항에 비견될 정도의 비중이 있는 첨단 건축이었다. 따라서 만철은 이러한 중요한 국가시설을 민간에 맡길 수 없었고, 민간에는 자기들보다 기차역을 잘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최고임을 자부하는 만철이었지만, 디자인에는 자신이 없었다. 만철은 기능과 공간 설계를 마친 후 만철의 건축프로젝트 자문 경험이 있는 쓰카모토 교수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쓰카모토 교수가 그려준 도면으로 서울역을 지은 후, 만철이 서울역을 건축잡지에 게재하면서 설계자를 밝히지 않아 후대에 설계자의 실체가 미궁에 빠졌다.

그렇다면 만철은 왜 설계자를 밝히지 않았을까? 일반적으로 설계자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소개하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만철이 도쿄대 교수였던 설계자의 이름을 본인의 동의 없이 숨기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쓰카모토 교수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데는 그럴 만한 상황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답이 스위스에 있었다.

필자가 서울역사 복원공사를 총괄하던 중 스위스에 서울역과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고, 건물을 찾아 나선 끝에 그 건물이 루체른역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에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쓰카모토 교수는 만철로부터 디자인을 의뢰받았지만, 자신이 창의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영국 유학 중에 보았을 유사한 규모의 유럽 기차역의 디자인을 서울역에 맞춰 수정해서 만철에 제공한 것이다. 원천 디자인이 자신의 것이 아니니 쓰카모토 교수는 자신은 서울역의 설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만철도 이를 인정하고 설계자 없이 준공사진첩을 만들고 건축잡지에 서울역을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쓰카모토 교수의 유품에서도 뒷받침된다. 최종 디자인도 루체른역을 닮았지만, 흑백 도면의 모습은 루체른역과 더 닮았다. 이 도면을 발전시켜 채색된 도면이 만들어졌고, 이 도면에 따라 현재의 서울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서울역은 오랫동안 도쿄역의 축소판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서울역은 도쿄역과는 디자인의 계보가 전혀 다르다. 서울역은 도쿄역처럼 통과역으로 지어졌지만 냇가인 만초천(蔓草川)을 이용해 건설됐기에 선로가 지표보다 낮은 지하 1층에 만들어졌다. 이에 반해 도쿄역은 바닷가 매립지에 건축된 까닭에 쓰나미 등 수해로부터 철도를 보호하기 위해 지면에서 1개 층을 높여 선로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도쿄역이 공간구조와 형태 측면에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역과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도쿄역과 암스테르담역은 모두 바닷가 매립지에 건설됐다는 공통점이 있고, 도쿄역의 디자인은 암스테르담역을 닮았다.

따라서 서울역과 도쿄역은 디자인에서 계보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이 도쿄역의 축소판이라는 낭설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은 붉은색 외관의 낯선 서양건축 이미지가 일반인에게는 비슷해 보였고, 호텔 기능을 가진 도쿄역이 서울역보다 몇 배 커 보인 요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서울역에 관한 많은 오해를 극복하며, 서울역사가 원형을 회복하고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당초 구상인 기차역으로서의 기능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원용도로의 지속적인 사용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도시에서 모든 근대건축이 원기능을 유지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서울역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옛 서울역사에 면해 새로운 플랫폼이 설치돼 부분적이나마 기차역의 기능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왕에 세계인이 참여하는 평창올림픽이 개최되는 만큼 기차역의 기능 회복을 전제로 복원한 서울역의 중앙홀을 평창으로 떠나는 기차역의 중심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해 본다. 나아가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이미 준비돼 있는 경의선의 출발역이 될 서울역의 중앙홀이 대륙으로 출발하는 기차역의 기능을 회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서울역 원형 회복 사업계획이 발표됐을 때,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핵심은 기차역으로서의 기능 회복과 일제강점기는 물론 경제개발기 그리고 민주화운동 시기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적 역사성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나아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서울역이 세계도시 서울의 관문임을 알리고, 장기적으로 통일을 향한 대륙열차의 출발점이 되는 날 옛 서울역사의 진정성 있는 복원과 잠재적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문화일보 7월 12일자 24면 4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
[ 많이 본 기사 ]
▶ 이국종 “몸부림쳐 수술해도…난 10억 적자 원흉이었다”
▶ 10년 사귀다 헤어진 중년 남녀 모두 숨진 채 발견
▶ 사드 레이더 중국방향 ‘차단벽’ 설치하라는 中
▶ ‘소녀시대’ 서현 10년 몸담은 둥지 떠나 홀로서기
▶ ‘행정해석 폐기’ 배수진 친 채… 與·野 ‘근로시간 단축’ 담판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아주대 교수회지에 심평원 수술비 삭감에 대한 비참한 심경 토로“일을 할수록 손해 불러오는 조직원…무고했으나 죄인이었다” “환자마다..
mark‘행정해석 폐기’ 배수진 친 채… 與·野 ‘근로시간 단축’ 담..
mark한화 내야수, 일본 마무리 캠프 중 성추행 혐의로 체포..
세월호 가족 “작은뼈 나올 때마다 알리지 말아..
‘지진우려’ 수능 무사히 치렀다…국어·수학 작..
檢, ‘국정원 1억 뇌물 의혹’ 최경환 28일 피의자..
line
special news ‘소녀시대’ 서현 10년 몸담은 둥지 떠나 홀로..
“홀로서기 배경? 양손 쥔 것 모두 놓았을 때의 내가 궁금했죠” 10년 몸담은 둥지를 떠나 홀로..

line
사드 레이더 중국방향 ‘차단벽’ 설치하라는 中
10년 사귀다 헤어진 중년 남녀 모두 숨진 채 발..
한국당, 내년 초 ‘保守대통합회의’ 발족… 洪대..
photo_news
입실 촉박한데 태워다준 아버지께 큰절 올린 수험생
photo_news
‘딸바보’ 오바마 어쩌나…말리아 남자친구 생겼다
line
[연재소설 徐遊記]
mark(1253) 61장 서유기 - 6
illust
[인터넷 유머]
mark인공지능 로봇
mark음주에 관한 법률
topnew_title
number 길가던 여성에 손도끼 던져…혈중알코올농..
‘감 못잡고’…길거리서 대낮 패싸움한 사우디..
“北, 귀순사건 후 JSA 경비병력 모두 교체…..
‘사내 성폭행 논란’ 한샘 여직원 사직서 제출..
원전 불안감에… 2000억 들인 담수화시설 ‘3..
hot_photo
김도연·여름·다영, 수능 고사장으..
hot_photo
방탄소년단 ‘호르몬전쟁’ 뮤비도..
hot_photo
민서 “‘좋아’ 1위 실감안나…이별..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최중홍)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