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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재덕 셰프의 사계절 건강 밥상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02일(水)
사락사락 입속에서 놀다 스르르… 거칠거칠 슴슴한 맛 더위를 묵사발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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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철 더위에 지친 입맛을 되살려주는 메밀묵사발. 메밀은 성질이 찬 음식이어서 예로부터 요즘처럼 더울 때면 묵이나 국수 등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메밀묵사발

장마가 끝나며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위에 지쳐 식욕도 떨어질 시점이다. 이럴 때 더위를 쫓기 위해 즐겨 찾는 음식들이 메밀비빔국수, 메밀막국수, 메밀소바 등 메밀로 만든 요리들이다.

메밀은 성질이 찬 음식이라 지금처럼 더울 때 먹으면 좋다. 동의보감에서도 ‘메밀은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전한다. ‘1년 동안 쌓인 체기도 메밀을 먹으면 내려간다’는 말도 메밀의 이런 효능 덕분에 생겨난 말이다.

실제로 메밀은 다른 곡류에 비해 월등히 많은 영양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식물성 단백질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비타민이 들어있다. 또 메밀에 든 각종 아미노산과 항산화성분은 체내에 독소가 쌓이는 것을 방지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체지방이 늘어나는 것을 억제해준다. 그래서 메밀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밀가루 대신 메밀가루를, 쌀 대신 메밀을, 커피 대신 볶은 메밀차를 마시면 보다 확실한 체중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메밀에는 혈관을 강화시키고 혈압 수치를 내려주는 루틴 성분도 풍부하다. 루틴은 혈압약의 재료이기도 한데,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만들고 혈압과 혈당 수치까지 정상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그래서 메밀은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평소 꾸준히 섭취해야 하는 건강식품이다.

메밀은 식재료 이상으로 감성적인 정서를 맛보게 해주는 곡물이다. 문학소년은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접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의 메밀이 인상 깊게 각인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춘기 감수성이 한참 차오르던 때라,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 리 길 달밤에 흐드러진 하얀 메밀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그 생생한 묘사에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엔 하얀 메밀꽃이 까만 밤을 밝히는 그 길을 누군가와 걸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바쁘게 살다 보니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지난해 9월 아내, 아이들과 함께 봉평메밀꽃축제를 방문했다. 효석문화제도 열리고 있었는데, 메밀꽃을 보고 ‘꽃봉오리에 하얀 팝콘이 가득 붙어있는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을 짓는 큰 아이를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어릴 적 내 생각도 났다. 단아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메밀꽃밭 사이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메밀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을 살피고 먹을 수 있어 즐겁고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메밀 하면 이렇게 봉평이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메밀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은 제주도이다. 제주도가 메밀 최대 생산지가 된 데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700여 년 전 제주도(당시 탐라)는 원나라 지배하에 있었는데, 원나라 관료들이 탐라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당시 속설’에 의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일부러 전해 주었다고 한다. 탐라 사람들은 처음 보는 메밀을 가루로 만들어 소화효소가 풍부한 무와 함께 조리해 빙떡을 만들어 먹었고, 별 탈이 없어 결국 원나라 관료들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제주도 빙떡은 강원도 지역의 메밀전병과 비슷한 모양인데, 메밀가루로 얇게 전을 부치고 그 안에 채를 썰어 데쳐낸 무를 넣은 음식이다. 이렇게 제주 현지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말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 메밀의 영양과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여름철 건강 요리로 메밀묵으로 만든 메밀묵사발을 추천한다.

‘묵사발’ 하니까 어릴 때 친구들과 싸우다가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철없던 시절 생각이 난다. 그러나 묵사발은 ‘묵을 담는 그릇’을 의미하며 ‘묵이 깨지고 뭉개진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묵사발은 흔히 도토리묵을 썰어 김치와 김 가루를 넣고 차가운 육수를 부어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도토리묵 대신 메밀묵을 썰어 넣으면 고소한 맛이 더 강하고 입안에서의 식감이나 목을 넘어가는 느낌이 훨씬 더 부드러운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육수에 새콤달콤한 김치양념을 곁들인 메밀묵사발 한 그릇이면 여름철 더위에 지친 입맛을 한껏 돋우기에 충분하다.

한식당 다담 총괄·사찰음식 명인


만들어 보세요


재료 : 메밀묵 200g, 잘 익은 배추김치 1/2컵, 미나리 1줄기, 김 가루 약간, 소금 1/3 작은술, 국간장 1작은술, 김치양념(식초 2큰술, 고춧가루 1/2 작은술, 통깨 1/4작은술, 참기름 1/4 작은술, 설탕 약간), 육수(물 4컵, 말린 표고버섯 2개, 다시마 5×5㎝ 1장, 멸치 10마리, 대파1/2개)



만드는 법

1. 냄비에 말린 표고버섯, 다시마, 멸치, 대파 재료를 넣고 센 불에서 끓이다가 중약 불에서 끓여준다. 끓어오르면 다시마를 건져주고 불을 줄여서 10여 분 더 끓여준다.

2. 1의 육수에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운 체에 걸러준다. 거른 육수는 냉동실에 잠시 넣어 시원하게 해둔다.

3. 메밀묵은 길이 10㎝, 폭 1㎝로 썰고, 미나리는 잎을 떼어낸 후 송송 썬다.

4. 배추김치는 소를 털어내고 잘게 다진 후 준비한 김치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쳐둔다.

5. 그릇에 채 친 메밀묵과 양념 김치, 미나리, 김 가루를 차례대로 올려준다.

6. 5의 그릇에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시원한 육수를 부어 완성한다.



조리 Tip

1. 메밀묵이 없을 경우 메밀묵 대신 도토리묵을 사용해 위의 레시피대로 만들어도 무방하다.

2. 묵사발을 만들고 남은 메밀묵은 전으로 구워 먹어도 맛이 좋다.

3. 남은 묵을 보관할 때에는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랩에 싸서 보관하는 게 좋다.
e-mail 김호웅 기자 / 사진부 / 부장 김호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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