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신고리 原電 중단’ 공론화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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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법학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원전 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같다. 탈핵의 기치를 내세우며 정권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야심 차게 수순을 밟았지만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고 허둥대는 느낌이 든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를 시켜 이미 적법한 허가를 받아 진행되던 건설을 중단시킴으로써 법적·정치적 논란과 사회 갈등을 자초했는데, 의제 설정부터가 석연치 않았다. 정부는 공론화 대상을 탈원전이 아니라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로 잡았다. 그러나 탈원전 여부나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 없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 탈원전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면 오히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이슈는 공론화 대상으로 삼기조차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신고리 5·6호기 자체의 안전성은 국내 원전 중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건설 중단 여부만 공론화한다는 것인가. 반면 탈원전을 기정사실화해 이를 전제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하는 것이라면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런데도 왜 탈원전 자체를 공론화에 붙이지 않는가. 대통령의 공약이라서? 아무리 공약이라도 탈원전은 놔두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만 공론화하겠다는 발상이라면 곤란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또한 대선 공약 아니었던가?

탈원전이야말로 가장 공론화가 필요한, 공론화 대상으로 삼아야 할 문제다. 원전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안정적 에너지 수급과 에너지경제, 에너지 안보, 원자력과학기술과 의료, 원전 건설과 해체 산업, 원전 수출 등 대내외 경쟁력 확보, 인력 양성, 전기료 인상 등 다중복합적 파급효과를 가지는, 문재인 정부 임기 5년을 넘는 장기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 국가정책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福島) 이후 탈원전이 세계적 관심사가 됐고, 단순히 탈원전 찬반만을 묻는다면 찬성 여론이 다소 우세할지 모른다. 그러나 탈원전으로의 전환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탈원전 이슈는 ‘언제 어떻게’ 등 실행 가능성 있는 이행 방안 도출,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형성이 관건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공론화가 먼저 필요한 까닭이다.

그리고 전문가 배제 여부로 논란 속에 출범한 공론화위원회에 과중한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정부가 온전히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위원회의 결론이 무엇이든 100% 따르겠다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부가 염두에 둔 독일의 선례를 보자. 탈원전(Atomausstieg)은 공론화 과정을 거쳤으되 결국 ‘원자력에너지 사용 종료와 에너지 전환 촉진’을 담은 의회의 원자력법 개정(Atomgesetz)으로 결정됐다. 우리도 탈원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한 뒤 입법조치로 마무리해야 한다. 녹색성장기본법, 에너지법, 전원개발촉진법, 원자력안전법 등 기존 법령에 따른 절차도 이행해야겠지만, 특별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다. 공론화를 대의제의 대체재로 보든, 보완재로 보든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바른 의제와 수순이 필수다. 야당도 이런 문제들을 고려해 더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을 전격적(Blitzkrieg)방식으로 추진하다보니 문제가 더 어려워 진다. 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합당한 절차를 진행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바탕 위에서 국회와 더불어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