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맨발로 걸었던 18홀 잔디밭… 포근한 감촉에 ‘힐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골프 황금성 목동들의 단순 놀이에서 발전해 세계적인 갬블로 이어져 골프 황금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요즘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는 ‘힐링’이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다. 그래서 치유를 원한다.

하지만 힐링을 검색하면 상업적 욕구만을 덧칠한 것들로 점철돼 있다. 오히려 상처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한 대 맞는 것보다 막말이 더 깊은 상처를 남기듯 지금 세상은 지나치게 물질화돼 있다. 물질은 빈부를 낳고, 비교를 강요하고, 결국 인간을 소외되게 한다. 그 자체가 불안이고 미래에 대한 우울이다.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은 스트레스다. 적당하면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에 좋은 것이 스트레스다. 지나치면 마음을 해친다. 두통, 피로감, 위경련, 우울, 불안을 유발한다. 이렇게 힘들고 지칠 때, 이때는 어떡해야 할까.

얼마 전 전남 땅끝마을에 위치한 파인비치 골프장에 갔다. 바다와 코스가 잘 어우러진 곳이라는 것은 잘 안다. 이 골프장의 진정한 가치는 밤에 있다.

골프장은 그야말로 칠흑이다. 고요마저도 숨죽이고 있는 이슥한 밤공기를 타고 노랫소리가 들렸다. 클럽하우스 밖, 의자에 부부가 앉아 ‘바위섬’ 노래를 나직하게 불렀다. 소리에 이끌려 나갔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끝에 보이는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무리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학창시절에 자주 갔던 광화문 미리내 분식집이 떠올랐다. 떡볶이와 쫄면, 그리고 음악 DJ의 느끼한 음성이 생각났다. “은하수가 가득한 미리내 분식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노래는 별이 빛나는 밤에….”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이자 제주도 방언이다.

미리는 미르로 용을 뜻하며 내는 개울을 말한다. 용이 사는 개천, 즉 은하수인 것이다. 은하수에 이끌려 천사길을 걸었다. 마지막 18홀 티잉 그라운드 옆에 전망대와 큰 나무가 하나 있다. 홀아웃하는 역방향으로 골프장 코스를 따라 걸었다. 멀리 독립수 앞엔 형광조명이 밤하늘을 향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전망대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민요와 트로트를 메들리로 합창하면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에 살짝 비치는 솟대들이 밤바다를 외롭지 않게 했다.

한참 동안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린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마지막 18홀 잔디를 맨발로 걸었다. 적당히 이슬까지 내려 발끝은 촉촉했다. 발을 감싸는 잔디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귀 쪽으로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들려오는 바다 소리, 그리고 밤하늘에 펼쳐지는 별무리를 바라보면서 걷다가, 잠시 서성거리다 또 걸었다. 위로가 됐다. 그날 밤 왜 그리 설레는지 마치 사춘기 소년 같았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이 참 중요하다.

함께했던 지인은 말한다. 골프 라운드도 좋았지만 밤에 본 별과 바다와 노래, 그리고 맨발로 걸었던 잔디밭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