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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09일(水)
권이종 “평생 새벽4시 기상, 우연이 겹쳐 필연이 되게 한 에너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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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이종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회장이 1일 서울 용산구 새창로 ADRF 사무실에서 직접 발행한 소식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권 회장의 뒤로 ADRF가 후원하는 13개국 아이들의 사진이 보인다. 김선규 기자 ufokim@

- 권이종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 회장

학창시절 가난 탓에 신문배달
그때부터 ‘새벽 기상’ 몸에 배

獨서 지하 1000m 막장 작업
죽음에의 공포·향수병 시달려
현지 수양어머니가 공부 권해
외국인 최초로 공립대학 입학

교수·교육부 자문위원 맡으며
청소년 정책·평생교육 산파역

나누고 베푸는 삶이 가장 중요
나눔中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청년들도 어렵다고만 하지말고
주어진 환경서 최선의 길 찾길


지독한 가난을 깨기 위해 더 지독한 ‘막장’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있었다. 파독광부(派獨鑛夫)로 3년을 보낸 뒤 외국인 입학이 금지된 대학에 입학해 교육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한국에 귀국해서는 전북대·한국교원대에서 교수로 지내며 차관급 공직까지 역임했다.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를 만들고, 그간 모았던 자료와 사진을 기증해 번듯한 파독근로자기념관도 세웠다. 지금은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회장을 지내며 평생 화두로 놓고 살았던 ‘교육’과 ‘봉사’를 원 없이 실천하고 있다.

권이종(78) ADRF 회장이 최근 펴낸 ‘교수가 된 독일 광부 권이종의 인연, 백세백인(百歲百人)’이란 책을 읽으며 ‘기적’이란 말이 떠올랐다. 그러다 권 회장의 삶에 기적 같은 ‘우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실상 기적이 아니라 권 회장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가 주변의 변화를 끌어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직접 물어보자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역 인근 ADRF 사무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대뜸 “아직 식사 전이지요”라고 묻더니, 여든을 앞둔 이의 걸음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앞서 걸어갔다. 그가 단골집이라는 근처 식당에서 제육볶음과 청국장을 시켜놓고 앉자마자 기자가 먼저 “연세를 알고 왔는데, 믿을 수 없다”고 말을 꺼내자 돌아온 건 “재밌게 살아. 세상 하고 싶은 일 하고 아쉬운 것 하나도 없고, 나눠주고 봉사하면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니까”라는 뻔한 답이었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시간표를 하나 꺼내 보여준다. 시간표에 따르면 오전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간단히 먹고 6시에 집을 나서 한 시간 반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내가 제일 먼저 사무실 문을 열어. 이대로 안 살면 나와의 약속을 어기는 거야. 죄인처럼 여겨져. 오후엔 4시 20분에 사무실을 나서서 6시에 저녁을 먹고는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러 가.”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배경에는 지독한 가난이 있었다.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권 회장은 “시골에서 학교 다닐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어.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신문 배달을 하니 또 오전 4시에 일어나야 해. 서울로 와서 을지로에서 막노동할 때도 네다섯 시에 안 일어나면 일을 할 수가 없어. 독일 메르크슈타인 아돌프 광산에서 일할 때도 무조건 오전 4시에 기상이야. 이러니 지금은 이 시간표 생활에서 벗어나면 이상하게 생각이 될 정도야”라고 말했다.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파독광부로 떠나 교육학 박사가 돼 귀국한 과정을 설명하는 권 회장은 “운명론자는 아닌데, 그 과정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우연, 운이 계속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담담히 말했다.

덜컥 전주의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오갈 곳도 없어 사촌 형 집에 잠시 기거했던 권 회장은 또래였던 오촌 조카딸과 오누이처럼 지냈다. 고등학교를 힘들게 졸업하자마자 군 복무를 마친 뒤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던 권 회장에게 조카딸은 서울의 막노동 일을 권했다. 그렇게 시작한 막노동 현장에서 우연히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양대 학생을 만났다. 그 학생은 독일 광부를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보여줬다.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것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건을 맞추기 위해 브로커에게 건넬 거액의 돈은 형님이 전 재산과 다름없는 소를 팔아 마련했다. 친구에게 뒤창이 다 닳은 구두를 얻어 신고 1964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의 계약 기간, 광부번호 1662번이 된 그는 막장에서 일했다.

▲  권이종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회장이 인도네시아에서 결연을 한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DRF 제공

“지하 1000m를 내려가 다시 갱도를 따라 3㎞를 이동해야 작업장이 나와. 실제 여기(효창공원역)서 지하로 내려가는데 일은 광화문 지하에서 하는 식이야. 36도가 넘는 작업장에서 일하려면 옷도 못 입어. 팬티 하나만 입고 일하다가, 장화에 땀이 고여 뒤집어 붓고 다시 신고 일했어.”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왼손은 수술해서 지금도 힘을 제대로 못 줘. 여기(입 아래)도 석탄 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지워지지 않다가 나이가 드니 조금씩 사라지더라고.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지. 이미 돌아가신 분들, 진폐증 걸린 분들, 한국에서 광산 경험이 있던 분들은 거의 다 병을 얻었더라고. 날 소재로 한 소설 제목이 ‘글뤽 아우프’이더라고…. 이게 독일말로 ‘죽지 말고 살아서 올라오라’, 그런 뜻이야.”

그렇게 정해진 계약 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까지 갔던 권 회장은 양어머니처럼 모시던 친구의 부모인 로즈마리 부인에게 끌려갔다. “독일에서 광부로만 지내다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공부를 하라고 하셨어.”

권 회장은 짐도 이미 한국으로 다 보낸 상황에서 지금은 수양 어머니로 부르는 로즈마리 부인의 권유에 따라 독일에 남게 된 것에 대해 “뭔가 공부에 대한, 책에 대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는 광산에서도 독일어 문법책을 보고 독일인을 찾아가 따로 혼자 독일어를 배우기도 하는 등 늘 책과 함께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립학교인 아헨대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외국인이 공립대학에 입학한 것은 독일 공립대학이 설립한 이래 최초였다. 그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독일에서 어떻게 그런 일(규정으로 금지된 외국인을 입학시킨 것)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학한 뒤에도 독일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 서툰 독일어 실력으로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공부에 자신이 없으니 우울증도 걸리더라. 대학 전체에서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였고 정서적으로도 불안과 공포가 심했어. 향수병도 심해서 한국에 가고 싶은데 돈은 없고,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어. 화장실이 유일한 나만의 휴식공간이어서 거기서 앉아 자고 울기도 했어.”

그럴 때마다 그를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따뜻한 말로 이끌었던 게 ‘스승’인 프란츠 푀겔러 교수였다.

“‘권 군은 지금 호수 한가운데 있다고 생각해라. 헤엄쳐서 밖으로 나올 것인지, 그대로 죽을 것인지 판단해라’라며 공부가 끝날 때까지 계속 격려하고 충고해 줬어.”

그렇게 무수한 독일 ‘인연’의 도움으로 그는 대학에 입학한 지 13년 만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1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와 있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시련은 이어졌다. 첫 딸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공부하고 어머니는 돈을 버느라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겼는데 우유를 먹고 토해 숨이 막힌 것을 보모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권 교수는 “한국에 귀국했다가 다시 독일에 가서 딸의 묘지를 찾았는데 공동묘지 관리 규정에 따라 묘가 사라졌다”며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누가 뭐래도 한국 청소년 정책이랑 평생 교육 분야는 내가 산파 역할을 했어.” 드라마보다 더 우연의 연속이었던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권 회장은 1979년 9월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했다. 그 뒤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교육부 파견 상임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사회교육법(현 평생교육법)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1984년부터 2006년까지는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로 계속 교편을 잡았다. 2001년부터는 차관급인 한국청소년개발원(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기도 했다. 퇴직한 뒤에도 여전히 ‘일’에서 손을 놓지 않는 그는 비영리 봉사단체인 ADRF 회장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책도 쓰고 있다.

“지금까지 63권을 썼는데, 지금 또 한 권이 교정에 들어갔어. 여기 직원들도 내 에너지를 못 따라와.”

그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를 만들고, 파독근로자기념관장을 지낸 일이다. 그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광산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일기도 쓰고, 사진도 모았다”며 “지난 박근혜 정부가 (파독광부에) 관심이 있는 듯해 전 세계에 흩어진 파독광부들 연락처를 다 구해 유물을 모으는데, 잘 안 모여서 결국 독일 대사관을 통해서 추가로 유물을 기증받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손으로 한 것이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그때 모은 자료가 서울 강남구 양재동의 파독근로자기념관, 광화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경남 남해의 독일 마을에 나눠 소장돼 있다”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현충일 기념사에서 처음으로 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를 언급했다”며 “산업전사로서 조국에 기여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보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장님의 삶을 보면 우연 같은 일들, 기적 같은 인연들이 이어진다’고 인터뷰 내내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광부로 독일을 가고, 박사 학위까지 따는 과정, 한국에 와서 정부와 학계의 좋은 분들, 이건희 삼성 회장,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김춘식 전 계몽사 사장 등을 만나 도움받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그래도 내 개인의 동적인 에너지도 어느 정도 있다고 봐야지. 내가 막 움직이고 꿈틀대면 사람들이 나를 또 좋아해 준다.”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동적인 에너지의 근원에 대해 물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문현답이었다.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젊은이들, 기성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운을 뗀 권 회장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거침없이 답을 쏟아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같을 수 없고, 그 물결에 있는 아이들을 막을 길도 없어요. 다만 자기주도적으로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게 필요하지. 그것을 위해 사회적으로 세대 간 갈등을 좁히는 게 중요하고. 문화가 다른데, 옛날에 이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어떤 면에선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문화나 생활 양식을 배우고 변화하는 게 필요한 거야.”

젊은이들을 향해서도 거침없는 조언이 이어졌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발등에 불난 것을 끄는 놈들은 다 끄더라.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이해해서 자기 수준에서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뭔가, 그걸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진짜로 부딪히면 일자리는 차고 넘치는 것인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좀 더 얘기할까요? 자기 주도적인 삶,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과 함께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삶이 중요하지. 내가 남한테 준다는 건 내 행복이야.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한테 베풀어 주는 것이지, 그 사람 행복은 나중이야. 근데 나눠주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인데. ADRF가 바로 그런 나눔과 교육을 중심에 두고 있는 단체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자, 늘 그런 마음가짐을 새로 갖고 살아가. 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이 78세인데, 내가 딱 그 나이야. 살 만큼 살았지. 올해부터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력이 될 때까지 교육과 나눔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이야.”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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