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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09일(水)
러는 美와 ‘얄타 2.0 체제’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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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미국·러시아 관계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행정부가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고 미국 내 러시아 시설 2곳을 폐쇄하는 고강도 ‘대선 해킹 보복’ 제재를 단행했지만, 러시아는 맞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이에 대해 “훌륭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의 러시아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에 동유럽 나토(NATO) 회원국들의 안정을 인정받는 대타협(Grand Bargain)을 골자로 한 미·러 간의‘얄타 2.0 체제’ 구축 가능성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미·러 관계는 날로 악화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미국 외교관 755명에게 러시아를 떠나라고 통보하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북한·러시아·이란 통합 제재법’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표현에 따르면, 미·러 관계는 ‘외교적 저점(a diplomatic low point)’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6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그동안 중단됐던 러시아와 미국 간 고위급 외교 채널을 다시 가동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미국 측 반응은 그리 신통해 보이질 않는다.



이런 관계 악화에 대해 푸틴 정부는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내심 당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대러 경제 제재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를 북한·이란과 동일 수준의 제재 대상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선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통합 제재법은 미국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전선을 확장한 전략적 오류이며, 이를 모를 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설’이라는 미국 국내 정치에 압도당한 결과란 것이 러시아 측의 입장이다.

또, 러시아가 10만 대군을 동원해 벨라루스와 폴란드 국경지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며 이에 동유럽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9월 14∼20일 진행할 예정인 ‘자파드’(러시아어로 서쪽이란 뜻)는 4년 주기로 실시해 온 정규 군사연습이며, 러시아군 참가 규모도 2013년 1만2000명과 비슷한 수준인 1만3000명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토에 이 사실을 통보했으며, 참관도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가 국내 정치에 끌려다니는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현재 푸틴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70% 이상의 지지율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푸틴 대통령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러시아 대국주의 정서를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그 이후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그리고 2015년 시리아 군사 개입을 러시아인들은 민족 자존심 회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파드 훈련이 과장되게 알려진 것도 러시아 정부 탓이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에 입성하고, 1968년 체코 침공의 주력이었으나 냉전 붕괴 이후 러시아로 철수했다가 1998년에 해체됐던 ‘제1 근위 기갑군’을 2014년에 재조직한 뒤, 이 부대의 자파드 참여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2008년 러시아군 개혁 이후 ‘게라시모프 독트린’에 따라 ‘하이브리드 전쟁’에 주력하고 있는 러시아군에 제1 근위 기갑군의 부활은 군사적 효용성보다는 정치 홍보성이 더 크다.

따라서 러시아는 미국과 적절히 타협할 수 없다면, 이란·북한과의 반미 공조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늘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 러시아 국민의 피로감이 쌓일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미·중 대립 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한, 미국이 동유럽에선 현상 유지를 원할 것이란 것이 러시아 계산이다.

문제는 결국 한국이다. 중국 문제로도 힘든데, 러시아마저 북한을 본격적으로 감싸기 시작한다면 더욱 상황이 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의 러·북 반미 공조를 제어하고 러시아를 최소한 중립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러시아도 극동에서 중국이 득세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9월 초에 한·러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러시아 극동 개발에 참여하는 등 한·러 관계가 북·러 관계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러 가스전 연결 사업은 신중해야 하며, 신냉전 구도가 형성된다면 결국 한·미 동맹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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