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文정부의 편의주의적 적폐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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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관련, 여론이 곱지 않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이었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한 일만 해도 그렇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깊이 연루된 핵심 관계자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대통령에게 황 교수 연구의 조작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사태를 키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왜 이런 부적격 인사를 임명했을까. 세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도덕적 우월주의’에 대한 맹신이다. 청와대는 진보가 보수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능력이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것 같다. 더불어, 노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한 인사들에 대해 무한 신뢰를 갖고 있다. 야권에서 ‘노무현 하이패스 인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비판하는 지경이다. 둘째, ‘계도(啓導) 민주주의’에 대한 집착이다. 선의를 갖고 국민만 생각하는 대통령이 끊임없이 국민을 가르치고 이끌어 가면 어떤 인사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논리다. 셋째, 야당에 대한 절대 불신이다. 야당은 태생적으로 정부의 모든 인사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은 높은 국정 운영 지지도를 무기로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과거에 그 대상자의 행적이나 철학이 결정적으로 문 정부에 배치되지 않는 한은 과거의 그런 경험들이 결정적 하자가 될 수는 없다”는 말로 박 본부장 임명을 설명했다. 향후 인사에서 정부와 코드가 맞고 경험만 있으면 도덕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같다.

단언컨대, 대통령과 정부가 도덕적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정당화하고, 계도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민의 생각을 무시하며, 높은 국정 운영 지지도에 도취돼 야당을 협치가 아니라 적폐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한 성공은 없다. 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의 정책들도 인사에서 실패하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과거 보수 정권이 고·소·영 인사, 수첩 인사 등의 인사 적폐로 실패했던 것이 이를 입증해준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각계각층에서 정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잘못된 인사라고 비판하는데 대통령이 오기로 밀어붙이는 것은 이런 약속을 파기하는 것과 같다. 문 정부는 시종일관 적폐 청산을 통해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겠다고 했다. 문 정부에 묻고 싶다.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황 교수 논문 조작 사태 당시 연구 윤리와 연구비 부실 논란에 휘말렸던 인물은 적폐 청산의 대상인가 아닌가.

노 정부엔 면죄부를 주고 보수 정부 때의 잘못된 것만 문제 삼는 ‘선별적, 편의주의적 적폐 청산’으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모든 적폐는 차별 없이 청산돼야 진정성이 인정된다. 분명, ‘내로남불 인사’는 적폐 청산의 대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정부가 진정 실패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인사에서 도덕성이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만 적폐가 청산되고, 정의도 살며 그동안 무너졌던 ‘나라다운 나라’의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다. 분명, 이번 인사에서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