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100일 - 전문가 좌담>“脫권위·親서민 돋보이지만 靑에 가려 국회 안 보여”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화일보 자문교수단으로 활동했던 전문가들이 지난 9일 문화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기념 정치 및 외교·안보 분야 평가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양승찬(숙명여대 미디어학부)·송기창(숙명여대 교육학부)·권혁주(서울대 행정대학원)·조화순(연세대 정치외교학과)·박인휘(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 ① 정치·외교안보 분야

■ 참석하신 분들 (가나다 順)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
양승찬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사회 : 박민 정치부장

문화일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8월 17일)을 앞두고 지난 9일과 10일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 분야 전문가 10명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좌담회를 했다. 5년이란 대통령 임기에 비교하면 100일은 성과를 평가하기에 지나치게 짧은 기간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란 말에 ‘취임 100일에 정권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는 정치권 통설을 더하면 100일은 남은 임기를 전망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시간일 수 있다.

9일 정치, 외교·안보 분야 좌담에는 권혁주(이하 가나다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 양승찬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5명이 참석했고 10일 경제, 사회 분야 좌담에는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박상욱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태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5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문화일보 자문교수단으로 활동하면서 문 대통령을 포함해 각 당 대선후보들을 상대로 한 집단 인터뷰, 공약 검증 등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 좌담에는 해당 분야 전문가는 물론 연관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토론함으로써 기존 대담 및 좌담과 달리 일반 국민의 생각과 시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사회는 박민 정치부장이 봤다.

박민 부장 = 정치는 국정운영의 기본 틀이다. 국정운영의 비전을 제시하고 가치를 배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며 국정운영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취임 100일을 앞둔 문 대통령은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평가로 볼 수 있나.

박인휘 교수 = 두 가지 포인트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어느 정부나 일반적인 국민 지지도가 있고 오피니언 리더 사이의 지지도가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두 지지도 사이의 갭이 크다. 둘째, 정부를 초기에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사인데 문재인 정부는 인사의 풀(pool)이 넓지 않았던 것 같다. 소통의 정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3선의 전직 원내대표가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가는 것 등은 문제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회 권력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읽힐 수도 있다. 또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점이 우선시되다 보니 인사청문회에 등장한 인물 중에는 의외의 인물도 적지 않았다. 일자리나 중소기업 문제를 국정운영의 핵심 어젠다로 설정한 것은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조화순 교수 = 우리 정치에서 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문 대통령의 행동에는 권위주의 정치를 탈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국민 지지가 높은 것은 허니문 기간이라는 조건도 작용했지만 친근감 있는 친서민적 행보가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 이후에 구체제와 누적된 폐해, 적폐의 청산에 국민적 관심이 많았고 이런 기대들이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국정 전 분야에 걸쳐 과거 정치를 뒤집는 굉장히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고 그 의지를 높이 샀던 시기였다. 그러나 제약도 많았다. 여소야대 그리고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통합의 화두를 어떻게 던질 것이냐 등도 숙제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동북아 외교·안보 불안이 문재인 정부에 큰 부담이 됐다.

권혁주 교수 = 문재인 정부가 정책의 기본 과제로 설정한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은 굉장히 중요한 정책적 과제들이었고 서민이 고민하던 것이었다. 즉 문제의식은 정확했다고 본다. 반면에 그런 정책 목표를 어떤 수단으로 실시할 것이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냐를 판단하기에는 100일이 이르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선정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해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느냐가 향후 과제가 될 것이다. 다만 권위주의를 탈피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격의 없이 국민에게 다가가는 행동 등 스타일에서는 탈권위적이었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은 여전히 대통령과 청와대의 비중이 크고 권위주의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송기창 교수 = 문 대통령은 국민 마음을 잘 읽는다. 그런데 대중의 마음을 읽는다고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고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기도 한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 결과 반대 의사를 표시했는데 여론이 긍정적 평가를 한다는 이유로 국회 결정을 무시한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물론 여소야대라는 특수 상황도 있었지만 여론전으로 그런 상황을 돌파하는 게 과연 앞으로도 바람직한 방식인지는 고민해야 할 숙제다. 대선 공약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면서 국정운영이 대의민주주의 원칙 등을 포함한 법치보다는 정치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00일간 청와대가 너무 강하다 보니까 국회의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

양승찬 교수 = 100일을 기준으로 보면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안 보였는데 상대적으로 지난 정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있고 대통령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일부에서는 소통이 아니라 ‘쇼(show)통’이라고 비판하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북핵,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 실질적으로 맞닥뜨리는 이슈들에 대해 국군 통수권자로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국가 리더로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00일 동안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힘을 쏟느라 아직까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문 대통령이 내놓는 어젠다들은 이미 답이 다 정해져 있고 다만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 대중적 지지에 기대는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남은 임기 동안은 결국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문제가 중요할 것이다.

조화순 = 인사를 보자. 처음에 이낙연 국무총리,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할 때만 해도 정말 협치하려나 보다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 인사에서 ‘코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고, 자기 정파만 쓰겠다는 의지가 더 명확해지고 있어 실망이 컸다. 그러다 보니 사실 청문회가 거의 무용지물 아니었나. 심지어 장관이 저 정도인데 이 정도 나쁜 짓을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통합과 협치를 안 하겠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총리만 해도 그렇다. 기대를 받고 됐지만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 책임총리 공약도 사라졌다.

권혁주 =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 1000여 명의 교수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인재풀이 넓지 않은 것 같다. 장관 등의 인선과정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든지 대통령과 한 번이라도 일해본 사람들이 주로 중용됐다. 함께 일하거나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각계 전문가들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조화순 = 책임총리는 물론 책임장관도 찾아보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의 각 부처는 청와대 어젠다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동원된다. 그러다 보면 박근혜 정부 정책을 180도 뒤집는 정책을 아무 저항 없이 결정하고 집행한다. 해당 정책을 결정할 때는 분명 나름대로 논리와 정당성이 있었을 텐데 무시된다. 일부 부처 장관은 행사 참석 장관 역할로 전락한 수준이다. 이런 건 새로운 국가를 꿈꾼다면 바꿔야 할 모습이다. 성과연봉제의 경우도 박근혜 정부가 다소 무리하게 추진했지만 나름 논리와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없애라고 하니까 다 없어지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태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권혁주 = 어떤 정책을 정하거나 폐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재정적 부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원전이나 성과연봉제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가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행정관료에게 정치적 충성 요구를 했다는 것인데 아직 박근혜 정부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정책 결정 과정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또 다른 문제는 포퓰리즘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 정책적 측면에서 옳은가에 대해 차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송기창 = 행정에는 정치와 다른 요소가 있다. 행정은 합법성, 안정성, 중립성, 절차적 정당성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정치 논리가 우선되면 그런 가치가 무너진다.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거다.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정에 그걸 어떻게 녹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조급하게 모든 문제를 정권 초기에 해결하려다 보니 정치가 행정을 압도하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박민 = 문재인 정부는 원전 공사 중단 등 탈원전 정책과 같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일반 시민이 당사자인 교육 정책의 경우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등 정책 결정과 추진에서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양승찬 = 문재인 정부는 ‘설명’이 필요한 시점인데 설명 없이 이런저런 것을 한다는 ‘메시지’만 던진다. 정답이 정해진 정책을 제시하고, 설명이나 설득을 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소통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처음 총리를 임명할 때 문 대통령이 직접 배경을 설명했고 다들 신선하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후 인사에서는 역시 일방통행식 메시지 제시만 있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도 정책이 몇 차례 변경됐는데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더구나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던져놓고 이걸 따르지 않는 사람은 개혁 대상이고 적폐라고 규정한다.

박인휘 = 박근혜 전 대통령에 비해 소통이 늘어났는데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적이고 양방향적인 소통보다는 대중적 지지를 동원하고 그것을 권력의 자산으로 삼는 소통 방식 때문이다. 굉장히 우려되는 지점이다.

조화순 = 대중의 지지는 정치적 자산이지만 부담이 되기도 하고 이후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동원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패착을 불러올 수 있다.

박민 = 여소야대이자 다당제 체제에서 국회와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권혁주 = 국회와의 소통은 청와대나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회가 과연 소통할 만큼 자격과 준비가 돼 있느냐, 또 노력하느냐도 문제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국회는 미래지향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와의 소통은 불가피하다.

박인휘 = 문재인 정부 100일 동안 개혁하고자 하는 영역은 거의 가시화됐다. 검찰, 교육, 군, 경제 분야의 주요 개혁 어젠다가 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중적 지지에만 호소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개혁을 위해서는 입법과 재원 조달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와의 협치는 필수적이다.

박민 = 집권 초 100일은 대통령의 개인적 리더십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선 전 문 대통령에 대해 자기만의 비전이 있는지, 혹시 진보진영의 아바타가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의 시선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00일간 문 대통령은 국정운영에서 나름의 독자성과 유연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송기창 = 우려가 적지 않았고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의 다른 버전이 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희망을 보여준 면도 있다. 예를 들어 사드 배치와 관련,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강행하겠다고 했다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자 곧바로 임시배치를 결정했는데, 그건 상당한 결단이다.

양승찬 = 젊은이에게 좋은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우리가 그간 리더들에게 기대했듯이 땅으로 내려와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는, 서민 눈높이에 맞춘 리더십을 보여준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본다. 소외 계층을 직접 보듬어 주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그간 그런 감성 리더십이 없었는데 국민 개개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간 것은 국정운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지지층을 상대로 하는 메시지가 강했고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문 대통령이 지지층이 싫어하는 결정도 전체 국민을 위해 과감하게 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北核 위기국면 선택지 적어… ‘운전대論’ 통할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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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순 =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인식, 비전 제시 등에서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다만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아직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반대하는 사람을 적폐로 규정해 편을 갈라버리면 사회 전체로 국정운영의 비전을 확산하기 어렵고 통합의 리더십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정책 집행 능력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실행하는지도 중요하다. 현재로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조급하다. 정권 초기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 보니까 세부적인 실행력이 약해진다.

박민 = 출발 100일에 대해서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중요하다.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갔으면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

권혁주 = 문 대통령이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그간 탄핵, 적폐청산 등과 같은 과거의 문제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정부와 여당이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송기창 = 과거를 들추고 혼내는 일이 정권마다 되풀이돼 왔는데 식상하고 피로감을 준다. 미래에 대해 얘기해줬으면 한다. 겉으로만 탈권위를 보여주지 말고 내용상으로도 권위주의를 탈피하길 바란다.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지 말고 설득하고 소통해야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다.

양승찬 = 전반적으로 모든 게 결정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시키는 대로 해)’ 식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이 다른 목소리도 좀 더 폭넓게 들어줬으면 좋겠다. 어느 한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다. 본인의 결정도 다시 생각할 줄 아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절차적 과정이 많이 생략되고 있는데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신뢰도 줘야 한다.

박인휘 = 같은 의견이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적폐를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 응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조화순 = 솔직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명확하고 용기 있게 국민에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박민 = 외교·안보 분야는 국민의 우려가 가장 큰 분야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안보와 대북문제와 관련해 보수진영의 의구심을 사 왔다.

박인휘 =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의아해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북한은 핵 개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면서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주장해 왔고 따라서 우리가 대화를 제의해도 쉽게 응할 리가 없는데 왜 집요하게 대화를 제의하는지 국민은 의아해한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오락가락해 국민이 혼란스러웠지만 역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조화순 =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외교·안보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집권했는데 명확한 상황 인식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추진이 이를 뒷받침한다.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와 노선을 대북문제의 현실과 조율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선택지가 몇 개 안 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북핵 위기에서 우리의 역할 공간이 워낙 좁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아쉬움이 남는다. 절박성에 걸맞게 문재인 정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켜 한·미 공조를 굳건하게 해야 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박민 = 북핵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는 이렇게 진단했다. 첫째, 협상만으로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둘째, 중국은 미국을 위시한 강력한 외부적 압력에도 북한에 대한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셋째, 북한은 국제 제재만으로 빠른 시일 내에 붕괴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운전대론’이 어느 정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권혁주 = 사실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도 북핵 문제와 관련,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전략적 대결구도에서 풀어야 한다. 더구나 북핵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과 견제라는 구도 속에 있다. 우리 정부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능력이 요구되는 상황인데 문재인 정부는 그나마 정책의 일관성이나 한·미 공조에서 우려를 자아내는 행보를 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박인휘 = 사실 지금 북한을 비핵화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대화와 제재의 병행을 강조하면서 베를린 구상, 남북군사당국회담, 남북적십자회담 등을 잇달아 제안해 왔다. 여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60~70%에 달하는 것 같다. 긍정 여론은 30% 정도인데 문재인 정부 지지층에서는 한국 정부만의 페이스(pace)를 만들어보자는 것 같다.

권혁주 = 유엔을 포함해 대다수 국가가 대북 제재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실효성이 없는 대화를 강조하다 보면 국제적 신뢰도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 우려도 없지 않다.

박민 = 미국 입장에서 지금 제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이 소형 핵탄두와 ICBM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미국으로서는 핵탄두를 장착한 ICBM의 미국 본토 도달을 막는 것이 제1의 목표로 바뀔 수 있다. 결국 북핵 폐기에서 북핵 동결로 전략적 목표를 수정하면 북한과의 직접 대화 등 ‘코리아 패싱’ 상황이 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송기창 = 실제로 대화 제의가 국내용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다. 안될 걸 뻔히 알면서 제스처만 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는 우방이나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거다.

양승찬 =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제스처를 지속해 왔으니 그 연장선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더구나 이미 물 건너간 상황에 대해 허상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국민이 신뢰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설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에 대한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화순 = 8월 위기설이 꾸준히 제기되지만 진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유엔 제재 결의 등을 다 무시하고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제재에 반발해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진 않다. 특히 김정은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이번 유엔 제재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중국의 원유 공급은 유지되고 있다. 원유 공급만 중단하면 북한이 10일도 버티기 어렵다는 전망이 있는데 아쉽다. 그간의 계속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회복세라는 보도도 있었다.

박인휘 =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여러 차례 평화체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평화체제는 비핵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구체적 대안 제시가 없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우리는 미국과 중국을 외교적으로 잘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국민의 의구심이 적지 않다.

송기창 = 사드에 따른 중국의 경제제재가 초기보다 완화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미국의 불안을 불식시킨 것도 아니다. 결국 미·중을 겨냥한 줄타기 외교는 성과가 없는 게 아닌가.

양승찬 = 실제로 사드 배치와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추진으로 시간을 조금 번 정도 이상은 아니지 않나. 결국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역량에 대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권혁주 = 미국, 중국과의 관계는 북핵 문제와 분리할 수 없고 북한이 미국을 대화 상대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미·중 간의 줄타기 외교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차라리 지금 상황은 안보가 중요한 화두고 따라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화순 = 문재인 정부의 전신인 노무현 정부는 균형자론을 내세웠지만 이상주의적인 생각이고 실질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주장이다. 우리는 국제관계에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미·일 관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 더구나 북핵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패권국가들이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에 설 수밖에 없다. 좀 더 현실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국제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접근했던 외교정책이 결국 패착이었다. 처음부터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과의 관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는데 경제 관계처럼 안보 문제도 접근할 수 있다고 상정한 게 문제였다. 이번 핵위기가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는데 제대로 못했다.

박인휘 = 사드와 함께 한·미 동맹과 관련한 주요 현안 중 하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조정 문제다.

조화순 = 한·미 FTA에 대해서는 미국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한·미 FTA는 단기적으로도 미국의 손해가 아니었고 궁극적으로 보면 미국이 형성하고자 하는 경제 질서의 일환이다. 이에 맞서서 중국이 형성하려는 국제경제 질서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 사실 한·미 FTA는 문재인 정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가 체결했고 그 결과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에 크게 기여했다.

박민 = 한·미 동맹의 또 다른 현안 중 하나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다. 명분상으로나 당위론적으로 우리의 안보는 우리가 지키는 게 맞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는데 우리에게 작전 권한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이 핵과 ICBM을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북한의 도발에 따른 전장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동북아, 심지어 미국 본토로까지 확대됐다. 즉 국제전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군이 주도권을 잡고 싶지만 아직 충분한 능력을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전작권 문제는 자주국방의 측면에서만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박인휘 = 문 대통령이 한·미 동맹 정체성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출범했는데, 적절한 순간에 한·미 정상회담도 하는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이 같은 현실적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인식은 한·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간에는 일본군위안부, 독도, 역사교과서 등 민감한 현안이 적지 않다.

조화순 = 현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가시적인 진전을 보기가 어렵고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도 있다. 우리가 반성하라고 요구한다고 일본이 반성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본이 반성하도록 국제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이슈가 되는 등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박인휘 =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협상을 한번 리뷰하겠다는 건데 국가 간 합의를 백지화하는 건 안 될 것이다. 일본과의 협의하에 추가 조치를 취하는 수준으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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