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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16일(水)
김창완 “46년前 5000원짜리 통기타와 숟가락통이 兄弟음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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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만난 김창완은 처음에는 진지한 질문에 간간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맥주가 한 잔 들어가자 환하게 웃으며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가수 데뷔 40주년 맞은 ‘피터팬’ 김창완

늘어진 티셔츠에 청바지, 안경 너머의 평범한 얼굴. 그러나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서는 순간 돌변하는 카리스마. 1977년 ‘아니 벌써’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며 데뷔한 후 올해 꼭 40주년을 맞은 가수 김창완(63)을 이달 초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만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아재’이기를 거부하고 피터팬으로 사는 그는 여전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이날도 김창완은 온종일 빠듯한 일정에 쫓기다 늦은 오후에야 짬을 냈다.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터라 우선 빛이 있을 때 밖에서 사진부터 찍었다. 카페 앞길 건너편 여의도 공원에서 사진 촬영 후 다시 카페로 돌아가려는데 김창완이 슬쩍 말을 꺼냈다. “괜찮으면 그냥 공원에서 인터뷰하는 건 어때요?”

어둡고 소란스러운 카페보다는 차라리 탁 트인 야외 공원이 더 나았다. 마침 오락가락하던 비도 그친 상태였다. 공원 안쪽 연못 옆 피크닉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2∼3번째 질문과 대답이 오갈 즈음, 김창완이 또 하나를 제안했다. “더운데 음료라도 마시면서 합시다. 맥주 괜찮아요?”

피크닉 벤치 테이블 위에 캔 맥주와 간단한 주전부리가 올려지자 진지한 질문에 간간이 미간을 찌푸렸던 김창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렇게 김창완과의 인터뷰는 자연스레 ‘취중(醉中) 토크’가 돼버렸다. 처음엔 긴장한 모습이던 그는 맥주를 한 모금씩 할 때마다 경계심을 푸는 듯했다. 그는 이내 “‘선생님’이라는 거북한 호칭 대신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며 기자에게 ‘호형(呼兄)’을 허(許)했다.

김창완은 지난 40년간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아티스트다. 말하는 듯한 가사와 재기 넘치는 사운드, 엇박자 같은 보컬은 김창완 음악의 상징이 됐다. 1977년 서울대(잠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틈틈이 써두었던 100여 곡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앨범을 하나 발표했는데 그게 소위 ‘대박’이 났다. 지금 들어도 젊음의 패기가 느껴지는 데뷔곡 ‘아니 벌써’가 들어 있는 앨범 ‘산울림’이다.

“1971년 대학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갈 무렵 종로구 탑골공원 건너편 악기점에서 5000원을 주고 독일 쉼멜 통기타(카르카시 기타 교본과 피치 파이프 포함)를 산 게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두 달쯤 뒤에 둘째 동생 김창훈이 1500원짜리 통기타를 사오고, 막내 김창익은 숟가락 통을 심벌즈 삼아 리듬을 맞추면서 산울림의 형제음악이 탄생했죠. 그리고 1975년 창훈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필리핀 밴드가 쓰다가 놓고 간 1만5000원짜리 중고 기타와 7000원짜리 베이스 기타, 20세기 앰프와 국산 드럼을 장만해 밴드 음악을 시작했고요. 이어 1977년 초겨울 음악평론가 이백천 선생님의 주선으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 암페그 베이스 기타를 빌려와 ‘산울림’ 1집을 녹음했어요.”

서울대·고려대 등 명문대 출신의 3형제 밴드에 대한 당시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독특한 밴드음악, 작사·작곡을 자유자재로 하는 실력은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김창완은 록, 발라드, 프로그레시브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아니 벌써’ ‘개구장이’ ‘고등어’ 등은 대체 불가능한 김창완만의 스타일이고 장르였다. 흐느적거리면서도 넘치는 힘, 생활밀착형의 가사가 팬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산울림으로 출발한 밴드는 2008년 막내 김창익이 세상을 뜨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충격을 받은 김창완은 산울림을 해체하고 대신 김창완밴드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2015년 김창완밴드의 세 번째 앨범 ‘용서’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산울림으로 13집, 동요 4집, 김창완 솔로 4집, 김창완밴드 3집 등 약 30장의 앨범을 냈어요. 음악을 하면 할수록 절실히 와 닿는 게 있어요. 음악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이 우리를 하게 만든다는 거죠. 이건 마치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만나고 싶은 것과 같아요.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반찬 위에 파리가 와서 앉기에 손을 저어 쫓았어요. 그런데 다시 날아와 또 쫓아버렸죠. 세 번째 쫓아냈더니 파리가 테이블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 앉더라고요. 그런데 그 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내가 저걸 굳이 왜 쫓았지’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음악도 이와 같아요.”

음악을 난데없이 파리 쫓기에 비유하는 40년 ‘내공’을 알 길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3집 ‘용서’에는 ‘중2’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타이틀곡이 있다. 사춘기 절정의 ‘중이병’을 패러디한 것이다. 60대의 밴드 리더는 왜 굳이 이런 제목을 달았을까.

“처음엔 주변의 중2들이 미워서 곡을 썼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2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느꼈고, 이를 다시 고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작 중2들은 제 노래의 진의를 안 받아준 것 같아요. 앨범이 큰 반응을 얻지 못했으니까요. 근데 그건 순전히 제 착각이었어요. 만약 중2가 내 노래에 반응했다면 그건 더 이상 중2가 아닌 거죠. 그런 점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꼈어요. 하하”

요즘 중2 세대는 김창완을 가수보다는 연기자나 DJ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991년 드라마 ‘사랑의 풍차’를 통해 연기자로도 데뷔했고, 이후 ‘은실이’(1998) ‘아일랜드’(2004) ‘포도밭 그 사나이’(2006) ‘하얀거탑’(2007) ‘별에서 온 그대’(2013) 등 알만한 히트작에 두루 출연했다. 서민적이거나, 혹은 교활한 악역을 오가며 노래 스타일만큼이나 힘을 뺀 연기도 보여줬다.

라디오 DJ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는 현재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오전 9∼11시까지 스튜디오에 앉아 생방송을 한다. 1978년 TBC ‘7시의 데이트’로 일을 시작했으니 이것도 벌써 39년이나 됐다.

가장 자유로운 영혼의 밴드 가수가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DJ를 40년 가까이 쉬지 않고 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록적이다. 김창완의 참모습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현역 최장수 DJ일 거예요. DJ를 하면서 단 하루도 편히 쉰 적이 없어요. SBS 라디오는 2000년부터 했으니 이것만도 17년 됐네요. 그동안 가족여행 한번 못 가봤어요. 제 라디오 방송 지론이 ‘그 시간에 반드시 거기에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지난 수십 년간 큰 사고 없이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재주가 많은 사람이 오히려 빈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김창완은 자신을 더욱 낮춘다.

“여러 가지 하다 보면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어요. 맞는 말이에요. 저 자신이 이 분야에서 뭔가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것은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에 충분히 빠져 있다는 거죠.”

팔방미인형의 엔터테이너지만 김창완에게서 무엇보다 짙은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철저한 평범함 때문이리라. 개구쟁이 같은 미소, 나직한 말투, 피로에 찌든 듯한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을 준다.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누구나 찌든 삶이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하려고 해요. 생각을 고쳐먹으면 되죠. 찌든 일상이 삶의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만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행복이 샘솟거든요.”

예순이 넘도록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과 부지런함이 오랜 시간 그를 남들과 구별 지었던 요소 같다. 그는 ‘출퇴근’하는 샐러리맨처럼 음악을 하고, DJ를 해왔다. 바쁜 틈에도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저보고 까칠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얼마나 평범한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일하지 않고 있는 게 늘 불안했어요. 사사로운 여유는 사치로 느껴졌고요. 아마도 어려서 집안 사정이 녹록지 않았던 데서 오는 존재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대학생이던 1970년대 말에도 청년실업이 심각했어요. 우리 모두 ‘흙수저’였던 때죠. 일에 대한 집념은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에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인간 김창완’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났다. 치열했던 삶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 그에게 “김창완은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대중에 노출된 사람으로서 상술로 조작될 수도 있겠지만, 인간 김창완은 사람들과 격의 없이 부딪쳤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상처가 날 수도 있고, 핵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지금은 모든 게 도식화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진심을 가지고 사람들과 만나는 게 김창완이죠. 라디오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대중을 향한 저의 제스처죠.”

아무리 동심을 간직하려 해도 시간 앞엔 도리 없다. ‘아니 벌써’로 기성세대를 거부했던 김창완도 어느덧 후배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어른’이 됐다.

“저는 멘토를 거부해요. 아니 혐오해요. 젊은 세대와 호흡하는 건 좋지만 그들의 멘토가 되기는 싫어요. 자신의 거울은 자신뿐이죠. 인생은 ‘큼큼’이에요. 하하.”

김창완은 지난 5월 종영한 MBC 일일극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극본 조정선)에 3남 1녀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면서 별명을 하나 얻었다. 바로 ‘큼큼 선생’이다. 극 중 김창완은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큼큼”이라고 중얼거렸다. 조정선 작가가 대본에 지문으로 써놓은 말이었다. 그런데 자주 쓰다 보니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됐다. “곤란할 때 큼큼하면 다 통해요. 매우 유용한 말이죠.”

2시간 30분간 진행된 ‘취중 토크’는 결국 2차로 이어졌다. 김창완은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지 않냐”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2차 토크는 김창완의 집이 있는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무르익어 마치 10년 만에 다시 만난 형-동생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노벨상을 받은 밥 딜런에 대한 생각, 잠시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Vegan) 생활을 했던 이유,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른다는 후배 장기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자세한 건 기억에 없다. 그 사이 그가 만든 ‘폭탄주’가 쉬지 않고 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맛있고 즐거운 폭탄주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터뷰=김인구 차장(문화부) clark@munhwa.com
e-mail 김인구 기자 / 문화부 / 차장 김인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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