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 대통령과 말 폭탄 맞짱을 뜨며 군사 공격 협박을 하는 나라, 북한. 그에 관한 책이다. 제목은 북한의 공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비튼 것. 책 내용을 보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 공공배급체계가 무너져 시장경제가 퍼져가는 북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원서의 제목은 ‘North Korea Confidential’. 저자 다니엘 튜더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한국 맥주가 맛이 없는 것은 일부 업체의 독과점 탓이라는 기사를 써서 화제가 됐다. 현재 청와대 해외언론 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또 다른 저자 제임스 피어슨은 로이터통신 서울 주재 특파원으로, BBC 라디오 등에서 북한 관련 방송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국인들은 북핵으로 조성된 한반도 긴장에 대해서 우려하면서도 정작 그 너머에 있는 북 주민의 생활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자신들의 책이 2년 전 영미권에서 출간됐는데, 한국어판이 이제야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두 저자는 북한 주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제 체제의 이중성을 강조한다. 겉으로는 국가에 의한 공공배급으로 유지되고 있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적 거래의 장마당에 의해 작동되는 현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존재하지만 아무도 그걸 인정하지는 않는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 섹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함흥에서 여성들이 길가에 좌판을 차려 놓고 행인에게 음식과 물건을 팔고 있다. 비아북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평양의 소녀 뒤편으로 ‘수령님은’으로 시작되는 선전 포스터가 보인다.
북 당국이 이중 경제를 묵인하게 된 것은, 1994∼1998년의 대기근 때문이란 게 저자들의 분석. 300여만 명까지로 추정되는 대기근의 희생자 앞에 그들의 국가 배급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와 경제개혁을 최소한 허용하는 대신에 급진적인 변화는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북 당국의 현재 모습이다.
책은 평양의 상류층이 자본주의 바람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한다. 값비싼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쓰는 것을 넘어 번쩍이는 스위스 시계를 차며 명품 가방을 뽐내는 사람들. 한국에서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이 사용할 줄 모른다고 했던 태블릿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업소의 노래방 기계를 집에 들여놓고 가무를 즐기기도 한다. 물론 이 모습은 소수의 엘리트에 한정된 것이다. 평양 외곽에서는 농부들이 여전히 소를 끌어 밭을 간다. 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은 묽은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
책은 북 주민들이 한국의 TV 드라마를 즐겨 시청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소개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나와 증언한 내용과 유사하다. 주목되는 것은, 향후 북의 변화를 이끌어 낼 매체로 USB를 꼽고 있는 것. 크기가 작아서 북 당국의 감시를 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두 저자는 3대 세습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제 봉건 권력이 유지되는 배경으로 ‘조직 지도부’를 꼽는다. 300여 명의 핵심 엘리트로 구성된 조직 지도부는 북 주민 정보를 통제하고, 당 생활 점수를 기록하며, 군 인사를 관리한다. 또한 모든 국가기구 산하 부서에 지침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
김정일이 국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만든 조직 지도부는 현재 체제 내의 그림자 조직으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세계를 놀라게 한 장성택 처형은, 그의 제거를 바라는 조직 지도부 내 엘리트들이 연합 세력을 형성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시각이다. 현재 김정은의 권력이 안정화 체제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긴 하나 그에게 전권이 집중된 단일체가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 4월에 나왔던 책 ‘수령 연기자 김정은’의 시각과 전체적으로 같지만, 약간 차이가 있다. 탈북 작가 장진성 씨가 쓴 이 책은 조직 지도부가 김정은의 신권(神權)강화 연극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의 저자들은 조직 지도부가 김정은과 경쟁하거나 혹은 견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두 관점이 모두 맞을 것이다. 260쪽, 1만7000원.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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