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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박학용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18일(金)
‘萬事稅通’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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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우리의 신화나 민담에는 ‘100’이란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동물이 인간이 되려는 대목에선 단골손님이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할 때 환웅이 햇빛 보기를 금한 기간이 100일이다. 민담 속 여우는 사람 간을 먹고 인간이 되려고 여자로 둔갑해 남성을 꾄다. 이때 먹어야 할 간의 수도 100이다. 우리 조상은 100을 ‘꿈·희망’의 숫자로 삼으며 후세에 교훈을 던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됐다. 일부 인사 실책에도 70%대 이상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탈권위적·감성적 리더십과 쾌도난마식 정책 결정이 원동력이다. 경제정책은 국가근간을 바꿀 혁명적 내용 일색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의 ‘100일’은 국민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희망의 숫자가 될까. 이대로라면 ‘아니올시다’다. J노믹스엔 4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먼저, 기업이 없다. 사람 중심의 성장을 하겠다니 당연한지 모른다. 한데 ‘성장·고용’의 주역 기업 주머니를 털어 정부 지갑 채울 궁리만 하니 문제다. 내년에 당장 기업에 최대 40조 원 청구서가 날아간다는 분석도 있다. 법인세 인상은 정부 안중에 기업이 없다는 의구심을 낳는다. 선진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에 나선 마당에 세율구간까지 신설해 과표 높은 법인에 고세율을 매기는 식으로 세금을 누진적으로 올린다니 그 발상이 놀랍다. “기업이 강한 나라가 경제도 강하다”는 경제학자들 고언엔 귀를 막은 모양이다.

둘째, 구조개혁이 없다. 쉽고 생색나는 일에 익숙한 정부라 예견된 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개혁은 험난하지만 딛고 가야만 하는 길이다. 노동개혁은 발이 문드러져도 꼭 지나가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그래야 저성장·양극화가 풀리고 양질의 일자리도 생긴다. 강성 노조 설득이 가능한 문 대통령이 난제를 해결할 적임자다. 그런데도 고름은 그냥 놔둔 채 새살 돋기만을 바란다. 되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 등과 같은 역행정책만 남발한다.

셋째, 금융이 없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혈맥이자 4차 산업의 핵심이다. 그런 금융에 대한 문 정부 홀대는 노골적이다.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직함이 ‘금융’을 뺀 경제비서관으로 바뀌었다. 금융감독원장 인사는 부지하세월이다. 반면 소비자·서민을 보호한다며 반시장정책을 양산한다. ‘돈이 잠들지 않는 한 금융위기는 주기적으로 온다’. 금융을 복지정책의 지원 수단쯤으로 보는 대통령 핵심참모들이 염두에 뒀으면 하는 말이다.

끝으로, 재정청사진이 없다. 문 대통령이 여기저기 방문하며 약속한 ‘특명사업’ 비용만 100조 원이 넘는다. 취임 이후 매일 1조 원씩 푼 셈이다. 상당 부분은 178조 공약사업과 별개다. 깜짝 정책이 얼마나 더 나올지에 따라 청구비는 더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 문제는 재원대책이다. 지출 구조조정과 부자증세 등으로 메우겠다지만 단순셈법만으로도 미덥잖다. “과거엔 전쟁으로 나라가 망했지만 이젠 부채 때문에 망한다”는 경고를 흘려 들을 수 없는 이유다.

문 정부는 만사가 세금으로 통한다는 ‘만사세통(萬事稅通)’ 정부다. 하지만 재정에 기댄 성장은 신기루다. 훗날 버블 발생에 재정악화까지 불러온다. 기업 중심 성장이 효과 없다며 정책 축도 사람 중심 소득주도성장으로 급전환했다. 충분한 공론이나 국회 협조 없이 검증도 안 된 과잉·과속 정책들이 툭툭 나와 국민을 놀라게 한다. 우리는 서비스산업법이나 규제프리존법 한 번 시행해 보지 못하고, 노동개혁도 제대로 시도해 보지 못한 나라다. 그러니 기업 중심 성장 실패를 단정하는 건 확신편향이자 독선이다.

지금 한국 경제가 따라가야 할 검증된 길은 일본이다. 일본은 6분기 연속 성장에 청년실업률도 4%대 중반이다. 우리는 ‘성장률 주춤’에 7.9%다. 일본 경제의 부활은 구조개혁·규제혁파·혁신을 통해 높아진 기업경쟁력이 소비·투자 확대로 이어져 내수 주도 성장을 이끈다는 ‘지당한’ 경제원리를 실행한 결과다. 일등공신은 아베 신조 총리가 쏟아내는 친기업정책이다. 기업 요청이 있을 때 관련 규제를 일시 동결하는 ‘샌드박스’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문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양국 모두 이번이 두 번째 집권이지만 아베총리는 첫 번째 실패를 교훈 삼아 험로(險路)를 뚜벅뚜벅 가는 반면 문 대통령은 평로(平路)만 질주한다. 이러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설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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