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剖棺의 정치로는 미래 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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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17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 속에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민이 주인이 돼 보다 정의롭고 더 잘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정 운영의 “물길을 돌려놓았으니, 이제 걱정 말아요, 그대”라고 말하는 듯했다.

가수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기자회견장에 들리도록 연출하며 문 대통령은 지난 100일 동안 급속하게 실시한 패러다임 시프트(변형)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이 꿈꾸는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국민의 70∼80%가 새 정부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문 대통령의 개혁 의지의 실천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공의 지지율을 좀 냉정히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지율은 편차가 있지만, 과거 어느 정권에서든 초기의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함께 일어났던 정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 정권이 현재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새 정권이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과 업적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국정 운영 패러다임의 변경이라는 실험정치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적폐 청산’이다. 전자는 현실보다 이념적인 믿음에 의한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모호한 스탠스, 실현 가능성 없는 비핵화를 위한 김정은과의 대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증원과 완전 의료보험(문재인 케어)을 위한 증세, 탈(脫)원전 및 보(洑)를 설치한 4대강 원상 복구 등과 같은 실험적인 정책을 통한 ‘목가적 이상사회’의 건설이다. 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세월호 침몰, 광주민주화운동은 물론 장준하 선생 실족사(失足死)의 진상 규명 등을 다시 수사해 ‘평화로운 나라, 진정한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과 현실은 다르다. 진행 중인 실험은 결과를 모르는 불확실한 현실이다. 그래서 이것은 위정자는 물론 국민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해 우리 경제를 무너뜨려 남미와 그리스의 경우처럼 집권 세력에 오히려 어려움의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이러한 국가적 위험을 외면한 채 책임을 모호하게 피하기 위해 위원회를 조직해 ‘적폐 청산’이란 미명으로, 미래를 여는 정치를 하지 않고 부관참시(剖棺斬屍)나 다름없는, 이미 과거에 재판받은 사건 등을 또다시 재수사하겠다고 한다.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정의를 위한 사회 개혁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많은 국민에게 이것은 정치 보복으로 비치기 때문에 그의 공약인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가’가 아닌 정치인이나 정치꾼은 복수(復讐)를 정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프랜시스 베이컨은 “복수는 조잡한 정의”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발전을 위해, “복수를 하면 새로운 복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악순환을 말한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말과 함께 ‘가장 고귀한 복수는 관용’이라는 서양 격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 대통령이 100일인 지금부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가 야당과 반대 세력과의 소통을 통해 통합의 길로 나아가 6·25 이후 최대의 난국이라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 것이다. 지금 조선 시대처럼 분열되고 찢어진 국민을 문 대통령이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면, 국민은 그에게 더 높은 지지율을 보일 것이며 청사(靑史)에 길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