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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1일(月)
평화와 동맹에 대한 거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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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프랑스 연합군 33만여 명의 구출 작전을 다루고 있다. 애국심과 리더십, 생존 본능과 이기심 등 여러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작품이다. 덩케르크(?케르크) 철수 뒤 영국은 결사 항전 의지를 다졌고, 런던의 ‘자유 프랑스’는 자체 군대를 갖고 본토의 ‘비시 프랑스’에 맞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은 영국 침공을 미루고 동부 전선(소련)으로 방향을 돌렸으나 교착 상태에 빠지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패전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한참 뒤의 일이고, 덩케르크의 본질은 안보 실패에 따른 참담한 비극이다.

2차 대전사(史)는 그 자체로 안보 교과서다. 다닥다닥 국경을 맞댄 유럽의 현대사는 동맹과 배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는 프랑스와 영국의 공동방위 협약에 기댔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음엔 프랑스가 그렇게 됐다. 영화에도 나오듯 영국은 자국 방어에 필수적인 전함과 전투기까지 차출할 수는 없었다. 초기엔 영국의 안보 불감증도 심각했다. 1938년 9월 네빌 체임벌린 총리는 아돌프 히틀러와 뮌헨회담을 마친 뒤 “전쟁 없이 평화를 가져왔다”고 외쳤는데, 세계사의 가장 바보 같은 장면의 하나로 남았다. 덩케르크의 교훈은 위장 평화에 속고, 동맹에만 의존해 안보를 소홀히 하면 패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평화’를 앞세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며 김일성을 향해 “한라산 기슭에서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 얘기하자”고 제안하고 “자유와 평화의 땅”을 약속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김정일과 회담한 뒤 “전쟁 위협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평화는 뒷걸음쳤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차 핵위기가 발생했고,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0월에는 플루토늄 외에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까지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0월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한시도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고, 대화·지원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시대적 소명은 평화”라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천명했다. 역대 정권의 ‘평화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이든, 평화협정이든 결국은 힘으로 유지된다. 1928년 당시 모든 강대국이 참여한 ‘부전(不戰)조약’이 상징적이다. 한반도 평화는 당위임에 분명하지만, 지금은 평화를 파괴하는 북한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만큼의 압박을 가할 때다. 이를 간과한 평화 추구는, 2차 대전 직전 히틀러의 평화 제스처에 속아 패망한 유럽 국가들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위험에 더해 한·미 동맹의 원심력도 커지고 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미군 철수 및 연합훈련 중단 주장이 미국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예방전쟁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는데, 한국이 대북 응징에 앞장서기는커녕 북의 보복을 앞세워 한사코 반대한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외교적 접근법은 결국 미·중 담판이나 미·북 뒷거래인데, 북한과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 즉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할 것이다.

동맹에 대한 한·미 입장은 1953년 상호방위조약 체결 때도 달랐고, 지금도 다르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생각도 미국에선 훨씬 약하다. 상호방위조약 존립 토대는, 상대국에 대한 위협·공격을 자국의 문제로 보고 협의·대응할 것(제2조)이라는 ‘절대적 상호 신뢰’다. 북한의 괌 포위 공격 협박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군사 옵션 장전”으로 맞섰을 때, 문 대통령은 미국을 향해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면서 대화·제재 병행론을 되풀이했다. 사드 반대, 미국 대사관 포위 시위와도 겹쳤다. 미국 입장에서는 ‘신뢰’를 의심하게 된다. 동맹 파기 의도가 아니라면 상호방위조약 실천에 한국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실제론 ‘한국 방위조약’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달래고 지원하고 대화하면 한반도 평화가 진전될 것이란 생각도, 한국이 어떻게 하든 미국 필요에 의해 동맹이 마냥 유지될 것이란 생각도 착각이다. 곧 대한제국 패망일(8월 29일)이다. 안보 역량이 해체돼 전쟁도 해보지 못한 채 식민지로 전락한 뼈아픈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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