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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3일(水)
“탈레반 점령지 의료봉사 땐, 아내에게 유서 남기고 떠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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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만난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이 “봉사는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며 의대 시절부터 30여 년 동안 1000회 이상 국내외 의료사각지대에서 봉사활동을 펴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제 북한 의료봉사와 결핵 치료 지원이 최대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국제 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

“봉사는 자기 것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같이 생활하고 같이 사는 것입니다. 봉사는 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결국은 내가 받는 것이기도 하더군요. 자신의 마음이 너무 편해지고 좋으니까요. 그래서 봉사를 일로 생각하면 일이지만 즐거움으로 생각하면 즐거움이 됩니다.” 국제 의료봉사단체인 ‘그린닥터스’의 정근(57·안과 전문의) 이사장은 봉사에 관한 한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정 이사장은 의사가 된 직후부터 시작해 그린닥터스의 산파역이자 사무총장을 지내며 30년 동안 1000여 회의 각종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부산 유명 안과인 ‘정근안과병원’을 운영하면서도 50세의 나이에 ‘온종합병원’까지 설립해 2개 병원을 경영하는 성공한 의사다. 이런 바쁜 와중에도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탈북자 무료진료는 물론 세계 오지 및 국내 농촌, 지진·해일 등 세계 대형 재난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매주 일요일에는 저소득층 홀몸노인과 결식자를 대상으로 한 ‘평생이웃밥퍼천사들’ 무료급식 봉사까지 한다.

21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온종합병원에서 인터뷰 요청에 응한 그는 50대 후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童顔)에다 목소리에 열정이 넘쳤다. 정 이사장은 “20여 년간 휴가를 간 기억이 거의 없고 일요일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22일에는 필리핀 막탄섬에서 의료봉사를 마치고 새벽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환자들을 진료한 뒤 오후에 바로 경남 산청으로 농촌봉사활동을 떠났다. 수익이 나지 않는 종합병원을 무리하게 세운 것도 봉사 때문이었다. 정 이사장은 “1994년 개업한 안과병원이 잘됐지만, 응급의료와 종합진단 검사 시설 및 기기가 부족해 효율적인 봉사를 위해 거액의 은행 대출까지 받아 온종합병원을 2010년 설립했다”며 “이제 각종 응급진료는 물론이고 대형 수술이 필요한 외국인 등 소외계층을 모셔와 치료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도 부산 YMCA 이사장과 부산시 의사회 회장, 대한결핵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느냐’는 질문에 정 이사장은 부산대 의대 2학년 때 폐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자주 피를 토하고 키가 183㎝이지만 몸무게가 53㎏에 불과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당시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병이 완치되자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맹세했다는 것. 이후 ‘죽을병에서 살아났으니 선하고 바른 일이면 즉시 행동에 옮겨라. 쉬지 않고 일하라’가 그의 모토가 됐다.

“환자가 많은 안과를 운영하면서 재산도 모았고, 봉사는 적당히 생색만 내면서 편하게 잘살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봉사만큼 파급효과가 큰 것도 없더군요. 한 사람이 봉사에 뛰어들면 몇 사람을 살리거나 도와줄 수 있고, 여기에 자극받아 다른 봉사자 수십 명이 나서고, 다시 도움받는 사람이 늘어나 계속 선순환이 이뤄지면 수만 명이 혜택을 보게 됩니다. 죽고 나면 없어질 몸이고 재산인데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정 이사장은 2015년 5·8월 네팔 대지진 때 2차례, 2008년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 미얀마 사이클론 등 2004년부터 7차례 대형 해외 재난현장에서 그린닥터스를 이끌고 봉사활동을 벌였다. 재난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어 고난의 연속이었다.

“우리가 가면 구름떼처럼 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전기가 없어 밤에는 촛불을 켜고 진료를 하고, 중환자는 석유 발전기를 돌려 겨우 수술을 했죠. 더운 날씨에 땀이 비 오듯 해 금방 옷이 다 젖어버리죠. 그래도 다른 나라 봉사단에 비해 기동성은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비자 신청과 항공기 예약부터 먼저 하고 계획을 잡습니다. 현지 선교사 단체 등과 연결해 차량을 미리 준비시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죠. 현장에 텐트를 치면 30분 만에 진료 준비가 끝나고 10일 정도면 대부분의 응급환자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는 “2005년 10월 파키스탄 발라코트 지역 대지진 때는 계속 여진이 발생해 자다가 무서워서 수시로 밖으로 피신하기도 했다”며 “의약품을 잔뜩 실은 트럭을 몰고 탈출 행렬과는 반대로 가는 위험을 무릅썼지만 지금도 고마워하는 환자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한국 의료진을 최고로 알아 ‘봉사가 대한민국 미래의 힘’이라는 사실도 절감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파키스탄은 무장테러단체인 탈레반의 점령지역이기도 해 부인(55)에게 유서를 써놓고 가기도 했다. 이때 같은 의사로 미국 연수 중이던 부인은 뒤늦게 금고 속에 있는 유서를 발견하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린닥터스는 이 같은 불시의 재난 외에도 2006년부터는 매년 1~2차례씩 동남아, 중국, 러시아, 몽골, 터키, 코트디부아르 등 20여 개국에서 모두 3만여 명의 의료 소외계층을 상대로 무료진료를 해오고 있다.

이 같은 해외 의료봉사나 재난현장에서 알게 됐거나 연락이 온 환자 가운데 현지에서 치료할 수 없는 중증환자는 직접 데려와 치료한다. 온종합병원은 지난 8일 독립군의 후손으로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거주하는 고려인 문 류드밀라(여·59) 씨의 직장암 3기 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 박성준 온종합병원 외과부장의 집도로 5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은 문 씨는 완전히 회복했고 이달 말쯤 퇴원해 러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가난해 수술을 못 받는 사실을 안타까워한 이 지역 한국 농장주인 김 토마스 씨 등이 한국 병원을 수소문해 정 이사장이 지원을 결정했다. 김 씨는 평소 온종합병원이 아픈 외국인을 치료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 씨에게 무료수술을 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에서 최재형 선생 등이 독립운동에 앞장선 영향이 있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이를 계기로 “내년 7월에는 중국·러시아·북한 접경지역으로 안중근 의사 등 독립투사들의 흔적이 있는 크라스키노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하는 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 대지진 때 2차 의료봉사에서는 나뭇가지에 찔려 한쪽 눈을 실명한 디펜드라 군을 발견했다. 현지 치료가 안 돼 데려오려 했으나 출생신고도 안 돼 있어 여러 가지 어려운 절차를 밟아 한 달 만에 데려와 전신마취로 6시간의 대수술 끝에 의안을 마련해 줬다.

심한 백내장에 걸려 앞을 제대로 못 보던 중국 신장(新疆) 우루무치(烏魯木齊)의 회교도 아브라함, 지진에 얼굴이 녹아내린 중국 여성 위훙,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대장이 몸 밖으로 드러난 필리핀 소년 허난 등도 현지 선교사와 그린닥터스의 도움으로 온종합병원과 정근안과병원에서 한 달 가까이 입원하며 치료를 받고 새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이들이 수술을 받고 완치돼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대한민국 국격이 더욱 올라가고 선진 의료기술이 알려지게 된다”며 “부산의 의료관광 활성화도 그린닥터스 활동이 도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닥터스 활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개성병원(초기에는 진료소) 운영이다. 그린닥터스는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한 뒤 2004년 개성병원 첫 운영기관으로 신청해 선정됐다. 그린닥터스는 2005년 1월부터 2012년 말까지 8년 동안 북한 근로자를 중심으로 35만 명을 진료했다. 의약품비 등 60억 원은 대부분 회비와 기부비용 등으로 마련했다. 원래 남·북한 진료소가 떨어져 있었지만 2006년에 합쳐서 남북협력병원을 만들고 입구는 다르지만, 가운데에서 모이도록 병원을 설계했다. 그는 “이 병원을 통해 북한이 남한의 의료기술을 배우면서 남한을 이해하는 창구가 됐다”며 “결핵검진센터를 함께 세워 결핵 환자 수천 명을 치료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정 이사장은 이 같은 경험 때문에 향후 봉사활동이 꼭 필요한 곳으로 북한을 꼽았다. “북한의 마음을 녹이려면 의료가 최선이고, 아플 때 돕는 것이 긴장 완화에는 최고의 처방입니다. 지금 북핵 위기는 ‘결핵 치료’로 풀어야 합니다. 내가 결핵에 걸려 봐서 그 고통을 잘 알죠. 북한 결핵 환자 수는 세계에서도 가장 많아 10만 명당 500명입니다. 내성이 강해 약으로도 치료가 잘 안 되는 ‘슈퍼 결핵균’이 많고 전염성도 매우 높죠. 지금은 정국이 경색돼 있지만, 한순간에 교류나 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어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의 각 도에 1개씩 12개 병원 설립을 지원토록 준비해야죠. 결핵은 물론 다양한 질병 치료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합니다. 한국 의료는 구한말 미국 등 외국의 선교사들이 전파해 준 것입니다. 이제 한국 의료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으니 북한에 돌려줘야죠.” 그가 전공이 다른 안과의사면서도 대한결핵협회 회장과 수석부회장을 지낸 것도 북한 결핵 퇴치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1992년 ‘부산 안은행’ 설립은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당시 각막이식을 하려면 스리랑카 등에서 안구 한 개당 1000달러씩을 주고 사와야 했습니다. 사후에 안구를 기증하는 운동을 벌여 80여 명의 부산대 의대 전체 교수와 학생, 간호사 등 500여 명이 안구를 기증하기로 해 대형 뉴스가 됐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때 돌아가시는 분들의 안구 기증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안구 수입이 없어지게 됐죠. 기증이 많다 보니 일과를 마친 밤에도 계속 수술을 하는 바람에 일이 늘었지만 보람이 컸습니다. 보관과정에서 변성률이 높은 외국 안구보다 수술 성공률도 매우 높았죠.”

그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2개 병원 경영을 성공으로 이끈 마음의 자세도 소개했다. 정 이사장은 “의사가 환자에게 얼마나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지는 환자가 단번에 알아본다”며 “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없으면 환자들이 오지 않고, 그 반대로 마음과 정성을 담으면 환자들이 저절로 오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너무 의료진 얘기만 한 것 같다”며 “의료봉사는 의사 1명에 오히려 더 고생하는 3명의 일반 자원봉사자가 필요해 이들이 없으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일반 자원봉사자들에게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인터뷰 = 김기현 부장(전국부) ant735@munhwa.com
e-mail 김기현 기자 / 전국부 / 부장 김기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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