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을” vs “근거없는 비방”… 커지는 조계종 분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원로와 회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명진 스님 승적 박탈 규탄 시민사회단체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3일로 단식 6일째를 맞은 명진 스님.

“명진스님 승적 박탈은 부당”
노동·법조계 등 1000인 선언

조계종 “적법절차 따라 징계
자숙 않고 비난땐 좌시 안해”

“종권다툼 아닌 구조변화 요구”
‘종단 갈등’ 과거와 다른 양상

조계종의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시민사회단체로 번지고 있다. 과거 종단 개혁이나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종단의 분규가 조계종 내부에서 이뤄진 것과는 다른 양상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종교계는 물론 노동·여성·문화예술·법조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와 회원들은 23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명진 스님 승적 박탈 규탄 시민사회단체 10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자승 총무원장의 반성과 퇴진 △적광 스님 폭력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 △불교계 언론탄압에 대한 사과 및 해제조치 △명진 스님 퇴출 사건에 대한 조사 등을 요구했다. 이날 회견에는 한승헌 변호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정연순 변호사 등과 각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앞서 조계종단에 의해 제적의 징계를 받은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18일부터 조계사 앞에서 청정승단 회복을 내걸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이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단식에 돌입한 명진 스님을 찾아 한동안 대화를 나눠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이날 1834명이 이름을 올린 선언문에서 ‘적폐’의 내용을 열거했다. 이들은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이들과 유착했던 총무원장에 의해 봉은사에서 쫓겨나야 했고 돌아온 것은 ‘승적박탈’이라는 야만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자승 총무원장에 대해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 한다는 이유로 적광 스님에게 온갖 폭행과 고문을 가해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비판 언론을 해종언론으로 규정해 언론탄압을 했으며, 돈 봉투 선거의 전면화, 억대 도박, 표절 등 조계종을 타락시킨 부패를 주도하거나 방조했던 조계종 적폐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교계 대책모임들과 연대해 종계종 적폐청산 운동을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시민 108만 명의 서명을 받고, 다음 달 14일 청계천 앞에서 조계종 적폐청산을 주제로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명진 스님은 “여러분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한 발 한 발 바른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은 “명진 스님의 징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며 “명진 스님은 종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향후에도 이런 행보가 지속될 경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조계종 관계자는 또 “적광 스님 폭행 문제는 4년 전 일로 법적인 재판 결과를 이미 따랐던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일 전국승려대회를 결의한 조계종 수행승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는 승려대회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수좌회 관계자는 23일 전화통화에서 “종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며 변화가 없다면 9월 중에는 승려대회를 열게 될 것”이라며 “날짜를 지금 못 박을 순 없지만, 전격적으로 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수좌회 원로회의가 승낙하지 않아 승려대회가 어렵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수좌회의 자체 규정상 승려대회가 원로회의 승낙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수좌회의 한 스님은 “이번 조계종 분규는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종단 내의 계파 간 종권다툼이 아니라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라며 “과거의 사례와 종단의 구조 때문에 스님들 사이에 패배의식도 없지 않지만 이런 노력 가운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계 재가자 모임과 시민단체, 스님들로 구성된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의가 매주 목요일 보신각 광장에서 주최하는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도 24일로 제5차 대회를 맞는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가세로 집회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주최 측은 보고 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