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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4일(木)
보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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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확실히 보수의 위기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만나 점심을 함께했는데, 그의 첫 관심사는 ‘진보 정권의 운명’이 아니라 ‘보수정당의 미래’였다. 진보 사회학자 출신인 조 교육감은 그 어떤 보수주의자 못지않게 보수의 앞날을 우려했다. 건강한 보수의 출현은, 그것이 진보를 각성시키고 보·혁의 각축을 통해 동반성장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보수의 과제이자 진보의 의제일 것이다. 진보정치의 동력이 ‘과거와 싸우는’ 데서 나온다면 보수정치의 진정한 힘은 ‘미래와 싸우는’ 것에서 나온다. 보수의 착각은 혁신 없이도 반대론자들과 싸우기만 하면 지지층을 결집해 낼 것이라 믿는 것이다. 보수의 실수는 미래를 창안하는 지도력을 키우지 않은 것이다. 혁신 없는 보수, 지도력이 부재한 보수의 내일은 암울하다. 보수의 위기는 곧 리더십 부재의 위기다.

1987년 6월항쟁 직후는 혁신의 시대였다. 존멸의 기로에 놓인 보수도 파격적인 혁신을 꾀했다. 진보 진영의 급속한 정치적 진출과 사회적 욕구 분출에 몰린 노태우 정권이 야권의 지도자였던 김영삼(YS)까지 끌어들여 보수 리더십을 재구성한 게 1990년의 3당 합당이었다. 구보수의 해체와 신보수의 부상이라는 충격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권력 획득에 성공한 YS 정권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일부 진보 진영의 의제까지 포용해 개혁 과제들을 실천함으로써 제도정치의 안정을 꾀했다. 군부 내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 같은 혁신 조치들이 전광석화와 같이 단행됐다. 한국의 보수가 가장 생기 넘치던 때였다.

하지만 보수가 국가 주도의 성장 신화와 반공주의라는 과거의 타성에만 의존하면서 길을 잃기 시작했다. 보수 지도자들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자 오랜 지지자들까지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떠나기 시작했다. 진보주의자들이 젊은층을 흡수하는 동안 중·장년층에서는 보수의 탈주가 이뤄졌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쌓인 피로감은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탄핵을 겪으면서 극에 달했다. 3당 합당 당시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했던 비율이 60%를 넘었지만, 지금은 30%를 밑돈다. 보수의 분열은 이념적 분화와 함께 지역적 분화를 몰고 왔다. 영남권에서는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이 등을 돌렸다.

보수의 위기, 보수의 분열, 보수의 축소를 초래한 건 보수정치의 지도자들이다. 보수적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지지를 보낼 보수정당 하나 가질 수 없게 한 지금의 상황은 곧 보수의 위기가 혁신 부재의 위기, 리더십 부재의 위기임을 말해준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기록적인 대선 패배를 겪었지만, 보수정치 엘리트들은 통렬한 자기 반성문 하나 내놓지 않았다. 모든 걸 내던지겠다는 각오도 보이질 않고, ‘천막당사’ 하나 꾸릴 기개도 용기도 없다. 대의제가 위임한 권력에 취한 채 자신을 길러준 유권자와 이웃을 잊어버린 이들.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는 책 ‘엘리트의 반란’에서 이들을 “민주주의의 배반자”라 불렀다. 이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도력이 나타나고 발굴되고 훈련되고 충원되어야 한다. 이들이 뛰놀 플랫폼도 필요하다. 아직은 새로운 리더십도, 탄탄한 플랫폼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보수,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minski@
e-mail 허민 기자 / 정치부 / 부장 허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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