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사법 恨풀이 나선 듯한 與의 反법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82년에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잘 짜인 각본을 갖춘 어드벤처 영화의 진수였다. 1984년 개봉된 ‘이티(E.T)’는 판타지 SF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1993년 ‘쥬라기공원’은 과학과 상상의 한계가 어디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영화를 볼 당시, 한국에서는 그 영화처럼 엄청난 관객을 끌어들이고,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고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영화도 1000만을 뛰어넘는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가 적지 않게 제작, 상영돼 이전의 인식을 바꾸게 됐다. 교육 제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면성과 창의성, 열정을 가진 한국인의 문화적 DNA가 한껏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뛰어난 역량은 문화 분야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톡톡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반도체가 그렇고, 자동차가 그렇다.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이 제대로 된 리더를 만나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재는 기업에도 있고, 정부에도 있다. 사법부에도 우수한 인재가 많다. 그들은 타고난 재능에 더해 뚜렷한 목표 의식,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며 노력해 온 과정을 거쳐 법조에 발을 디딘 인재들이다. 법조의 문턱을 넘어서면, 그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책무를 요구받게 된다. 수많은 권리 의무의 충돌을 해결하고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 날로 발전해 가는 사회의 구조적 질서를 세워가는 역할을 맡고 있기에 그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의 독립성이 엄격히 요구되고 있는 이유다.

사법부에 의해 형벌을 선고받고 형(刑) 집행이 끝난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퇴소하면서, 자신에 대한 사법 판결이 옳지 않았던 것처럼 말했다. 또, 여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은 ‘사법적 적폐’라고 지목하면서 사법개혁을 언급했다. 그러나 정치가 법 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정권을 잡은 이후 정치·경제·사회·안보 등 각 분야에서 속도전을 벌이는 듯한 모습에 적잖은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지금, 사법개혁이란 명목으로 정치적 수사를 내뱉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사회 제도의 보루다. 특정 정치적 집단의 한(恨)을 푸는 사회적 통로로 기능하게 해선 안 된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사회적 필터로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더욱이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를 조직화해 온 특정 연구단체 출신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목한 뒤다. 묵묵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해 온 사법부에 대해서조차 정치적으로 재단하면서, 사법부를 지탄하는 것은 적절한 게 아니다. 정치가 법과 사법행정의 위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당선 직후 청와대에 전세 살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5년 기간에 한시적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는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우리 민족은 정(情)이 있고, 흥(興)이 넘치는 특성이 있다. 그에 더해 한이라는 특성도 있다. 정치인들이 정과 흥을 정치로 에워싸 한을 폭발시키는 도구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이미 정도 아니고 흥도 아니다. 진보가 보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 반대 또한 철저한 독선일 뿐이다.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사법부(司法府)를 대상으로 한을 풀려고 해선 안 된다. 사회적 변화에 따른 사법부의 변화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법부가 풀어나가도록 맡겨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