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스코어 표기 정확하지 않은 한국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발칙한 상상 퍼팅 라인은 잘 보아야 한다. 아주 짧은 거리라도 그린의 경사 때문에 순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홀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상상하기도 한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태국에 거주하는 후배가 얼마 전 한국에 들어와 A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했다. 그는 “78타가 나왔다”면서 좋아했다. A 골프장에서 78타면 상당히 잘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후배는 “한국 골프 스코어 표기가 참 재미나다”면서 배시시 웃었다.

후배는 자세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81타였다. 첫 홀은 보기였다. 그런데 ‘일파만파(한 명이 파하면 모두 파)’로 적기에 스코어 정정을 요구했다. 그런데 캐디는 “무파만파(파가 없어도 모두 파), 세파만파(세계 어느 골프장에서라도 파가 나오면 모두 파)도 있다”고 말하면서 정정 요청을 뿌리쳤다.

또 한 번은 트리플인데 캐디는 더블로 적었다. 캐디는 “손님께서 기분나쁘시지 않게 한 타 줄이겠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홀을 모두 파로 표기해 78타가 됐다. 후배는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아마도 한국처럼 골프 스코어 표기가 정확하지 않은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즈니스 골프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3번 홀까지 ‘화면조정 시간’이라며 모두 파로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캐디가 1번 홀을 파로 미리 적거나, 심지어 스코어 카드에 파가 인쇄된 경우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더블 파는 그냥 더블로 적고 OB나 해저드 타수는 계산하지 않기도 한다. 어떤 캐디는 “제대로 다 적으면 화를 내는 분들이 있어서 적당히, 알아서 스코어를 작성한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얼마 전 골프존에서 한국 골퍼의 평균 타수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 골퍼의 평균타수는 96.9타이며 남성은 93.8타, 여성은 100타라고 발표했다.

미국에서 평생 80대 스코어에 진입하지 못하는 골퍼가 60% 이상이라는 자료가 발표된 적이 있다. 그만큼 골프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 스포츠다. 물론 골프의 룰과 에티켓을 철저히 지킨다면 세상에서 골프만큼 재미없는 경기는 없다.

미국 컬럼비아대 공학박사 루시우스 리치오가 수만 개의 라운드 스코어 데이터를 분석했다. 85타인 경우 페어웨이 안착률은 46%, 그린정확도는 33%, 라운드당 퍼팅 수는 33.7개, 버디는 0.8개, 파는 6.6개였다. 골프를 이렇게 과학적으로, 데이터로 분석하면 너무 건조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있어야 좀 더 나은 골프 스코어를 바라볼 수 있다.

골프 스코어를 원리원칙대로 적용해 작성하면 답답해진다. 하지만 희화하면서까지 고무줄 스코어로 표기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스포츠가 아닌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고무줄 골프 스코어로 분위기를 띄울 순 있겠지만 정정당당이란 스포츠의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