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멘털 노트>경기를 즐기기 위한 조건은… 체력·기술은 기본, 자기만의 전략 세우고 냉철함 잃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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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프로골프(KPGA) 프로지망생을 만났던 적이 있다. 그 지망생은 매번 프로테스트 마지막 날 어이없는 실수로 번번이 낙방했다. 골프 자세를 보니 몇 가지 약점이 있기는 했지만, 조금만 보완하면 프로테스트는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인 듯 여겨졌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멘털이 문제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살펴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지망생을 만나 “프로 테스트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예,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즐기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경기를 즐긴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게임을 앞둔 프로골프선수에게 “어떻게 경기에 임할 것이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 자신만의 플레이에 집중하면서 경기를 즐길 겁니다”라고 말했다. 승리한 골퍼, 프로들은 종종 “경기를 즐겼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비단 골프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스케이팅 등 거의 모든 운동 분야의 유명 선수들은 “즐겼더니 성적이 좋아졌다”고 자평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려놓았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처음 한국 선수들의 움직임을 본 뒤 “아무 생각 없이 로봇처럼 플레이한다” “노동하듯이 축구를 한다” “선수들은 4000∼5000rpm으로 계속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게임을 즐기라”고 강조했다. 히딩크 감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감독, 코치,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선수들에게 경기를 즐기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게임, 즉 경쟁을 즐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는 즐기려고 해도 즐길 수가 없다. 이기기 위해, 우승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선수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경기를 즐길 수 있을까. 물론 주말 골퍼들은 아무 생각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동반자나 캐디와 대화하면서, 웃고 떠들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멋있는 골프장의 풍광을 구경하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멋지게 탈출한 샷을 기억하면서. 이런 주말 골퍼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거나 중요한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골퍼들은 즐긴다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사진)는 솔하임 컵의 싱글 매치 플레이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지난주 열렸던 솔하임 컵에서도 루이스는 카트리나 매슈(영국)에게 싱글 매치에서 역전패했다. 루이스가 한때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였고, 풍부한 경험을 지녔기에 부상한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의 ‘대타’로 출전한 매슈를 무난히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루이스는 초반부터 앞서 나갔고 11번 홀에서 3홀 차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루이스는 매슈에게 1홀 차로 역전패했다.

골퍼가 중요한 경기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들 경기를 놀이처럼 즐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기를 즐긴다는 것은 놀이를 즐기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경기를 즐긴다’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며 경기를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즐겁게 하는 것 그 이상이다.

경기를 즐기기 위해선 선행 조건이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체력과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있어야 한다. 둘째 골프장의 환경과 여건에 맞게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경기 중 자신의 플레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냉철함과 그때그때 자신의 적절한 기술을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없는 좌절과 실패에도 오뚝이처럼 꿋꿋이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깊이 새기며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