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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08월 29일(火)
평범한 아름다움에 빛을 비춘 ‘캔버스의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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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르댕의 말년의 정물화 대표작 ‘물컵과 커피포트’. 사물의 단순성, 소박한 구성, 안정된 색감이 만들어 내는 조용함과 편안함, 느긋함과 여유가 조화롭다.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⑥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혁명… 샤르댕의 그림(2)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정물화 중에는 좋은 것이 많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물컵과 커피포트’(1760년)이다. 그의 말년 정물화 가운데 대표작이지만, 사물의 단순성이나 소박한 구성 그리고 안정된 색감은 참으로 정갈하게 여겨진다.

# 색채와 구성의 조화

그림의 중심에는 진갈색 커피포트가 있다. 왼편에는, 마치 이 포트와 짝을 이루듯 물잔이 놓여 있다. 앞쪽 중앙에는 마늘 세 개가 놓여 있고, 그 오른쪽 옆으로 어떤 꽃이, 아마도 카네이션인 듯한데, 푸른 줄기와 놓여 있다. 늘 그렇듯이, 하나의 사물과 또 하나의 사물은, 마치 진갈색 커피포트와 연갈색 벽면이 그러하듯이, 또 물컵의 하얀 테와 마늘 껍질 그리고 흰 꽃이 그러하듯이, 서로 어울린다. 그것은 단정하게 놓인 채 거의 완벽하게 어우러져 무엇 하나 더 보태거나 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가라앉은 색조와 그늘, 그리고 이 색이 드러내는 사물들, 나아가 이 사물들 사이의 구성과 배치에 전체적인 조화가 자리하는 것이다. 조용함과 편안함, 느긋함과 여유는 이런 조화 감각의 심리적 결과일 것이다.

샤르댕의 그림에서는 사물과 사물이 말없이 어울리고, 색과 색이 침묵 속에서 교감한다. 각각의 사물은 이렇게 조응하는 색채와 구성 아래 하나로 만난다. 아마도 이런 호응 때문에 각 사물은 단순함 속에서도 뉘앙스 적으로 풍부하고 감각적으로 피어나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비강제적인 자연스러움은 이 전체적인 조화에서 올 것이다. 그러나 이 조응은 무딘 것이 아니라 견고해 보인다. 그것은 컵 테두리의 하얀 선이나, 무채색 컵에 반사되는 흰 마늘의 어른거림 그리고 커피포트의 위 테두리나 손잡이에 배인 흰 광채에서 그림의 전체 분위기가 강조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샤르댕의 정물화는 소박하고 단정하지만, 이 소박함은 세부의 충실하고 정교한 묘사 덕분에 연약하기보다는 하나의 원칙으로서, 그리하여 뚜렷한 생활의 가치로서 자리한다. 그의 정물화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주위가 정돈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  막 장을 보고 돌아온 여인을 그린 ‘시장에서 돌아옴’. 일의 한가운데, 일상을 넘어 잠시 멈출 때 싹트는 시적 비전을 보여준다.

# 물질의 탈소재화

샤르댕은 대상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했고, 이렇게 본 것을 종이에 스케치한 다음 색칠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화폭 위에 그리는 것을 선호했다. 대신 그는 천천히 그렸다. 아주 꼼꼼하게 그렸기 때문에 그의 작업속도는 느렸다. 그래서 많은 주문자가 화를 냈고 어떤 비평가들은 그가 게으르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작업방식은 평생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완성되는 그림은 한 달에 두 점을 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물이라기보다는 이전부터 있었던 사물의 어떤 새로운 면모였고, 그 면모를 보다 온전하게 묘사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물 묘사의 방식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만들고자 애썼다.

이런 이유로 샤르댕이 혁명을 기획했다면, 그것은 귄터 메트켄(G. Metken)이 썼듯이, 별로 표나지 않았을 것이다. “샤르댕이 수행한 혁명은 조용하여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정물화나 장르화는 당시 평가로는 모사품에서 가장 낮은 예술적 지위를 가진 반면, 역사화나 교회화는 그 움직임이나 환상 때문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디 차이트·1979년 3월 9일) 이것을 메트켄은 “빛과 색채가 서로 노닐 정도로 물질을 탈소재화했다”고 적는다.

물질의 탈소재화란 물질이 경험적 차원을 넘어 초경험적 차원으로 옮아가는 것이고, 세간적 특수성을 넘어 무시간적 차원으로 고양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일종의 형태변화(Trans-formation)다. 형태변화는 화가의 구성의식과 색채감각에서 올 것이다. 이 구성의식이나 색채감각은 다시 관조적 시선에서 온다고 할 것이다. 관조란 지금 여기에서 저 너머로 나아가는 정신-지상적인 것을 넘어 신적 차원에 참여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관조적 거리감 속에서 나는 사물과 사물의 거리를 생각하고, 사물과 주체 사이의 간극을 떠올리며, 예술과 이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간격, 그리고 나와 내가 살아가는 삶 사이의 간격을 떠올린다. 이런 간격은 도처에 있다. 나의 생각을 점검하고, 나의 가치와 삶의 지향을 교정하는 것도 이 반성적 사고의 관조적 시간 속에서일 것이다. 주체는 관조를 통해 삶의 반성적 변형에 참여한다.



# 질그릇도 보석만큼 아름답다

샤르댕의 그림에 등장하는 물건들은, 식기든 도자기든 과일이든, 되풀이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있었던 것이다. 이 흔한 것들은 하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흔한 것들은 그의 그림에서 그리 흔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알 수 없이 정겹고 친숙하여 때로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소중함이 더해져 어떤 경우에는 고귀하게까지 여겨진다. 컵과 양파와 커피포트와 한 송이 꽃, 아니면 빵과 솥과 냄비와 계란…. 너무도 흔하고 흔한 것이어서 가끔은 귀찮고 성가시며 지루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매일 보고 먹으며 사용하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그것이 없다면 살아가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점에서, 필수불가결하기도 하다. 나날의 삶에서는 그 어느 것도 하찮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고상하고 고귀할 수는 없으나, 내팽개쳐도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지극히 일상적이고 범속한 것 외에 달리 고귀한 것은 없다. 가장 평범한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이다.

샤르댕의 정물화에서 각 사물의 특성은 지워지거나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두드러져 보인다. 사물은 제각각의 구체성 속에서 자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내세운다고나 할까? 이런 식으로 사물의 서열관계는 완화되면서 존재론적으로 평등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르셀 프루스트(M. Proust)는 이렇게 썼을 것이다. “샤르댕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의 배(梨)가 한 여인처럼 생생하고, 흔한 질그릇도 보석만큼이나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  빨래를 하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세탁부’. 샤르댕은 일상 속에 맞닥뜨린 한 순간을 잡아냈다.

# 일상의 탈일상화 예술의 변혁

아마도 예술의 혁명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식이지 않을까 싶다. 말하자면 지극히 흔해 빠진 것들에게 흔치 않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 잊히고 억눌리고 외면당한 것들에게 그에 합당한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만치 그것은 눈에 띄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소극적이고 수세적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존재하는 것들이 근본적으로 평등할 수밖에 없는, 또 평등해야만 하는 권리를 복권해준다는 점에서, 어떤 다른 활동과도 다른 정치·윤리적 실천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눈에 띄지 않는 현실 변혁의 시도인 것이다.

샤르댕은 지극히 흔한 것을 결코 흔치 않은 단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아마도 사물의 근본 형식에 대한 관심에서 올 것이다. 그의 통찰은 사물의 외피(外皮)를 벗겨 그 안쪽의 숨은 의미를 들여다보는 데 있다. 그것은 관조적 시선이다. 관조는 배후를 투과하는 통찰의 시선이다. 정물화에서의 통찰은 사물의 근본형식에 대한 시선에서 온다. 샤르댕의 구성의식과 색채감정에는 관조적 시선의 시적 비전-일상을 탈일상화하는 갈망이 있는 듯하다. 아마도 이 같은 갈망 덕분에 그는 세부적인 것에서 전체를 읽어내고, 관조적 반성력에 기대어 일상적인 것의 구태의연한 서열관계를 해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새로운 것-지극히 평범한 것들의 고귀함이라는 회화사적 성취는 이 시적 시선으로부터 얻어질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샤르댕 정물화의 예술사적 의의일 것이다. 그의 그림이 인상파나 입체파로 가는 근대적 길을 열게 된 것도 이런 맥락 속에 있을 것이다. 실내를 그린 두 그림을 보자. 첫째 그림은 ‘시장에서 돌아옴’(1739년)이다.



# 화면 밖으로의 응시

‘시장에서 돌아옴’의 중심에는 한 여자가 서 있다. 그녀는 장을 보고 막 돌아온 듯하다. 오른손에 든 흰 보자기에는 닭인지 칠면조인지 두 다리가 살짝 보이고, 그녀 왼편으로는 두 개의 빵 덩어리가 탁자에 놓여 있다. 아마도 이 빵은 아직 따끈할 것이다. 그녀는 탁자에 허리를 잠시 기댄 채, 이 빵이, 위로라도 되는 양 왼손으로 감싸며 서 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오른편을 바라본다. 이 응시의 순간 그녀는 화면 밖을 바라보고, 이 공간 너머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가브리엘 노튼(G. Naughton)이 썼듯이, “우리의 모든 연민은, 그녀가 캔버스 밖을 응시할 때, 그래서 그런 생각과 꿈에 기대어 그녀가 나날의 사소함으로부터 벗어날 때, 그녀를 향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사람들이다. 현재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우리는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시선은 그리워할 만하다.

일의 한가운데서는 일상을 넘어설 수 없다. 적어도 그 일이 생계에 관계된다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의 극복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출 때’, 그래서 다른 무엇을 생각하고 떠올릴 때, 잠시 가능하다. 그래서 일의 중단과 떠올림, 응시와 그리움은 시적 비전을 위한 시작이다. 그래서 그것은 공감할 만한 무엇이 될 만해 보인다. 시적 비전은 우리 시선이 일상적 틀의 밖으로 향할 때 싹트기 시작한다. 시적 비전은 거의 알아채기 힘든 변화의 놀라운 시작일 수 있다.


그녀 뒤편으로 문이 열려 있고, 이 문 너머 또 하나의 문 앞에서 한 소녀가 손님인 듯한 사람을 맞이한다. 누군가 방문한 지도 모른다. 이 방문자는 방금 시장을 다녀온 실내의 이 여인을 따라온 것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이 내방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이 하나의 공간은 또 다른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이 열린 공간 쪽으로 그림의 관람자-우리의 시선도 자리를 옮아간다. 이렇게 장르화에는 공간을 옮겨가며 새 삽화를 만나는 ‘발견의 재미’가 있다. 꿈꾼다는 것은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려는 갈망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방에서 또 하나의 방으로 옮아가고, 어두운 곳에서 좀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이런 공간구성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자주 나온다. 이런 모티브로부터 샤르댕은 큰 영감을 받곤 했다. 이런 실내의 풍경에서 우리는 18세기 시민의 복장사와 도덕사를 읽어낼 수 있다.



# 빨래하고 풍선 불고

‘시장에서 돌아옴’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은 ‘세탁부’(1733년)다. 다소 어두운 실내 공간에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림의 중심에는 선 채 빨래하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큰 나무통에 담긴 빨랫감을 문지르면서 오른쪽으로 쳐다본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잠시 주위를 살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신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한가운데서 문득 맞닥뜨린 한순간이다. 이 순간을 ‘관조의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을 포착한 것은 화가의 관조적 시선 덕분일 것이다. 그것은 아무런 표정도 없는 침묵의 무심한 순간이다.

빨래통은 그보다 좀 더 큰 받침대 위에 놓여 있는데, 이 받침대 옆으로 한 아이가 앉아 놀고 있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아이는, 의자에 앉은 채, 긴 대롱으로 비누 풍선을 불고 있다. 얼마만큼 크게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제대로 불 수 있을까? 아이의 마음은 풍선을 불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아이를 보는 내 마음도 두근거린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오른편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아이와 빨래하는 여인 너머로 문이 열려 있고, 그 너머 방은 여기보다 좀 더 어둡다. 하지만 이 방으로도 빛이 들어오는지, 다른 여인이 빨래를 줄에 널고 있다. 그 점에서 ‘세탁부’의 공간구성은 ‘시장에서 돌아옴’과 비슷하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어둡지만, 세탁하는 여인의 머릿수건이나 앞치마 그리고 빨래통의 거품은 모두 희게 채색되어 건너편의 빛과 더불어 그림 전체를 밝게 만든다.

이쪽에서 빨랫감에 비누를 묻히고 그것을 문지르고 헹구는 동안에 건너편 방에서는 또 다른 빨랫감이 널리고,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고양이와 놀거나 비누 풍선을 분다. 세탁부 옆에는 또 다른 빨랫감이 널브러져 있고, 고양이는 한구석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비누 풍선은 물론 쉽게 사라지는 모든 것의 상징이다. 삶의 어떤 것도, 빨래하는 일도 옷감도 놀이도, 그리고 이 모든 정경을 그린 이 그림마저, 이 절대적 소멸의 덧없음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나는 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밥솥으로 밥을 해 먹고, 칼로 빵과 복숭아와 배를 자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고 편지를 쓰며 커피를 마실 것이다. 때로는 아이처럼 풍선도 불고, 어느 아낙네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장도 봐오며, 이따금 창밖 풍경도 응시할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물과 정경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고, 숱한 사물 속에서 또 하나의 사물로서 지금 여기를 너머 어떤 알 수 없는 지평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기록할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부단히 읽고 해독해야 할 문자이고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이며, 간직해야 할 꿈이고 갈망이며 존재증명일 것이다. (문화일보 8월 1일자 25면 5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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