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상관측 자료 축적, 연속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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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철 기상청장

무더위가 시작되면 그날의 최고기온이 어느 지역에서 나타났느냐가 모두의 관심사가 돼 언론에서는 경쟁하듯 날씨를 뜨겁게 취재, 보도한다. 하지만 그날 최고기온 지역으로 소개된 지방자치단체는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라는 꼬리표는 지역 이미지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관광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당 지자체에서는 기상관측 지점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난감한 요청을 하기도 한다.

기상(氣象)은 대기의 상태를 말한다. 기후(氣候)는 여기에 ‘오랜 기간’이 입혀진 개념이다. 대기의 상태를 오랜 기간 관측한 결과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 기후값이다. 기후값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기상학적 세월의 길이는 최소 30년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의 한 장소에서 1907년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서울 지역의 날씨를 대표적으로 관측해 오고 있는 서울기상관측소는 기후관측소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지역일지라도 기상관측 장소를 옮기게 되면 해발고도나 주변 건물 등의 관측 환경이 달라져 관측 자료를 일직선에 둘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오랜 기간 한 자리 있는 기상관측소에서 관측돼 누적되는 자료, 즉 기후관측 자료는 그 지역의 기후 패턴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결정적인 근거로 활용된다. 관측 자료의 연속성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처럼 기상관측소도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관측 자료의 연속성이라는 가치가 지역개발 논리에 밀려 기상관측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고 있다. 오래된 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은 대부분 구도심에 속해 있어 지자체의 도시계획에서 정비 대상으로 지목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유재산권 행사라는 개인적 이해관계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끝까지 권리를 행사하면 자리를 보존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애초부터 개발 가능성이 낮은 오지에 기상관측소를 둘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활동하는 곳에서 관측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기상관측의 기본적인 속성이고 인식이다.

관측 자료는 기본적으로 그 지역의 날씨 예보를 위한 입력 자료로 활용되지만, 자료가 오랜 기간 축적되면 10년 정도의 방재 대책 수립과 수십 년에 걸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분석 자료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취지로 세계기상기구(WMO)도 장기간 누적된 기상관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100년 이상의 기상관측 기록을 갖는 ‘100년 관측소’를 지정, 승인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100년 관측소’는 ‘100년 전에 설립돼 운영되고 있을 것, 세계기상기구 관측표준에 따라 운영할 것, 관측 자료의 품질관리가 지속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을 것’ 등 WMO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선정될 수 있다. 지난 5월 WMO에서는 전 세계의 장기 기상관측소 60곳을 선정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과 부산이 여기에 포함됐다.

이처럼 기상관측은 동일선에서 오랜 기간이 투자돼야 가치가 있다. 그래서 100년 관측소처럼 오래된 기상관측소에서 생산되는 관측값은 기후변동 가능성, 기후변화 평가의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최근의 가뭄과 집중호우, 폭염 등과 같이 이상기상 현상의 분석을 위한 기초 자료로도 사용된다.

진정한 친구처럼 진정한 가치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더욱 빛이 난다. 인내를 투자해 오랜 시간 쌓아온 관측 자료들이 제대로 가치를 발휘하고 과학적 근거의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기상관측 자료의 생산과 보전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