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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1일(金)
“교육엔 편가르기 안 돼… ‘평등’ 강조하되 ‘수월성’ 유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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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 년간 지켜온 강단에서 내려와 31일 정년 퇴직한 유영제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18일 관악 캠퍼스 교정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걸어온 학자의 길을 되돌아보며 웃음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유영제서울대 명예교수

“교육은 수월성도 추구해야 하고, 평등성 측면에서 못가진 사람도 배려해야 합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편 가르는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평등성을 강조하면서 수월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복지’도 추구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장한다고 복지를 못 하면 ‘나쁜 사람’이고, 복지를 한다고 해서 성장을 못 한다면 ‘바보’인 것입니다.” 30여 년 학문을 추구하며 교육 현실을 바라봐온 노(老) 학자가 우리 사회를 변혁하고 바꿀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국가 정책을 책임질 공무원을 제대로 키워내고, 인사시스템을 잘 마련해 그들이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 줘야 제대로 된 국가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노 교수는 힘줘 말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역임한 학자에게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31일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에서 정년퇴직해 명예교수가 된 유영제(65) 교수의 경력은 매우 독특하다. 잘나가는 대기업 과장에서 국내 최고 대학의 교수로, 다시 공무원에서 나눔의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으로…. 국내 효소 단백질 연구 분야 권위자로 30년 넘게 후학양성에 힘써 오다 이제 한발 물러선 유 교수는 오랜 시간 학문과 사회문제를 관찰하며 쌓아 온 내공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제시했다. 명예퇴직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대 관악 캠퍼스 유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날을 함께 되돌아봤다.

―30여 년 학계에 계시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교수뿐 아니라 학교 입학처장도 하셨고, 한국 바이오화학산업기술협의회장 등도 역임하셨습니다. 2013년에는 제25대 중앙공무원교육원장까지 맡으셨습니다. 특히, 교육문제에 관심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압니다. 책(‘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가 산다’)까지 내셨죠.

“교육이 참 중요합니다. 누구나 하는 얘기이기는 한데,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부의 교육정책, 특히 입시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뀝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인데, 옆에서 보면 참 답답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생각에서 책을 쓴 것입니다.”

―새 정부가 교육 정책에 대해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점을 부각하고 새로운 걸 도입해 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정말 만족스러운 제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제도가 있으면 그 제도를 보완하고 개선해서 단점은 없애고 장점은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지금 학생생활기록부와 연결되는 대입 전형을 보면 대학이 고교 시절 공부한 내용과 활동한 내용을 종합 평가해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생활기록부에 의한 전형은 돈 많은 집 자녀가 유리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역시 지금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데, 큰 틀에서 보면 고등학교 때 학생들이 공부하고 활동한 내용을 대학이 평가한다는 취지는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 즉 돈 많은 집 아이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 개선해야 합니다. 개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출구’를 만들어 주는 방법도 있고, 그걸 고려해서 대학들이 평가하는 방법도 있겠죠. 그러면서 제도를 보완·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양하고 정교해야 합니다. 이 제도가 좋으니까 시행했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바로 없애버리고 그러면 안 됩니다. 입시정책도 더욱 정교하고 다양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유 교수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교무 부처장과 입학처장을 지내면서 서울대 입시전형을 점수 위주에서 생활기록부 위주로 바꾸는 데 역할을 했다. 입학사정관을 채용해 생활기록부를 입시의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농어촌특별전형과 장애인특별전형을 시행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절대평가로 확대·전환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순하게 볼 것은 아닙니다. 절대평가를 하는 취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것은 학생들이 영어 공부하는 데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좋은 취지가 있습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 보면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대학은 변별력이 없어져 학생 선발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하고 정교한 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능 하나만 갖고 판단할 게 아닙니다. 수능 자체도 수준에 따라 다르게 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화해서 대학 특성에 맞춰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융합’의 시대인데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옛날 방법을 계속할 것이냐도 문제입니다. 바꾸자고 해서 몇 년 전에 통합하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다시 되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수학 과목 같은 경우 문과와 이과를 통합해 시험을 볼 경우, 문과생과 이과생 간 수준 차이가 분명히 있을 텐데요.

“수준을 낮춰 공부하는 것이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 공부를 제대로 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분명히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부분은 보완을 해야지 그렇다고 해서 문과와 이과를 다시 나누자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짓입니다. 작은 문제를 갖고 문과와 이과 통합을 반대하면 안 됩니다. 입시 문제에 대해 오래 연구한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만들어야지,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부분의 문제를 부각해 결론내고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예전에 대학들이 신입생들의 실력이 낮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공대생이 미·적분을 못 하더라는 하소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적어도 공과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런 공부를 해서 오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같은 나라를 보면 그런 것을 모르고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많아요. 그래도 그 학생들이 결국에는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죠. 요점은 미·적분 다 풀고 대학에 와야 한다는 게 아니라 ‘기초 공사’를 얼마나 확실히 하고 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제도를 보완한다면 해결책이 반드시 나올 겁니다.”

―모 인터뷰에서 최근 서울대에서 발생했던 교수들의 ‘갑질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던데요.

“갑질이라고까지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 학부 교육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반해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는 논의가 별로 없습니다. 대학원은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끈끈함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자세와 방법을 가르치고, 그러면서 새로운 지적 자산을 창출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2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교수가 대학원생들에게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교육 체계가 갖춰져 있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 기업의 보고서 같은 글들을 연구 논문이라고 내놓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특히 최근에 와서는 교수와 대학원생과의 관계가 ‘도제관계’ 비슷하게 얽히면서 학생이 교수를 존경하는 풍토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대학원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이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는가, 그로부터 창출되는 지적자산은 쓸 만한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면, 다시 말해 교수와 대학원생과의 인간관계가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학원생들 역시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가 동등하거나 공평한 관계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지도교수가 대학원생에게) 일을 시키고 토론하고 하는 방식은 맞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상명하달하는 그런 관계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모두 조금만 조심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겁니다. 학교에서 인권센터도 만들고 하는 활동 등이 그런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지만, 교수와 학생의 관계라는 것이 지금처럼 계속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학원 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잘 녹아들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은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습니다. 장학금 많이 주고, 외국의 교수 불러다 강의하고 연구논문만 잘 쓰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대학원 교육에 대한 인식을 빨리 개선·확산하는 것이 곧 우리나라의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직생활도 하셨습니다. (유 교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제25대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맡았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 정책이라는 것이 정교하고 다양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최근에는 그 정교함과 다양성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세상이 복잡해져서 한 가지 처방만으로는 경제개발이든 국민을 위한 일이든 할 수가 없습니다. 정책 하나를 시행하면 단점이나 문제점이 생깁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난한 사람도 만족시키고 경제발전도 이루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렇기에 여러 다양한 ‘처방’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분법적인 것은 안 됩니다. ‘성장’을 하면서 ‘복지’도 봐야 합니다. 성장을 한다고 복지를 못하면 ‘나쁜 사람’이고, 복지를 한다고 성장을 하지 못한다면 ‘바보’입니다. 같이 갈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교육 역시 수월성도 추구해야 하고, 평등성 측면에서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평등성을 강조하면서 수월성도 유지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어려운 일이죠. 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아이디어를 실제 정책으로 만드는 것 역시 어려운 과제입니다. 결국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갖고 오랜 시간 고민해야 올바른 정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기에 영합해 정책을 시행하거나, 공무원들이 너무 자주 자리를 바꾸다 보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무원을 잘 키워주는 인사시스템을 마련해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맡아 하셨는데요. 최근 새 정부가 공무원을 많이 늘리는 고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공무원을 단기적으로 늘리면 일자리 창출도 되고 국민을 위한 여러 일도 꼼꼼히 할 수는 있을 겁니다. 문제는 공무원 인사 시스템이 ‘유연한 고용’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점입니다. 필요하면 공무원도 감축할 수 있어야 하고, 인력이 필요한 다른 자리에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공무원 인사 시스템은 경직돼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공무원은 늘리되 공무원 인사 시스템도 그것에 맞게 유연하게 바꿔야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다가 필요하면 다른 부서에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기업에도 파견을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유연성 없이 당장 인원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연한 인사 시스템이 같이 갖춰져야 합니다. 일단 공무원을 늘리기로 했으면 시대적 수요 변화에 맞춰 공무원 인사 시스템도 유연하게 바꾸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유 교수는 원장직을 수행하면서 공직생애주기별 필요 역량을 감안한 맞춤형 교육을 확대하고, 외국 공무원 교육대상 확대 등 행정 한류 확산 및 글로벌 역량 함양 육성에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대화 주제를 바꿔봤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를 설립해 개발도상국에 기술지원을 하는 등 10여 년 넘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70학번인데 당시에는 저뿐 아니라 그 시대 젊은이들 대부분이 더불어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봉사 활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자라온 데다 공대에 와서 과학 기술 연구나 열심히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우연히 필리핀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피부가 망가진 것을 보게 됐는데 ‘내가 할 일이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만든 것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였습니다.”

―필리핀에는 봉사활동을 가신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2009년 필리핀의 한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간 곳이라 궁금한 게 많았는데, 필리핀에는 봉사활동으로 지원을 받는 동네가 많다는 얘기를 들어 그곳 아는 분에게 그런 동네를 구경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분이 근교 시골 마을을 구경시켜 줬는데, 그곳 사람들은 피부병이 많이 생기는데도 돈이 없어 병원은 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로부터 피부 연고제를 받아 임시처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피부병에 걸리냐고 물었더니, 물이 더러워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상·하수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개천의 더러운 물을 받아다가 마시고 씻고 하니 피부병에 걸리는 것이었습니다. 피부 연고를 나눠주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물을 깨끗이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몇몇 아는 분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물을 정화해 주는 자원 봉사자 분들을 소개해 주더군요. 이미 그분들은 몇 년 전부터 정수장치를 후진국에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2009년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국경없는 의사회’를 모티브로 해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라고 지었죠.”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구성원들 간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외국에 나가기 힘들지만, 뭔가 유익한 일을 하고 싶다는 잠재적인 꿈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우리 활동을 소개해 주면, 과학기술이 개발도상국에서는 많은 쓸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과학기술에 대한 또 다른 꿈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생에게는 이런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글로벌 이슈이자 매우 따뜻한 이슈가 됩니다. 더구나 이런 문제들은 자기 전공 분야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협력·융합을 해야 하고, 활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로도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멋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성교육과 창의성 교육이 되는 셈이죠. 직장인들도 자기 직업과 관련돼 이런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되겠구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임의 멤버는 교수뿐 아니라 학생도 있고, 사회인도 있고 다양합니다.”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을 말씀하셨습니다. 적정 기술은 어떤 의미입니까.

“개도국에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가, ‘낙후된 기술’인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최첨단 기술이 개도국에 맞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수준과 문화적 배경, 경제적 상황에 맞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어떤 국가에는 오래된 기술이 맞을 수도 있고, 어떤 국가에는 첨단 기술이 쓰임새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가령,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태양광 패널은 첨단기술이지만, 물을 깨끗이 하는 기술은 오래된 기술인 필터기술을 지금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적정한 기술을 적정 기술이라고 합니다.”

적정 기술은 그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문화·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을 말한다. 1966년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가 개도국에 적합한 소규모 기술 개발을 위한 중간기술개발그룹(ITDG)이라는 조직을 설립한 것이 현대적인 시초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모여 같이 의논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장을 만들면서 우리끼리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정부 조직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도 우리 단체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5년 전쯤일 겁니다. 우리 모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돈도 조직도 약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면 크게 일을 할 수 있죠. 그러나 정부는 우리 같은 전문가들의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가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여러 나라의 공통 문제인 과학기술 문제나 물·에너지·식량 농업 등의 문제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필요하면 연구도 하고 해외에 거점센터도 만들어 이들 국가에 지속 가능하게 보급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정부에 제안했습니다. 정부도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몇 년 전 ‘지구촌 기술 나눔센터’가 세워졌습니다. 지금은 한국연구재단 산하에 있는데, 그 센터를 통해 캄보디아에 물 센터를 만들고 라오스와 네팔에도 이런 것들을 구축했습니다. 올해는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 등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30일 관악캠퍼스에서 ‘사회공헌교수협의회’ 출범식을 가졌다. 유 교수와 안규리 의대 교수가 공동의장을 맡았다.

―서울대 내에 사회공헌교수협의회도 만드셨는데요.

“학교 안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같이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만 가서 공헌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지역, 마을에 가서 공부를 시켜줘야 하고 누구는 물 에너지, 누구는 농업에 대한 것을 가르쳐야 하죠. 그래서 같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몇 년 전부터 준비해 지난 5∼6월 사이에 사람들을 만나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제가 비록 명예교수가 되지만, 이런 일은 나이 든 사람들이 해도 괜찮다 싶어 공동회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좀 해 주시죠.

“1955년 미국 정부가 미네소타대에 예산을 주어 시작한 한국 원조 프로젝트입니다. 1961년까지 진행된 교육 지원 사업인데, 당시 226명의 서울대 교수들이 미네소타대에서 연수를 받았고 59명의 미네소타대 자문관들이 한국을 방문해 서울대에서 교육 체계의 기틀을 닦는 데 공헌했죠. 미국이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서울대 발전에 큰 도움을 준 것처럼 서울대도 개도국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정년퇴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는 강의하고 연구하는 것이 본업이다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쏟아 열심히 했는데, 그 부담이 없어지니 어깨가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벌써 나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간이 빠르다는 의미도 있고, 정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정년을 70세로 바꾸고 있죠. 미국도 오래전부터 그랬고, 유럽도 바뀌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쉬운 마음이 크기는 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있으십니까.

“당장은 없어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몇 달 여행도 하고 책도 보면서 새롭게 생각해 봐야죠.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9월 한 달 동안은 인도네시아의 한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다녀오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인구가 3억 명으로 세계에서 5번째 되는 나라입니다. 천연자원도 매우 많죠. 요즘 많은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때 가서 도와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 임대환 차장(사회부) hwan91@munhwa.com
정리=윤명진 기자 jinieyoon@munhwa.com
e-mail 김선규 기자 / 사진부 / 부장 김선규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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