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너무 잘 쳐도 민폐… 가끔 시원한 OB로 무거운 분위기 날렸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사익 회장이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상동면 경부건설 김해 현장 사무실에서 자신의 스윙 사진을 보면서 장타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박사익 경부건설 회장

박사익(60) 경부건설㈜ 회장은 사업가는 지나치게 골프에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골프에 열중하느라 사업을 등한시하는 걸 무엇보다 경계한다. 지난달 25일 경남 김해시 상동면의 산기슭 발파 작업 현장. 작업복 차림의 박 회장은 직원들을 진두지휘하느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지땀을 흘렸다. 계열기업 4개를 거느린 ‘오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박 회장은 “공사 현장에서는 늘 작업복 차림으로 직원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땀을 흘린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정치 지망생이었다. 26세 때 당시 집권당이던 민정당에 청년 요원으로 입당했다. 2009년 작고한 부산 출신 서석재 전 의원을 박 회장은 ‘정치적 아버지’로 모셨다.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물들이 골프 하는 걸 자주 봤고, 자연스레 28세 때 골프에 입문했다. 정신수양을 위해 전통무예인 당수도(8단)를 수련한 박 회장은 골프채를 잡자마자 드라이버 샷으로 260m나 날렸다. 물론 방향과 거리는 제멋대로였다. 워낙 스윙 스피드가 빨라 프로가 쓰던 클럽을 물려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100타 이상이면 골프장 입장을 삼가달라’는 문구가 골프장 입구에 내걸렸던 시절 골프를 배웠다. 골프채를 1주일 휘두른 뒤 필드에 나가는 요즘과는 달랐다. 박 회장은 4개월간 연습한 뒤에야 골프장에서 머리를 얹을 수 있었다. 연습장 프로에게 골프 에티켓도 함께 배웠다. 당시 부산지역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20대는 보기 어려웠다. 부산을 포함해 경남 지역 골프장은 서너 곳에 불과했다. 젊었기에 라운드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박 회장의 당시 역할은 ‘뻥뻥 날리는 샷’으로 동반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안기는 것이었다. 시원시원한 장타를 뿜어냈기에 주말이면 “공이나 한번 치자”는 호출이 끊이지 않았다. 박 회장은 부산에서 차를 몰고 경기 용인까지 ‘출장’ 다닌 적도 많았다. 박 회장은 “여름철 오전 7∼8시에 티 타임을 통보받고 밤새 운전대를 잡아 수도권 골프장에 도착하곤 했다”면서 “부산에서 출발해 3시간 30분 만에 수도권 골프장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물들을 주로 모시고 다녔기에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너무 못하면 ‘민폐’를 끼치는 셈. 그런데 너무 잘해도 문제가 됐다. 라운드의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싶으면, 박 회장은 시원한 장타를 연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옆 홀로 OB를 내주면, 동반자들은 “아이고야, 아깝데이”라고 말하며 즐거운 표정을 짓곤 했다. 눈치껏 플레이하다 보니 타수 관리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은 골프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처음 70대 스코어를 작성했다. 38세 때 77타를 기록했던 게 베스트스코어.

박 회장은 ‘재력도 있어야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대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부산지역에 기반을 둔 건설사를 창업했다. 1986년쯤부터 건설의 모태였던 경원공영을 설립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회사 일에 매달리다 보니 정치와는 점차 멀어지게 됐다. 이렇게 그는 기업인 체질로 변신했다. 한국채석협회장을 지낸 박 회장은 지난 30여 년간 골재 등 기초 자재를 공급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김해시 전체 물량의 30% 정도를 공급했다. 김해 채석장 현장은 골프장으로 인허가를 받았던 곳이다. 박 회장은 10여 년 전 암반투성이 120만㎡ 규모의 부지를 사들였다. 처음엔 골프장을 건설할 작정이었지만 회원권 분양이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다. 그리고 돌의 매장량이 4000억 원대를 넘을 것이란 판단에서 채석 허가를 받았다. 지난 5년 동안 전체의 20%만 채석했다. 앞으로 20년 동안 건설용 자갈과 파쇄 모래를 생산할 예정이다. 하루 덤프트럭 540여 대 분량, 1억5000만 원 상당의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있다. 박 회장은 12년 전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추천으로 터키 명예 총영사를 맡았다.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2005년 작고하자 바통을 이어받은 것. 이 인연으로 터키 제3의 도시인 이즈미르에 지사를 두고 있다.

박 회장은 5공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인척과 함께 부산지역 골프장을 자주 들락거렸다. 당시 골프백에 달린 대통령 친인척의 이름표는 골프장에서는 ‘마패’와도 같은 효력을 지녔다. 일행은 VIP룸으로 안내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건설사를 운영하면서 박 회장의 라운드 횟수는 늘어났다. 가볍게 70대 중후반 스코어를 남기곤 했다.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도 잘 맞으면 260m는 거뜬하게 보낸다. 파5 홀에서 2온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파4 홀에서 1온한 적도 여러 차례. 친분이 깊은 탤런트 이정길 씨와 자주 골프장에 다녔다. 이 씨와 경주CC에서 동반했을 때의 에피소드. 박 회장은 파5 홀에서 티샷을 아주 멀리 날렸다. 앞 팀이 그린을 벗어나기를 기다리던 중, 쫓아온 뒤 팀이 “올리지 못할 텐데…”라며 간섭했다. 참다못한 이 씨가 “올리면 어떻게 할 거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박 회장은 5번 아이언 샷으로 그린을 벗어나는 앞 팀 근처까지 날렸다. 이후 남은 홀에서 뒤 팀은 얼씬도 하지 않았단다.

30∼40대였을 때는 월 7∼8회 필드에 나섰지만, 지금은 월 2∼3회 나가기도 빠듯하단다. 장타 덕분에 박 회장의 골프 백에는 클럽이 11개만 있다. 드라이버 외에 우드는 물론 하이브리드 한 자루 없다. 프로조차 까다롭다는 머슬백 타입의 아이언을 3번부터 갖고 다닌다. 골프채는 10년 이상 된 구형. 스펙을 새로 맞추려면 시간과 돈이 들어가기에 그대로 쓰고 있다.

김해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