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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1일(金)
‘기업 패싱’이 산업정책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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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요 며칠 사이 국내 1·2위 기업 삼성과 현대기아차에 닥친 시련은 두 기업이 한국경제에서 갖는 위상으로 볼 때 가볍게 보기 어렵다. 외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를 일제히 긴급 뉴스로 다루며 삼성의 미래에 의문부호를 표시했다. 삼성은 4차 산업혁명기에 애플·구글·아마존 등 IT 거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 국가 대표선수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의 반응은 조용하다 못해 싸늘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집권당 대표의 코멘트만 기억날 뿐이다. 현대차의 중국 공장 가동 중단 쇼크가 전해질 때 긴장감을 갖고 수습에 나서는 정부 관계자는 보기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사드 보복의 빌미는 정부가 제공하지 않았던가. 기아차에 ‘통상임금 폭탄’이 떨어졌는데도 산업계에 미칠 파장을 챙겨야 할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경제계는 경제계대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 이해가 걸린 현안마다 목소리를 높여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입에 자물쇠를 채운 지는 꽤 됐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원죄로 정부 주관 행사에서 철저히 배제된 상태다. 경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 김영배 부회장이 정규직화 정책을 비판했다가 “반성부터 하라”는 문 대통령의 질책에 기겁하곤 최저임금·통상임금 같은 뜨거운 소관 이슈에도 철저히 입을 닫았다. 청와대 초청을 받은 기업인들은 문 대통령 앞에서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입도 뻥끗 못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30일 국회를 찾아 통상임금 법제화를 요청한 것이 화제가 될 정도로 재계는 잔뜩 움츠려 있다.

문 정부 들어 유행어가 된 ‘패싱’이 기업들 사이에서도 떠돈다. ‘전경련 패싱’이나 ‘대기업 패싱’이란 말은 진작 나왔으나, 최근엔 아예 ‘기업 패싱’으로 묶어 부르는 분위기다. 문 정부가 각별히 챙겨줄 것으로 여겼던 중소기업들까지도 뒤통수를 맞고 비명을 지르고 있어서다.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범위,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문제 등 기업들이 걱정하는 사안은 대부분 노동 현안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전전긍긍하는 악재들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당사자인 기업들 의견을 듣는 시늉도 않고 작전하듯 밀어붙이는 중이다. 노사정 대화가 그런 정책을 관철할 채널이다. 한데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총, 노사정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이다. 사 측 대표를 양 노총 YB와 OB들이 포위한 형국이다. 가뜩이나 정권 기세에 주눅 든 기업이 목소리나 내겠는가.

기업을 이렇듯 도외시하는 정부는 전례가 없다. 기업은 생산과 유통, 고용을 담당하는 주역이다. 기업이 직간접으로 제공하는 법인세·소득세·부가가치세 등은 나라 살림의 토대다. 요컨대 기업은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화수분이다. 기업의 역량은 혁신을 통해 구현되고, 그 혜택은 모든 사람에게 퍼져나간다. 포드의 조립식 생산방식이 생산성을 순식간에 3000% 높이면서 자동차 값을 파격적으로 낮춘 것이나, 아이폰이 세계인의 라이프사이클을 바꿔놓은 것이 그렇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기업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마다 기업을 핵심고리로 성장전략을 짠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법인세를 내리는 방식으로 기업을 겨냥한 세일즈에 나서는 게 글로벌 트렌드다. 이상하게도 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규제 혁파 얘기는 사라졌고, 개혁 대상인 노동 기득권이 큰소리치고, 법인세 인상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는 신재생 에너지 전문가가 차지하고 앉아 신산업 대신 탈원전만 외친다. 시민단체 출신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분할명령제, 가격통제권 등 무시무시한 정책수단을 예사롭게 거론한다. 검·경과 국세청은 사정 드라이브에 나섰다. 기업 패싱을 넘어 ‘기업 저격’을 의심할 판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건 문 정부로선 기업의 역할에 시큰둥할 수 있다. 세금을 풀어 일자리를 만든다지만, 그 세금 또한 기업이 주저앉으면 나올 곳이 없다. 기업이라는 지속 엔진이 빠진 성장론은 결국 허구다. 삼성·현대기아차 같은 큰 기업이 더 나와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세계 일류기업들과의 국가 대항전에서 밀리지 않는다. 혁신의 전제는 자유다. 나라를 먹여 살릴 우등생들을 옥죄고 질시하는 산업정책은 자해(自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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