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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4일(月)
사조직에 흔들리는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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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중앙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정의의 여신상’이다. 오른손엔 저울을, 왼손엔 법전을 들고 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과 양심, 그리고 오직 법의 잣대로 판단하라는 경구(警句)의 형상화다.

우리 헌법이 국회의원은 4년, 대통령은 5년,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서로 엇갈리게 해놓았다. 입법·사법·행정부가 서로 견제와 균형을 지켜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다. 특히, 대법관의 임기 6년은 정의의 여신상이 주는 메시지처럼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법원은 사법의 최후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탄핵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있는 것도 그동안 균형감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법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법원의 인사나 내부의 움직임을 보면 명분은 ‘사법개혁’ ‘적폐 청산’이라고 하지만 1980년대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가 군 요직을 장악하는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한 것과 같이 특정 ‘사조직(私組職)’에 휘둘리고 있다. 그 중심에는 1980년대에 결성된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있다.

1988년 6월 10일 서울 시내 한 맥줏집에서 모인 4명의 소장 판사는 6·29 선언 직후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닷새 후 전국 소장판사 430명은 법원 독립과 사법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김용철 대법원장이 퇴진하고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하는 2차 사법파동이 벌어진다. 이를 주도했던 4명의 소장 판사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연구모임이 바로 우리법연구회다. 초대회장은 대법원장 후보 1순위에 올랐지만 끝내 거절한 박시환 전 대법관이다.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이 연구모임 멤버가 법원의 핵심 요직을 맡으면서 법원의 하나회라는 비판을 받다 2010년 해산했다.

하지만 이듬해 인적 구성과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새롭게 출범했고, 초대 회장이 바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다. 3000여 명에 이르는 전국의 법관 중 회원이 500여 명에 달하고, 간사를 맡았던 김형연 부장판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임명됐다. 법무부 법무실장에 임명된 이용구 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뒤 ‘완장’처럼 요직에 진출하면서 일각에서는 법원을 아예 ‘국제인권법연구회’로 개명하라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법원 게시판에 ‘재판은 곧 정치’ ‘대법원 판결을 따를 필요 없다’는 주장을 펼친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도 이 연구회 주요 멤버인 것을 보면 이들 생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를 ‘적폐’로 보고 개혁하겠다고 나서면서 이 연구회는 단순한 연구모임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대법관에 임명된 박정화 대법관도 이 연구회 출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 등 5명의 임명권이 문 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렸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 14명의 대법관 중 12명을 교체할 수 있고, 9명의 헌법재판관 중 8명이 5년 내 임기가 끝나 교체된다. 탄핵 여파로 특정 정권에 과도한 임명권이 쏠리게 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법원을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완전히 장악할 날이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김명수 후보자의 자질과 품성을 떠나 권력화된 특정 연구모임의 회장 출신을 대법원장에 지명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연구모임이야 권장할 일이지만 이 모임이 인사와 정책을 좌우하며 권력화되는 순간 순수성은 빛이 바랜다. 승진을 의식하거나 조직에서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당연히 이 모임에 가입하려 할 것이고, 이 모임의 뜻이 인사 등에 영향을 미친다면 법원은 더 이상 공조직이 아니다. 인사뿐만 아니라 판결에서도 이런 연구회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다면 기울어진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주식 투자’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 사례처럼 민변이나 이 연구모임 출신이라면 어떤 허물도 덮어두자는 정권 내부의 분위기도 큰 문제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만 사법부를 채운다면 견제와 균형은 무너지고 정권의 독주를 막을 브레이크는 없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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