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兒 조사나갔다 폭언·폭행 당하는 아동상담원

- 7일 ‘사회복지의 날’

“네 아이는 괜찮을 것 같냐”
부모 협박에 신변위협 느껴
관계 어그러질까 신고 못해
업무 과중에 이직자도 속출

12년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A(36) 씨는 최근 학대받는 아동을 구해내려다 그 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A 씨는 5일 “분리 조치(학대 피해 아동을 부모와 떼어놓는 것)에 화가 난 아이 아버지가 담뱃불로 팔을 지졌다”며 “하지만 학대 발생 원인 조사와 재발 방지 상담 등 사후관리를 위해 아이 부모와 관계를 이어가야 하기에 경찰에 신고도 못 하고 내 돈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했다”고 말했다.

9년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 및 사례 관리 업무를 하는 B(여·33) 씨도 얼마 전 가슴이 철렁하는 일을 겪었다. 학대 아동 사례 관리 차 들른 가정에서 아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 갑자기 커터칼을 꺼낸 것. B 씨는 “아이 아버지가 고개를 돌릴 때 칼을 슬쩍 밀어 위기 상황은 모면했다”며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부모들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이 학대 가정을 조사·관리하는 과정에서 아동들의 부모로부터 폭언·협박은 물론 폭행 등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오는 7일은 정부가 정한 제18회 사회복지의 날. 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여전히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 사회복지사는 “임신 중인 동료가 학대 가해 부모로부터 ‘네 배 속의 애는 온전할 것 같냐’는 등 온갖 저주를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1년 경남 진주에선 학대 행위자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앙심을 품고 불을 지르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지방에서 근무하는 상담원들은 담당 지역이 넓어 학대 가정 접근성이 턱없이 떨어지는 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는 ‘진상’ 부모도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지역에서 2년째 근무하고 있는 C(여·26) 씨는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폭언은 이제 익숙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하지만 ‘너희가 가정해체범이다’ ‘너희 때문에 멀쩡했던 가정이 망가졌다’는 식의 비난을 들을 때면, 내가 이런 말까지 들어가며 사회복지사 일을 해야 하나 싶어 맥이 빠진다”고 한숨지었다. 공황 상태에 빠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그만두는 사회복지사도 많다. 한 사회복지사는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젊고 경험이 드문 복지사가 많아지고, 이들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데 미숙해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사들이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근본적 제도 개선을 해야 아동 보호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복지사의 업무에 대해 부모에게 잘 알리고, 학대 현장에 갈 때는 항상 경찰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해 복지사의 안전을 지키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본부장은 “현재 61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을 200개 이상으로 확충해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고 적정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