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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6일(水)
‘4선의원 부럽지 않던 시절’ 비화 곁들여 권력 속성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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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재욱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자신의 법률사무소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 손을 들며 활짝 웃고 있다. 뒤로 의뢰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사건 기록들이 무더기로 놓여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詩를 사랑한 ‘특수통 검사’ 출신 배재욱 변호사

“어릴 적 백일장 장원 휩쓸어… 검사도 문학적 감수성 가져야”


한 변호사가 매주 지인들에게 시(詩) 한 편과 그에 대한 감상까지 더해진 ‘공들인 글’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었다. 그 변호사가 바로 대검찰청 초대 공보관·중앙수사부 과장을 지낸 검사이자 김영삼 정부 때 사정비서관으로 5년 내내 청와대에서 일했던 배재욱(72) 변호사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특수통’ 검사의 이미지와 시를 가까이 두고 지내는 감성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궁금해서다. 점심 식사를 겸한 인터뷰는 배 변호사의 사무실까지 장소를 옮겨 장장 3시간 30분 넘게 이어졌다.

긴 인터뷰 내내 배 변호사는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정국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하고 ‘4선 의원도 무섭지 않았다’던 시절 비화를 곁들여 권력의 속성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긴 영시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격정적 어조로 암송하고 시어(詩語)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에선 영락없는 ‘문학 소년’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검찰 수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바람직한 검찰 개혁의 방향을 논할 때는 특수부 검사였다가, 초임 검사 시절 ‘첫사랑’의 편지를 받은 사연을 이야기할 때는 다시 시인(詩人)이 되기도 했다.

나이 들며 키가 2㎝ 줄었어도 177㎝로 훤칠한 배 변호사는 전날 부산에 내려가 부산고검·지검, 울산지검을 거쳐 경찰서까지 들러 밤에 올라왔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냐는 질문에 “원래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한테 의뢰하는 사건은 내가 다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며 “재판에 참석하고 검찰에 가서 설명하는 것도 내가 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보고 의뢰하러 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게 예의”라고 말했다.

1000여 명의 지인에게 ‘시 나눔’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대뜸 어린 시절 ‘자랑’부터 나왔다. “내가 어릴 때 글을 참 잘 썼어. 경남중·고 교내 백일장은 물론이고 부산 시내에서 열린 재건의회 백일장, 밀양 예술제 같은 거 장원은 다 휩쓸었어. 그런데 중3 때 아버지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일단 집안에서 바라는 대로 법대에 진학했는데, 막상 법대에 가보니 나중에 뭘 하더라도 일단 사법시험은 합격해야겠더라고. 그때부터 글 쓰고 시 짓는 것도 접고 고시 공부를 시작했어.”

지인들에게 계절에 맞는 시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배 변호사는 “시가 주는 정감, 시어를 표현하는 맑고 고운 마음이 나와 잘 맞고 재능도 있는 것 같아 ‘영원히 같이 가야지’라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고 우선 목표(사시 합격)를 정해놓으니 시를 쓰는 것을 멈췄는데 그래도 영원히 향수가 남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 시간이 여유로울 때 옛날에 못했던 걸 해보자고 마음먹었다”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스스로 즐겁다”고 설명했다.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올 때쯤엔 박목월의 시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와 함께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 희고도 큼직한 날개로 마음껏 비상해 보자”는 봄을 맞이하는 자세를 함께 보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휘청일 때는 김용택의 ‘그 강에 가고 싶다’를 소개하며 “우리는 지친 대한민국을 두고 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처럼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는가 하면, 안희선의 ‘사랑을 위한 변명’을 소개하며 “우리 아름다운 산하가 증오와 불신이 깊어진 저주의 늪이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이른 대선이 한창일 때는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시를 받아 보는 이들의 자작시를 보내 달라는 요청에 배 변호사는 경남중학교 졸업 후 가슴막염으로 한 해 쉴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최종심까지 올랐던 ‘산사에서’를 보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쓴 작품이 신문문예 최종심까지 오를 정도면 실력이 예사롭지 않지만 지금 시작(詩作)은 하지 않고 있다. “생업에서 손을 뗄 때 아직 능력이 남아 있다면 다시 시를 쓰겠다”는 배 변호사는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검사를 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배 변호사는 대검찰청 초대 대변인(공보관)을 지냈다. 그를 대변인으로 발탁한 이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1988년 김 전 비서실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뒤 경남 거창지청장으로 있던 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로 올라오라”고 했다. 서울지검 특수부 수석검사 시절 배 변호사를 눈여겨본 신성호 전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당시 법조 출입 기자들도 만장일치로 추천했다. 그렇게 대변인이 된 뒤 정구영 전 총장 때까지 2년 6개월을 꼬박 대검 대변인으로 있었다. 김기춘 전 총장의 경남고 후배인 배 변호사는 1년 6개월 근무한 뒤 그만두려 했으나 마침 경남고의 ‘라이벌’ 부산고 출신 정 전 총장이 “고등학교 선배가 할 때는 열심히 하더니 내가 오니까 도망가려 하냐”며 붙잡자 뿌리치지 못하고 1년 더 기자들과 ‘동고동락’했다. 그는 “검찰과 언론은 영원히 서로 경계하면서도 영원히 같이 가는 사이”라며 “지금도 아는 언론인들 애경사를 다 챙긴다”고 자랑했다.

대구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배 변호사는 “초임 검사 시절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는데 2~3일씩 밤을 지새우고 집에 가서는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며 “당시 대구지검에는 특수부도 없고 형사부밖에 없었는데 초임 검사 눈에도 ‘죽일 놈’들이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가 돼서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명감에 마누라 어깨만 한 번 두드려주고 나와서 며칠씩 밤샘 근무를 했다”며 “후배 검사들도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검사를 하나의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후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언론, 의료계에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도제제도가 있는 것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전통을 면면히 이어 가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며 “선배들은 후배를 좀 더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후배들도 사명감을 갖고 선배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수통 검사인 그에게 검찰 개혁에 대해 물었다. 답은 이렇다.

“사실 과거 대검중수부나 특수부 검사들은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는 대전제 아래 수사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는 한 번 ‘표적’이 되면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로 세게 수사를 받는다. 검찰도 이제 소위 표적 수사니 별건 수사니 오해를 받지 않도록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는 게 맞는다”고.

그는 “부정부패 척결은 검찰의 생존 이유이고 존재 가치, 양보할 수 없는 대전제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나 위법적 요소 등 숙제가 100%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며 “그런 부분이 검찰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는 만큼 인권 차원에서 큰 안목을 갖고 바람직한 검찰상을 이루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동기 중 선두권에 있었다고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로 ‘잘나가는’ 검사였던 배 변호사는 고등학교 선배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5년 꼬박 YS의 최대 관심사이자 권력의 핵심인 사정 업무를 담당했다. YS가 5년 내내 곁에 둘 정도로 신뢰를 받았지만 결국 ‘미묘한’ 사정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큰 고초를 겪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도 말한다. “거기 간 건 좋았는데 너무 오래 있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청와대 들어와서 경력 쌓고 나가는데 공무원들만 자신을 신임하는 사람한테 충성을 다했어. YS가 당시 사람 뽑는 능력은 탁월해서 1996년에 이재오·손학규·김문수 등을 영입할 때 홍준표·안상수·최연희·함승희 등 검사 출신도 10명 넘게 공천을 줬어. 당시만 해도 검사는 참신하고 능력 있는 직업군이었으니까. 나도 고향(경남 양산) 사람들이 버스까지 대절해 서울로 와서 출마를 요청하고 했는데 YS가 놔주지도 않았고, 당시 사정비서관 눈에 초선 의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배 변호사는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여러 역학관계에서 정권 끝까지 있으면 사정한 사람들은 반드시 보복당하게 돼 있다”며 “정권교체 된 뒤 전 정권에 대한 보복이나 척결은 이젠 그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검찰총장은 배 변호사가 특수1부 수석검사 때 부장검사였던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었고, 차석검사였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청와대에 법무비서관으로 들어갔다. 함께 특수1부에 있었던 이승구 전 서울동부지검장이 배 변호사를 조사했다. ‘옛 동료’들과 ‘악연’으로 엇갈린 셈이다. 당시 수감된 배 변호사를 면회한 후배 검사들이 곧바로 감찰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에게 시에 대한 사랑 못지않게 큰 것이 ‘경남중·고’에 대한 애정이다. 남들이 1, 2년씩 하는 재경동창회장도 3년이나 했고 발전위원장도 맡아 모교를 위한 100억 원 기금 조성에 적극 나섰다. 경남고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나왔다. 박희태·김형오 전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도 경남고 출신이다. 3부 수장을 모두 배출한 학교는 경기고·경북고·경남고뿐이다. 이런저런 경남고 출신 인사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양 대법원장에 대해 “아주 우수한 법관”이라며 “마지막 대법관 인사에서 스토리가 있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을 임명한 것은 정말 잘했다”고 평가했다. 자신을 대검 대변인으로 발탁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변호인을 맡기도 한 배 변호사는 그에 대해 “비서실장 전에는 무슨 직을 맡더라도 적합한 능력을 발휘해 위로부터 신임받고 밑으로부터 존경받았는데 거기 가지 않고 뒤에서 도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경남중·고 동문에 대해 덕담을 이어가던 배 변호사는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올해 2월 총동창회 때 옆자리에 앉은 문 대통령과 한참 얘기를 주고받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자연스레 문 대통령이 대화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협치는 정말 잘 내걸었다고 생각해. 처음 내건 국민대통합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그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야. 사실 역대 대통령들이 나름 치적도 있지만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박수갈채를 받은 대통령은 없어. YS도 취임했을 때 90% 이상 지지를 받았지만 결국 임기 막판 외환위기 등으로 그렇게 됐잖아. 45% 지지자 외에 나머지 55% 지지 안 한 사람도 떠날 때 박수 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펼치고, 지금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책을 펴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야. 문 대통령은 대(大) 경남고가 배출한 두 번째 대통령이니 정말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으면 좋겠어.”

경남고 앞의 ‘대’ 자를 빼고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절절한 ‘동문 선배’의 조언으로 들렸다.

인터뷰=민병기 기자(사회부)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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