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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6일(水)
인생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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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

영화 ‘국제시장’이 여러모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태극기에 대한 경례 등 당시 상황을 놓고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논쟁과 관계없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는 장면이 있다. “아부지, 이 정도면 저 정말 잘 살았지예?” 즐겁게 떠들어대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방 안에서 그렇게 말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평생을 참아온 가부장의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진작에 저렇게 자주 울면서 살았으면 인생이 좀 더 편했을 텐데….’

우리 사회에서는 힘들어도 울지 않고 가족 부양을 혼자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남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삶이 남성에게 주는 어마어마한 부담의 무게를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가 없으면, 아무리 어려도 아들은 어머니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사내다움의 강박 속에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살아왔다. 그렇게 앞만 보고 내달리다가 어느 순간 50 전후의 나이에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런데 이때부터 자식들 대학 등록금과 결혼 비용 걱정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맞벌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은 점점 보기 어렵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저렇게 버텨보다가 상당수 여성이 이른바 ‘경력 단절’을 한다. 자녀 돌봄이나 집안일로 인한 남성의 경력 단절은 아직 낯선 개념이다. 자녀 돌봄 때문에 누군가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면 소득이 더 낮거나 부양 의무를 규범으로 내재화하지 않은 사람이다. 곧 여성이다. 동일 노동일 때 여성은 남성 임금의 60% 정도를 받으며, 함께 벌더라도 가장은 남성이다. 여성의 소득은 부가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살아 있는 가부장제의 모습이다.

한창 직장에 다닐 수 있는 나이에 원치도 않는 인생 이모작을 해야 하고 동시에 가족 부양 부담을 홀로 짊어지면서 ‘좀처럼 죽지도 않는’ 노후에 대한 걱정을 영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현대판 3대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청년세대 사이에서는 남녀 일·가정 양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 경력 단절에 따른 남성 가장의 부양 부담이 지속된다. 이렇게 살다 보면 부모 세대가 현재 경험하는 문제에 다시 부닥치게 된다.

가장의 역할을 다하는 대가로 지금까지 남성은 여성을 대상화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남편의 외도는 남성다움의 상징이었지만, 여성의 외도는 가정 파탄으로 이어졌다. 그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이 배워왔다. 그런데 더는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를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성이 주변에서 사라질 때 남성은 혼란에 빠진다. 50대 이상이 되면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 자살률의 3배 이상이나 된다. 나이 든 아버지는 관계에서의 소외를 경험한다. 취업과 결혼을 못 해 이른바 ‘어른’이 되지 못하는 젊은 아들은 사회에 대한 증오, 여성에 대한 혐오를 키워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돌아오는 가부장제의 부메랑이다.

성 평등은 무슨 거창한 이념이나 이론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수단도 아니다. 지금은 가장(家長)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 있는 남성이 많아진 상태다. 가장의 부담을 대가로 가족관계를 잃어버린 남성에게 가족과 사랑을 찾아주는 희망이 성 평등이다. 가장의 부담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여성과 함께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은 남성의 삶이 편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사는 지혜, 바로 성 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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