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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8일(金)
‘평범한 삶’ 복작이던 한양의 천변…‘조선 최고 풍속화’ 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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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관수교. 중구 입정동과 종로구 관수동-장사동 사이에 놓인 다리로 김홍도는 이 일대에서 거주하며 풍속화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93) 단원 김홍도의 서울 청계천

단원 김홍도 (檀園 金弘道·1745~1806?)는 단연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국민의 화가다.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 시절에 어진화가로 한양에서 활약했던 김홍도는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을까. 한국 회화의 고전이라 할, 단원이 그린 명작들의 터전은 어디였을까.

# 새 자료 발굴, 안기찰방 시절 단원화첩

나는 2013년 봄 동산방화랑에서 옛 그림 기획전 ‘조선후기 화조화전-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을 준비하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단원의 화첩과 출신지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만났다. 이 화첩은 김홍도가 1784년 6월 안기찰방(安奇察訪)에 부임해 고성 이씨 임청각(臨淸閣) 주인에게 그려준 것이다.

안기역은 현재 안동시 안기동으로 이름이 전하며 그 지명과 관련된 ‘운안동천(雲安洞天)’ 바위 글씨가 남아 있다. 당시 김홍도가 맡은 종6품직 찰방은 말과 관청의 문건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지금의 역장과 우체국장을 겸한 격이다.

낙동강 변의 풍광을 굽어보는 언덕에 지은 임청각은 조선의 선비로 꼽히는 여러 문인과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안동지역의 명문가 저택이다. 안동시 법흥동 법흥사 터에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7층전탑(七層塼塔)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50칸 이상 남은 임청각 가옥들은 지금도 고택의 위용을 유지하고 있다.

▲  김홍도가 현재 경북 안동시 안기동의 안기찰방에 부임해 고성 이씨 임청각 주인에게 그려준 화첩 속의 그림 ‘갈대꽃과 게’(위·동산방화랑 제공)와 풍속화 ‘서당’(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가 안기찰방을 지내던 시절 마침 임청각의 주인은 그와 동갑내기인 이의수(李宜秀·1745~1814)였다. 이의수의 부친인 허주 이종악(虛舟 李宗岳·1726~1773)은 전서를 잘 쓰고, 산수화첩을 남긴 서화가로 알려져 있다. 찰방 재임 시절 김홍도는 임청각 옆 정자에 ‘이가당(二可堂)’이라는 현판을 써주기도 했다.

임청각 주인에게 그려준 단원화첩은 임청각이란 당호가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점을 감안해서인지 무릉도원의 화사한 ‘복사꽃’으로 시작한다. 이어 ‘죽순과 오죽’ ‘소나무와 거제수나무’ ‘참외와 오이’ ‘내버들과 매미’ ‘황쏘가리와 치어들’ ‘석류’ ‘감나무와 팔가조’ ‘물잔디와 붉은가슴흰죽지’ ‘갈대꽃과 게’ 등 10점으로 꾸며져 ‘수금(水禽)·초목(草木)·충어(蟲魚) 화첩’이라 할 만하다. 마지막 폭 ‘갈대꽃과 게’ 그림에는 “1784년 6월에 임청각 주인을 위해 그렸다”(甲辰流夏 檀園爲臨淸閣主人寫)는 김홍도의 낙관이 보인다.

24×36㎝ 크기의 질 좋은 화선지에 그린 이 수묵담채화들에서는 40세 김홍도의 맑은 기운과 문인화격의 간결한 선미(禪味)가 물씬 풍겨 난다. 매미나 소나무, 대나무 그림도 포함돼 있지만 장수, 다산, 화복, 출세 등 집안의 번창을 기원하는 세속적 길상(吉祥) 그림이 많다. 특히 과거급제를 상징하는 ‘갈대꽃과 게’는 김홍도가 즐겨 다룬 소재로, 밑그림 없이 그 생태와 표정을 정확하게 포착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이 단원화첩은 김홍도가 개성미를 본격적으로 뽐내는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김홍도를 한양도성 사람이라 칭한, 화첩에 곁들인 송관자(松館子)의 발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 송관자의 증언, 단원은 한양도성 사람

이 화첩에 발문을 쓴 송관자 권정교(權正敎·1738~1799)는 봉화 유곡리 문인이다. 기묘사화(1519·중종 14년) 이후 닭실마을 유곡리에 낙향한 충재 권벌(沖齋 權벌)의 후손으로, 이 집안은 문필가를 많이 배출한 영남의 대표적인 가문이기도 하다. 단원이 그림을 그린 지 10년 뒤에 행서체로 쓴 짧은 발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김홍도는 낙성(한양)의 하량 사람으로 단원이라 자호하였다. 찰방과 현감을 두루 거치면서 그림을 잘 그려 당대에 기예를 독차지하였다. 인물, 동물, 꽃과 과일 등을 잘 그렸다. 필세가 윤택하면서 소탈하였고, 채색을 사용하는 기법이 더욱 신묘하였다. 마치 취한 중에 초서를 쓰는 것 같고, 참으로 한 시대의 가품이다. 적호년(甲寅·1794년) 9월 16일. 송관자가 쓰다.” (金弘道 洛城河梁人 自號檀園 歷官郵丞縣監 以繪事擅技當世 善畵人物翎毛花果 筆勢淋리疎脫 用彩之法尤妙 若醉裏行草 誠一代佳品也. 赤虎孟秋旣望 松館子書.)

이 글이 주목되는 것은 송관자가 김홍도를 ‘낙성하량’ 사람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 점 때문이다. 아마도 김홍도가 태어나 살았던, 출신 지역에 대한 유일한 정보이지 싶다. 물론 동 시기에 친분을 가졌던 정범조(丁範祖·1723~1801)가 김홍도를 ‘낙양화사(洛陽畵師)’라 언급한 바 있었다.

하량은 청계천의 다리 이름이니 김홍도는 청계천 사람이겠다. 하량교는 숙종 때 기록에 간간이 보인다. 또는 수표교 동쪽 다리 하랑교의 다른 이름인 하량일 가능성도 있다.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근처에 있어 하랑교(河浪橋)라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중구 입정동과 종로구 관수동-장사동 사이, 창덕궁 앞길에 놓인 이 다리는 청계천 준설을 맡은 준천사가 자리했던 곳이다. 융희 4년(1910) 종묘 앞길을 넓히며 하랑교 왼편에 ‘물 흐름을 굽어본다’는 도가적 이름의 관수교(觀水橋)를 새로 놓았던 모양이다. 2005년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하량교는 고려하지 않았고, 아치 형태의 다리에 ‘관수교’라고 새겼다. 하량교를 마저 복원하든지, 관수교를 ‘단원교’ 혹은 ‘김홍도다리’라고 하면 좋겠다.

# 단원은 조선 경제의 한복판 청계천서 자랐다

이곳을 포함해 광교 광통교, 수표교 일대는 양반층은 물론 역관이나 의관 경아전 등 기술직 관료들, 부자 한양상인 경상(京商)들이 운집했기에 중촌(中村)이라 불렸고, 종로와 함께 조선 경제를 움직이던 중심지였다. 결국 김홍도 회화의 드높은 예술성도 그 청계천 변의 부를 배경으로 삼았을 터이다. 실제 김홍도의 집안도 부유했다. 별일 없이 지낸 아버지 김무석을 염두에 둘 때, 사냥매를 길들이는 응사장무(鷹師掌務)를 거쳐 군관을 역임했던 할아버지 김수성이 관아에 물건을 납품하는 공물주인(貢物主人)이었으니 대를 이어 부를 축적했을 법하기 때문이다. (‘비변사등록’ 숙종 43년 8월 30일)

한편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의 경우, 다른 계층과 마찬가지로 3~4대가 세습하거나 혼맥으로 세력화했던 분위기로 미뤄 보면, 김홍도의 출현은 별종인 셈이다. 집안 내력에 화가로 성장할 배경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김홍도는 현감과 만호를 지낸 증조할아버지 김진창, 군관 출신 할아버지 김수성, 별장을 지낸 외할아버지 문필주 등 전형적인 무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런 측면에서 영조와 정조 시절이 김홍도와 같은 참신한 대가의 출현을 허용한 위대한 시대인 한편, 화가의 길이란 게 천부로 타고나니 자생하기 좋은 영역이란 생각도 든다.

김홍도가 태어나 살았던 세거지(世居地)는 송관자가 밝힌 대로 수표교 남동쪽, 경제력을 갖춘 중인층 마을 하량교 아랫길에 있었다고 여겨진다. 하량교 남쪽은 지금의 청계천 변에서 을지로3가역 사이쯤이다. 회현동 강세황 집이나 을지로입구역 근처에 있었던 도화서가 지근거리다. 걸어서 5~10분 남짓 걸릴 게다. 또 가까운 광통교 주변에는 종이가게 지전(紙廛)과 그림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김홍도가 화가로 성장할 최적의 환경에서 자랐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상업이 발달한 도심 한복판에서 인간의 부대낌을 보며 지냈기에, 당대의 삶을 담은 풍속화에 더욱 관심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예술이란 역시 세속현실, 곧 그 중심인 큰 장터에서 나오는 거 같다.

나는 안기찰방 시절의 단원화첩이 김홍도가 한양, 그것도 청계천 일대 부유한 무관 집안에서 자라 화원이 되고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고 본다. 경기도 안산이 ‘단원 김홍도의 도시’로 지정돼 있는 상황에서 이 부분에 관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태호 명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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