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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08일(金)
권태를 향해 쏴라… 중년의 弓合 활활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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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황학정 활터에서 동호인들이 과녁을 겨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하는 일부터 시작해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심신 수양에 도움이 된다. 신창섭 기자 bluesky@
황학정 국궁동호회

“무엇하러 공기 안 좋은 헬스장 다녀요?, 나이 드신 분들 장수하려면 다 이 활터로 오라고 해요. 내가 이 나이에 이처럼 활을 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다 국궁을 20여 년 전부터 했기 때문이에요. 요즘도 활을 잘 쏘았다는 고구려 건국 왕인 고주몽의 기개를 떠올리며 활을 쏴요.” 서울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의 국궁동호회 회원으로 군 장성 출신인 이동희(86) 옹이 펼치는 국궁 예찬론이다. 황학정은 대한제국 비운의 황제인 고종 황제가 신식무기가 도입된 후 활과 화살이 무기체계에서 배제되자 “우리 민족의 혼과 호국정신이 담긴 활쏘기를 국민 모두 익혀 심신을 단련해야 한다”며 1898년 세운 활터다.

애초에는 경희궁 내 회상전(會祥殿) 담장에 있었는데 1922년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현재 위치인 서울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아래 사직공원 단군성전 인근으로 옮겼다.

현재 황학정 국궁동호회는 2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돼 있는데 회원 300여 명 중 65세 이상이 회원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연로한 회원들 대부분이 전직 고위공무원이나 사업가, 대학교수 등 ‘엘리트층’으로 이뤄져 있다. 최고령자인 이선중 옹은 전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현재 93세다. 여성은 최춘자(83) 할머니의 나이가 제일 많은데 특이한 사실은 전체 남녀 구성비로 보면 여성이 20%로, 젊은 층으로 갈수록 여성 궁사들이 많다.

황학정 동호회는 전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궁도 모임이기도 한다. 고종황제가 만든 활터라는 회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국궁동호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궁은 호흡법과 바른 자세, 활을 당기는 근력 등의 전신운동과 함께 마음 수양까지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주장한다. 황학정의 국궁동호인들이 연로한 이들에게 국궁을 적극 권하는 것도 그처럼 심신 수양에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황학정 국궁동호인인 신동술 국궁전시관장은 “나이 드신 분들이 평소에 운동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활은 허리와 가슴을 쭉 펴고 공기 좋은 곳에서 올바른 자세로 쏘아야 하기 때문에 특히 관절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좋은 운동”이라고 추천했다.

“정신이 산란해지면 과녁에 안 맞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심신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여기에 좋은 공기 마시면서 먼 과녁에 활을 쏘니 눈도 좋아지지요. 연세 드신 분들은 하루라도 활을 안 쏘면 밥맛까지 없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신 관장의 국궁 추천사가 계속 이어졌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은 지난 2014년 서울 종로구에서 황학정 옆에 개관했으며 255㎡ 규모에 모두 5개의 전시관과 체험관으로 구성돼 있다.

황학정에서는 매 주말이면 입문자들에게 교육을 한다. 지난 주말에도 황학정에서는 어김없이 교육이 이뤄졌다. “서서히 당기고-괄약근에 힘줘서-만작(완전히 당김)-발시!” 인왕산 자락에 사범의 지침이 울려 퍼지면 화살이 145m 앞에 놓인 과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국궁은 양궁과 활시위를 당기는 법부터 다르다. 양궁이 중지와 검지를 이용하는 반면 국궁에선 엄지만으로 당긴다. 날아가는 거리도 길어 활쏘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양궁처럼 점수가 세분화돼 있지 않고, 화살이 튕기는 과녁에 맞히기만 하면 성공한 것으로 본다.

특히 양궁은 가늠자가 있어 총처럼 쏘고 화살이 직선으로 날아가며 과녁까지 거리도 30∼90m처럼 짧지만 국궁은 가늠자가 없는 상태에서 포물선을 그리게 해 과녁을 맞히고 과녁까지의 거리도 훨씬 멀다.

이와 관련, 황학정의 우두머리 궁사 격인 조운조(72) 사두는 “국궁을 굳이 비교한다면 골프를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골프도 공을 포물선처럼 날려 정해진 공간에 갖다 놓는 것처럼 국궁도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으로 날아갑니다. 국궁을 심신 단련에 좋다고 하는 이유도, 처음 시위를 당길 때부터 자세를 바로 해야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안 가고 과녁을 맞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서 쏘기 때문에 상체만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골프처럼 전신운동 효과도 크다. 하체가 든든해야 흔들리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활을 쏠 수 있어 상체운동뿐 아니라 하체까지 운동 효과가 크다. 물론 팔 근력 운동도 상당히 된다.

활을 쏘는 순간만큼은 철저히 자신과 진지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사대에서의 양발 위치는 비정비팔(非丁非八)이 돼야 하는데 발의 모양이 과녁과 직각으로 만나는 정(丁)자를 닮은 것도 아닌, 팔(八)자를 닮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발을 그런 모양으로 벌리면 몸이 비스듬하게 과녁을 향하고 자세도 안정된다. 활시위를 놓을 때는 흔들림 없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숨을 쉬느라 가슴으로 활을 건드려서도 안 되고, 시위를 놓을 때 손이 딸려 가도 안 된다. 여기에 머릿속에서 날씨와 바람 방향 등에 관해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한 후 활을 쏘아야 한다.

조 사두는 “한 발을 천금과 같이 여기는 마음, 즉 ‘일시천금’의 마음으로 절제하면서 집중해 쏘아야 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한번 맛을 들이면 손을 놓을 수 없는 것도 바로 국궁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활을 심신 수양의 도구로 활용한 것도 그 때문이다. 활은 고구려 시대부터 전쟁 도구로 활용돼 왔지만, 후대로 넘어오며 우리 선조들은 활쏘기를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도구로 더 많이 썼다고 한다.

특히 성리학이 통치이념이었던 조선 시대에 활쏘기는 심신 수양의 중요한 방편 중 하나였다. 선비가 익혀야 하는 육예(六藝)에도 예법, 음악, 말타기, 글 읽기, 셈하기와 함께 활쏘기가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임금도 활쏘기에 앞장섰다. 성균관 문묘에 가서 제향한 뒤 문무관원이 참가하는 대사례(大射禮)가 열리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 국궁 활을 들면 활시위를 당기는 것도 힘들 정도로 줄에 걸리는 힘의 크기인 장력(張力)이 커야 한다. 전문 궁사들은 장력이 40파운드는 돼야 하는데 빈 활 당기기만 2, 3개월 정도 열심히 해야 그 정도 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15파운드 정도의 장력이 걸리는 활로 4, 5개월 훈련해야 145m 앞의 과녁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다.

그런데 50파운드 넘는 장력의 활시위를 당기는 노인들도 많다고 한다. 화살 무게도 다 다른데 무거운 화살은 7.5돈(28g)까지 나간다. 가벼운 것은 공중에 많이 뜨고, 무거운 화살은 비교적 직선으로 날아간다.

황학정의 동호인들은 날씨만 좋으면 언제든 활터를 찾아 활을 쏠 수 있다. 정기 모임은 매월 초에 여는 ‘삭회(朔晦)’가 있다고 한다. 삭회는 원래 음력 초하루나 그믐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때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으며 특히 활터에서 많이 쓰인다.

예전 활터의 삭회는 일종의 ‘계’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전통 각궁을 장만하자면 쌀 몇 가마의 비용이 들던 시절에 계를 들어 돌아가며 활을 장만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요즘은 매월 회원들이 모여 편을 갈라 기량을 겨루는 ‘편사(便射)’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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