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친했던 韓紙… 태울 때 잡념 끊어야 작품 나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종이, 먹, 그을음 : 그 후’展
갤러리 현대서 여는 김민정 씨

“광주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소의 남은 종이를 자르고 어려서부터 붙이면서 노는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한지, 먹(墨) 그리고 불을 30여 년간 주요 매체로 사용하여 독창적인 작품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김민정(사진) 작가의 ‘종이, 먹, 그을음:그 후’전이 갤러리 현대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업실이 있는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로 출국하기에 앞서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만난 작가는 한지와의 ‘천생연분’을 어린 시절 집안 내력으로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 인쇄소에 쌓여 있던 종이 자투리를 갖고 놀았고 크면서는 당시 남도의 많은 가정의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서예를 익히며 한지를 접했다. 1980년 홍익대 회화과에 입학해서도 3학년 때 전공을 동양화로 선택했다. 199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나면서도 그는 한지를 들고 갔다.

“한지를 택한 건 제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수묵으로 음악의 리듬감을 표현하다가 손으로 그리는 것을 넘어 촛불이나 향불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선에 몸을 맡겼어요.”

그는 전통적인 한국의 미학을 재해석하기 위해 한지를 태우고, 태워낸 한지 조각을 여러 겹 쌓아 붙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감정의 치유와 명상의 과정을 작품에 담아낸다. 작업을 위해 매년 인사동을 찾아 한지만 100㎏ 이상씩 구입한다. 유럽 화단에서는 그의 그림을 한국적 추상인 ‘단색화’의 한 계열로 보기도 한다.

“종이를 태울 때 잡생각을 하면 불이 확 붙어 종이가 타기 쉬워요. 그래서 아예 잡념을 끊어버리는데 그런 상태가 저는 좋아요.” 전시는 10월 8일까지.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