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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13일(水)
셜록홈스 꿈꾸는 전직 경찰서장…“한국도 탐정제 도입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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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상 대한공인탐정연합회 회장이 지난 1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사무실 입구에 걸려있는 탐정 마크 ‘오가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정수상 대한공인탐정연합회 회장

정수상(61) 대한공인탐정연합회 회장의 사무실 탁자에는 만화 ‘명탐정 코난’, 소설 ‘명탐정의 규칙’이 놓여 있었다. 환갑이 넘었지만 정 회장에게 탐정을 다루는 만화와 추리소설은 공인 탐정 제도의 국내 정착을 꿈꾸게 하는 일종의 교과서였다. 지난 1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만난 정 회장은 180㎝가 넘어 보이는 날렵한 몸에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경기 고양경찰서장을 끝으로 퇴직한 베테랑 경찰 출신이다. 정 회장은 현직 경찰 시절 받은 각종 표창장을 가지런히 세워둔 사무실 창가에 서서 탐정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정 회장은 “요즘 잠자는 시간만 빼고 탐정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종일 고민을 계속한다”며 “이제는 국내에도 공인 탐정 제도가 도입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처음 탐정에 관심을 두게 된 건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준비하던 정 회장은 자치경찰제 시행과 맞물려 민간경비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연구했다. 민간 영역에서의 조사·경비 활동을 다루면서 탐정에 대해 알게 됐다.

여기에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의 상황은 탐정이라는 직업에 푹 빠지게 만든 계기가 됐다. 현직 경찰 생활을 하면서도 탐정 제도에 관심을 기울이던 정 회장이 실제로 탐정을 처음 만난 건 은퇴 후 일본에서였다. 지난해 4월 탐정 제도 도입을 위해 연수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100여 명의 탐정을 고용해 도쿄(東京)에 있는 높은 빌딩의 7∼8층 전체를 사무소로 쓰는 기업형 탐정 회사도 보게 됐다. 이 회사는 특별 조사실과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세련된 사무실은 국내의 대형 로펌을 연상시켰고, 직접 만난 ‘명탐정’들은 만화에서 본 것처럼 카리스마가 넘쳤다.

정 회장은 낮에는 연수를 받고 밤에는 일본에서 존경받는 ‘선배 탐정’들을 만나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탐정의 세계에 대해 전해 들으면서 탐정 제도를 한국에 반드시 도입해야겠다는 확신을 더욱 다지게 됐다.

정 회장은 “일본은 과거 메이지(明治) 시대 때부터 시작해 탐정의 역사가 150년이 넘는다”며 “(일본의 탐정은) 기업의 신용을 조사하거나 변호사의 의뢰를 받아 소송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하나의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탐정을 “사실 조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탐정은 직접 법률적인 판단을 하거나 옳고 그름을 정의하진 않지만, 이런 판단에 근거가 되는 사실을 현행법의 테두리 아래에서 수집하고 조사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탐정은 ‘흥신소’ ‘심부름센터’ 등에서 불륜 뒷조사를 하는 불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파헤치는 경찰보다 월등한 해결사로도 비친다.

정 회장은 “대중문화에 비치는 탐정의 모습은 왜곡되었거나 실제와 많이 다르다”며 “탐정은 오히려 기자나 행정사와 비슷한 직업으로, 수사권은 없지만, 합법적인 범위에서 발로 뛰고 사람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탐정 도입을 고민하게 된 건 그의 경력과도 관련이 있다. 1980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순경으로 첫발을 뗀 정 회장은 1년여의 파출소 생활을 한 뒤 정보경찰관으로 경찰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공권력을 활용해 수사를 펼치는 형사들과 달리, 정보관은 치안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민간과 경찰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기도 한다. 정 회장은 “경찰 중에서는 정보관들이 탐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정보 경찰로 오래 활동한 것이 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한국에서 국가 공인 탐정 제도 도입의 장래는 밝은 편이면서도, 해결해야 할 큰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우선 탐정 제도 도입에 정치권과 법조계 등 관련 기관의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래도 정식으로 도입되려면 탐정 활동을 사실상 금지하는 현행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또 하나는 국가 공인 탐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입법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7월 “탐정 제도의 도입을 가로막는 신용정보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현행 신용정보법에선 신용정보회사가 정보원·탐정 등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특정인의 소재·연락처·사생활을 조사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직업적인 탐정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서 받아들여지면 자유업으로서 탐정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여기에 더해 공인 탐정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탐정은 또 하나의 전문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정 회장은 탐정 제도의 도입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탐정 자격시험의 틀과 정보조사를 위한 개론서 집필을 마무리한 상태다. 정 회장은 “(탐정 제도의) 경제적 효과는 2조 원에 달하고 일자리는 1만5000개가 생길 것이란 분석이 있다”며 “일부 변호사 단체가 반대하고 있지만, 탐정 제도가 도입되면 불황에 시달리는 법조 시장도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회장은 탐정 제도 도입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기억 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정 회장은 “충남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과장을 맡던 2002년 관내에서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수사인력의 한계 등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었다”며 “공인 탐정이 있어 조금만 더 파헤칠 여력이 있었다면 억울함을 호소했던 피해자 가족들이 실체적 진실을 밝힐 기회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회고했다.

정 회장이 이 사건을 강조하는 이유는 공권력의 경우 시간과 인력 등에 한계가 있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든 사람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경찰이 종결했거나 사실상 손을 뗀 사건을 탐정이 계속해서 추적한다면 법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또 경찰에 고소·고발되는 사건의 70∼80%는 민사로 분류되는데, 형사 처벌하기 어려운 이런 사건들을 탐정이 맡으면 경찰은 업무 부담을 덜고, 피해자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탐정은 경찰과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고 정 회장은 강조했다.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로펌·언론사·기업의 의뢰를 받은 조사 활동에서부터 사람 찾기, 평판 조사, 물건 찾기, 보험 조사 등 매우 광범위하다. 정 회장은 “지난해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이혼 소송을 위한 뒷조사로 탐정이 주목받은 적이 있지만, 이런 불륜 조사는 탐정이 하는 일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탐정이 정식으로 등장하면 법조계와 기업에 필요한 조사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게 될 것으로 정 회장은 기대하고 있다. 정 회장은 “법조계에선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기관을 찾던 이들이 탐정 사무소를 이용해 더욱 쉽게 법에 호소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법률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한 조사 업무 역시 탐정 회사와의 연계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일부 대기업이 정보 수집을 위해 탐정 업계 진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공인 탐정 제도가 도입되면 경찰관들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은 공무원 조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인원도 많다. 지난해 기준 전국 경찰관은 총 11만2842명이고, 같은 기간 퇴직자 수는 2815명에 달한다. 매년 수많은 경찰이 제복을 벗지만, 현장에서 쌓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정 회장은 “알고 지내던 경찰 선배를 길에서 우연히 뵀는데, 주차 타워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며 “은퇴한 경찰이 30년 이상 일한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수사·정보 전문가인 경찰들의 경력을 생각할 때 국가로서도 손해”라고 꼬집었다. 경찰이 경찰청 수사국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 공인 탐정 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탐정 제도가 도입되면 정 회장은 그동안의 경찰 경력과 연구 경험을 살려 탐정 교육과 관리에 힘쓸 예정이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탐정의 자질은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 집중력과 관찰력, 추리력, 그중에서도 사람의 오감(五感)을 활용해 사실관계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정 회장이 직접 만든 대한공인탐정연합회 로고의 이름을 ‘오가미’로 정한 것도 오감을 이용한 문제 해결 능력이 탐정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일부 법조계에서 우려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경찰과 탐정이 전혀 부닥치지도 않고, 법조계에서도 탐정의 조사 활동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탐정 제도가 우리나라에 정착돼 높은 자질을 갖춘 명탐정들이 하나둘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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