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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19일(火)
‘핵’, 소설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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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장

“남한의 핵무기 개발 참여설은 선생을 아는 모든 물리학자가 부인한다. 이휘소 선생은 소립자 이론 물리학자이지 핵무기 제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재출간된 ‘이휘소 평전’의 한 대목이다. 이휘소 박사의 제자인 저자 강주상은 소설 탓에 스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프로젝트에 참여한 걸로 잘못 알려졌다고 안타까워한다.

그가 언급한 소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993년 출간 이후 650여만 부가 팔렸다는 베스트셀러다. 1970년대 이휘소 박사와 박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남북한이 미국의 견제를 뚫고 공동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일본을 응징한다는 줄거리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에 맞서는 통쾌감 덕분에 대중의 인기를 끌었으나, 현실적인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내용이다.

다만, 박정희가 1970년대에 핵무기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미국이 이를 견제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는 1972년부터 프랑스에서 핵처리시설 기술 도입을 추진했다. 표면적으로는 이 기술을 원자력 발전에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내세웠으나 핵 개발 의도가 있었다. 그즈음 북한이 지대지 미사일 등을 개발하며 군비를 확장하는데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었다. 박정희는 한반도가 베트남처럼 공산화 위기에 처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고, 국방 자강(自强) 대책에 나선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핵 개발 정보를 입수하자 프랑스에 압력을 넣어 기술 인도를 막았다. 또 한국에 차관을 중단하겠다는 등의 위협을 했다. 이때 박정희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해서 “한국은 핵 개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천명했다. 당시 관계자들에 의하면, 아직 핵 개발 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때였다. 그런데 왜 박정희는 비밀리에 추진해야 할 핵 프로젝트 성과를 미국 언론에 과장되게 공개했을까. 주한미군 철수를 억지시키려는 고도의 외교적 전략이었다. 그 결과로 미국은 미군철수 계획을 폐기했고, 한반도를 핵우산으로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이후 한국은 미국의 감시 아래 핵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은 집권을 승인받는 대가로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국방과학연 핵심 인력을 대거 해고해버렸다. 다행인 것은, 그때까지의 연구 성과가 훗날 원자력 선진국이 되는 데 기반 기술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거사는 오늘 북핵 위기 사태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냉엄한 국제 정세의 현실에 강하게 맞서야 얻을 게 생긴다는 것. 한·미 동맹의 군사적 지원을 확고히 만들기 위한 우리의 카드를 준비해가야 한다는 것.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의 주장대로 미국이 동맹 구도를 바꾸지 못하게 할 협상 카드가 있어야 한다.

‘민족끼리’ 감정은, 북핵 앞에서 폐기해야 한다.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환상이 이 사태를 방조했다. ‘미국의 바짓가랑이 아래를 기고 있다’는 유의 자조도 절제해야 한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민족 감정에 기대어 히트했으나, 외교 현실에서 그걸 드러내는 것은 하수에 불과하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여기서 헤쳐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면 그게 또한 뒷세대에 자산이 될 것이다.

jeijei@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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