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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is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0일(水)
조재현 “영화 보면서 울지 않는데 다큐는 눈물… 그만큼 호소력이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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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응접실에서 9년간 이끌어 온 DMZ국제다큐영화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영화제를 통해 “전쟁의 상흔과 갈등뿐 아니라 평화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9년째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재현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죠. 그런데 2년 전부터 ‘이게 가능하구나’‘대중과 소통하는 영화제가 돼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어요. 2014년 우리 영화제에 출품됐던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상영관을 찾아갔던 때예요. 꽤 큰 영화관이었는데, 입장권이 매진돼 그 허다한 객석이 다 찼어요. 관객의 면면도 특정 연령대에 쏠리지 않고 각양각색이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어린 학생부터 중장년, 노인 할 것 없이 웃고 울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게 다큐멘터리의 힘이구나’ 하고 실감했죠.”

조재현(52)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벌써 9년째다. 4년 이상 위원장을 맡아도 장기 집권한다는 소리를 듣는 국내 영화판에서 9년간 줄곧 집행위원장을 맡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조재현의 정체성을 한 가지로 규정하긴 쉽지 않다. 연극배우, 탤런트, 교수, 연출가, 공연제작사 대표, 여기에 수훈이·혜정이 아빠까지…. 다양한 그의 경력 중에 가장 어울리는 옷은 연기자다. 지난 18일 그가 인터뷰 장소로 택한 곳은 경기 고양시에 마련된 ‘DMZ국제다큐영화제’ 사무실이 아닌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극장 ‘수현재’였다. 테라스 너머로 대학로 극장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는 21일부터 28일까지 파주·고양·김포시와 연천군 일대에서 열린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다”고 입을 연 그는 영화제 초창기부터 느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상업영화를 다루는 영화제와 달리 사실적 담론을 담은 진지한 다큐멘터리로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끌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제의 생존 혹은 성공을 위한 과제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9년 동안 영화제의 정체성인 비무장지대(DMZ)가 함축한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DMZ는 남과 북의 분단 지대이지만 평화로 의미를 확장할 수도 있거든요. 전쟁 등의 상흔, 팔레스타인이나 보스니아 내전 같은 전쟁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평화를 얘기하려는 것이어서 이를 중심으로 갈등이나 분쟁 해결을 위한 다양한 주제의식을 담은 국내외 작품이 우리 영화제에 출품됐습니다.”

지난 9년 동안 DMZ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국내외 작품은 총 6266편. 이 중 923편이 상영작으로 선정돼 관객을 만났다.

영화제가 출품한 작품 중에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작품도 여럿 있다. 지난해 영화제 상영작 ‘앙뚜’는 올해 초 제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인도 라다크 사원에서 버림받은 린포체가 자신을 돌봐준 노스승과 함께 전생에 머물던 사원을 찾아 티베트로 떠나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영화 속에 담긴 평화와 희망에 대한 메시지가 호평을 받았다. 이승준 감독이 연출한 ‘달팽이의 별’은 2011년 열린 제24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장편 부문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결실은 영화제의 제작지원 사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영화제는 지금까지 총 95편의 다큐멘터리에 20억3700만 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21편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26개국에서 159편의 작품이 출품돼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제작지원 공모에 여러 국가와 많은 작품이 지원한 것은 DMZ국제다큐영화제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아우르는 다큐멘터리 제작 플랫폼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제를 맡으면서 직접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식 트레일러 2편이 그의 연출로 태어났다. 제5회 영화제의 트레일러인 ‘김성수 할아버지의 어느 특별한 날’은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출품돼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이 작품 얘기를 꺼내자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메이킹 필름(making film·제작 영상)을 보여주며 당시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섭외했어요. 해병대 출신이고, 6·25전쟁에 참전한 분이셨어요. 서울 충무로에서 폐품 줍는 모습을 촬영하는 일정이었는데 오전 촬영 후 할아버지와 해장국을 먹으면서 할머니 얘기를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이북의 황해도 출신이라 불쌍하다며 우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자리에서 사모님을 섭외해서 영상을 찍었죠. 짧은 시간 동안 순발력 있게 기획해서 만든 작품이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2014년 제6회 영화제 트레일러 영상은 프랑스 파리에서 촬영했다. 짧은 머리의 벙벙한 한 여성이 러닝셔츠 한 장만 걸친 채 폐허 속에서 헤매다 비행기 소음을 듣고 놀라 뛰쳐나가는 장면을 담고 있는 50초짜리 영상이다. 전쟁 트라우마를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원래 전수일 감독이 찍어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어렵다고 해서 내가 찍게 됐죠.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은 재불 과학자협회 회원인데 전 감독의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로 했던 분이거든요. 그 자리에서 바로 섭외해서 제 러닝셔츠를 입히고 4시간 만에 영상을 다 찍었어요. 때마침 공항 옆에 폐허가 된 건물이 있었고, 비행기도 자주 떠서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연출이 이뤄졌죠.”

상업 영화나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낸 ‘연기 잘하는 배우’로서 대중에 익숙한 그에게 다큐멘터리란 어떤 의미일까? 집행위원장을 맡기 전에도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었느냐고 묻자 “전문적인 것은 많이 못 보고, TV에서 자연이나 동물, 사람 이야기를 다룬 방송 다큐멘터리는 즐겨 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자가 소 잡아먹는 건 꼭 챙겨본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문(愚問)에 우답(愚答)이 돌아온 셈이다.

하지만 곧바로 현답(賢答)이 날아왔다. “다큐멘터리에는 실체적 진실이 담겨야 한다고 봐요. 다큐멘터리 속 영상은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죠. 엄밀히 만드는 사람의 주관적인 견해를 담고 있다고 봐야죠.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주관에 의존하겠지만 이를 모색하는 과정은 객관을 유지해야 해요. 용산 철거민 문제를 다룬 ‘두 개의 문’이란 작품이 있었어요.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에는 내용이 철거민 쪽에 기울어 있었죠. 그리고 1년 후에 대중과 다시 만났을 때는 영상이 달라졌어요. 영상에 경찰 입장이 반영된 거예요. 억울하게 망루에서 죽은 희생자 사연을 풀어가는 과정이 객관적일 때 더 호소력이 생긴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  조재현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이 18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수현재씨어터’ 옥상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올라 바깥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다큐멘터리의 강한 호소력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준 것 같았다. “제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운 적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다큐멘터리 보면서 운 적은 많아요. 그만큼 다큐멘터리에 감정 이입이 잘 되고 있다는 거죠.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의 입장이 돼보면 전혀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 수 있어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도 여러 감정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교과서가 되는 거죠. 연기는 일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의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극한 환경에 처한 캐릭터들은 모두 유심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성신여대와 경성대 등지에서 ‘다큐멘터리와 연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뒤 작품 속 등장 인물을 연기로 구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창작 실험이다. “한번은 ‘소피와 수진 사이’란 작품으로 수업을 했어요. 주인공이 입양아인데 프랑스 이름은 소피이고, 한국 이름은 수진이거든요. 5세 때 입양되고, 27세가 되면서 한국에 돌아와 친아버지를 만나는 내용이에요. 한 수강생에게 수진이가 돼서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독백으로 시연해보라고 시켰더니 대사도 못 할 정도로 울어서 연기를 중단시켰던 적이 있어요. 학생들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울 때도 많아요.”

조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선진국보다 현저히 좁은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 저변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실력을 인정받을 만한 제작자가 많지만, 여전히 대중의 관심은 저조한 탓이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관람한 트라이베카 영화제를 방문한 소감을 털어놓았다.

“딸의 대학 졸업식 참석차 미국에 갔는데 마침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열리고 있었어요. 9·11 테러 당시 뉴욕 시민들의 사기가 위축된 것을 안타까워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지역에 활기를 되찾자는 취지로 시작한 영화제거든요. 홍보 플래카드 하나 붙이지 않았는데도 관객이 모이더라고요. 한 상영관에서는 치매에 걸린 한 여배우가 자신의 집 1층 레스토랑에서 원맨쇼를 하는 모습을 찍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객석이 꽉 들어찬 것을 보고 참 부러웠어요.”

영화제 주최 측은 다큐멘터리 향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상영회를 열고 있다. 경기 고양·파주·부천·의정부 등 4개 지역의 극장에서 매월 한 차례씩 열리는 정기상영회와 개봉을 앞둔 영화제 상영작이나 제작지원작을 보여주는 특별상영회, 기획상영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그는 내년 영화제 10회를 맞아 북한 평양에서 영화제를 열고 싶다는 희망 사항도 밝혔다. 물론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당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예전에도 개성공단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당시에도 남북 교류가 경색된 시점이어서 성사되진 못했어요. 내년에는 북한 민간단체와 함께 평양에서 영화제를 열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경로로 찾고 있어요. 현 시국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시기상조란 생각도 들고 실현이 어렵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문화 교류에는 장벽이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2009년 DMZ국제다큐영화제 첫 집행위원장으로 그를 발탁한 것은 새로 출범하는 영화제의 간판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배우를 내세운 스타 마케팅이란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지만 이런 마케팅 차원의 선택이 조 위원장에게 독이 돼 영화제 얼굴 간판 역할만 하다 조기 퇴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정권이 바뀌면 문화계 권력이 완전히 교체될 정도로 정치 바람을 심하게 타는 문화계에서 그는 9년간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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