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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0일(水)
나약과 방심의 처절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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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국제부장

‘꽃은 퇴색하고 불도 꺼졌네. 마당엔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아, 찾아오는 사람은 없고, 기다립시다. 언제까지나….’

자 통드레이(J’attendrai·기다립시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샹송이다. 이탈리아 노래였지만 루이 포트라가 가사를 붙였다. 독일의 프랑스 침공 하루 전인 1940년 5월 9일, 파리의 카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아련한 낭만이 거리를 적셨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원한 국제 질서는 없다. 대국들은 국익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그래서 존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론은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유효한 틀로 여전히 자리 잡는다. 그는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2004년)에서 국가가 살아남는 원천은 무력, 즉 힘밖에 없다고 서술했다. 패권 역시 무력의 크기에서 나온다. 미어샤이머의 논리를 따르면 분쟁과 갈등을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 상위기구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수사로 가득 찬 이상적 관념의 무대일 뿐이다.

72차 유엔총회에는 3명의 새로운 주요 국가 지도자가 데뷔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프랑스의 떠오르는 신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그리고 북한의 핵 위협 대상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기조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주권국가들이 그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 파괴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글로벌 위협 국가에 대한 공동대응도 역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키 플레이어 역할을 했던 프랑스의 부활을 선언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마크롱은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프랑스의 위상을 재건할 기회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유엔총회는 국제질서가 새로운 지경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연설은 미국이 모든 국제 현안에서 공통된 가이드 라인을 더 이상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핵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과 자국 이익 추구의 권리는 뒤집어 보면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행보를 취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 현실을 정당화시키는 위험한 근거 요인을 갖고 있다. 국제질서는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미어샤이머의 이론이 휴지통에 처박히지 않는 이유인 셈이다.

독일 침공 엿새 만인 5월 16일 프랑스 외무성 앞마당은 외교 기밀 서류를 불태우는 연기로 자욱했다. 모리스 가믈랭 합참의장은 밀려오는 독일의 기갑 탱크를 고개를 저으면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봤다. 파리는 미국의 참전으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나약과 방심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의 최대 협력국이다. 북한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면 지금의 ‘글로벌 위협’ 비판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통일대전에 나선다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날이 못 올 것도 없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기다리면서 인도적 지원을 외치는 대한민국이 그때도 유엔 회원국일지는 의문이다.

jklee@
e-mail 이제교 기자 / 국제부 / 부장 이제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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