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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2일(金)
왕과 어우동 ‘밀회 계곡’… 흘러가버린 32년전 촬영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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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우동’의 촬영지인 충북 단양 선암 계곡.

▲  아이를 못 낳아 소박맞은 후 기생이 돼 양반들을 농락하는 어우동이 왕과 밀회를 나누는 장면이 촬영됐다.

(95) 영화 ‘어우동’ 감독 이장호가 찾은 촬영지 ‘충북 단양’

32년 전 내 나이 마흔한 살의 기억이 이렇게 까마득한 줄 모르고 살다가 영화 ‘어우동’ 촬영지에 대해 기억해내려니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촬영했는지가 아련하다.

지난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참석한 김에 충북 제천과 가까운 단양을 직접 찾아갔다. ‘어우동’ 촬영지를 둘러보고, 사진까지 찍어볼 요량으로 어느 한가한 오후에 혼자 차를 몰고 단양에 갔다. 요즘은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 모르는 길도 쉽게 찾아간다. 먼저 목적지를 단양팔경 어디쯤 아닐까 생각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그중 낯익은 지명이 도담3봉과 선암계곡 등 2곳이었다. 하지만 도담3봉은 사진을 보니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선암계곡이었다. 선암계곡을 집중 탐색해 볼 생각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정하고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혼자 두메산골로 가는 길은 왠지 외로움이 가득해 그리운 추억이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옛 추억은 그리움처럼 슬픔처럼 가슴을 촉촉하게 젖게 했는데 그만큼 내가 많이 늙어서 그런가. 아니면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데 추억만 자꾸 또렷해지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단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왼쪽 차창으로 계곡이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우선 찾기 쉬운 목표로 넓이가 20평 이상은 되었을 아주 넓고 평평한 암반 위에서 양반들의 풍류 놀이를 촬영했던 그 장소를 떠올렸다.

금세 찾을 것 같았지만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라고 쓰인 도로 안내 표지판이 나타났다. 아마도 중선암일 듯싶었다. 다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중선암으로 지정하고, 눈에 익은 풍경을 발견하기 위해 긴장하면서 천천히 계곡을 누빈다. 마침내 어렴풋이 전에 보았던 것 같은 길가의 풍광이 서늘하게 펼쳐지며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아 찾았다’ 하는 순간, 32년 전 그 여름 계곡 옆 하얀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왈칵 반가움이 자리 잡기 전에 어쩐지 썰렁한 풍광이 낯설게 다가왔다. 틀림없는 그 산장인데 주변 분위기가 다르다. 그 시절의 산장은 외따로 떨어져 숨어 있었는데 지금은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들어섰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웬걸, 계곡은 유원지로 변해 출렁다리까지 가로지르고 있었고, 내 비밀스러운 추억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가슴이 아팠다. 갑자기 내 일기장이 길에 떨어져 이 사람 저 사람,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읽히는 구경거리가 된 것처럼 수치심이 일어났다.

▲  32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이 영화 연출자 이장호 감독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원지로 변한 촬영지를 바라보며 “추억이 산산조각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아침에 산장에서 일어나면 그 싱싱한 계곡의 물소리와 시원한 공기를 즐거워하며 돌계단을 내려와 물가에서 유영하는 송사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차가운 물을 떠서 얼굴을 씻던 나만의 장소는 32년의 세월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대낮부터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좌판이 그곳까지 내려와 내 추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을 피해 그 원망스러운 출렁다리를 통해 계곡 건너편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 산자락은 숲이 무성해 그 속에 천민들의 집단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많은 움막과 오두막을 설치했던 기억이 떠올랐으나 정확한 장소를 찾지는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어우동과 성종의 밀회 장면을 촬영했던 바위가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려 했으나 여기저기 산책길을 만들어놓은 탓에 숲속을 뒤질 마음이 이미 사라져 포기하고 말았다.

‘어우동’은 1985년에 개봉했지만 사실 1982년에 처음 촬영을 했던 복잡한 사연이 있다. 첫 제작은 현진영화사에서 시작됐다.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이 영화 연출을 내게 맡겼고, 나는 오디션을 통해 신인 배우 이보희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내게 자신의 부인인 배우 정희에게 주연을 맡기면 어떻겠느냐는 암시를 줬다. 내가 그걸 무시하고 이보희를 기용해 첫 촬영을 하고 왔는데 김 사장이 러쉬필름(제작진이 참고하기 위해 당일 촬영한 필름을 바로 현상한 것) 시사회에서 “이거 포기해야겠어”라고 말했고, 결국 제작이 무산됐다.

나는 화가 치밀어 장선우 등 조감독들을 데리고 여주 신륵사에 가서 며칠 동안 술을 퍼마셨다. 그러고 있는데 김 사장이 연락을 했다. 청산리 전투를 영화로 만들자며 나를 달랬다. 그래서 ‘일송정 푸른 솔을’(1983년)을 만들게 됐고, 이보희를 조연으로 썼다. 그 후 이보희를 주연으로 내세워 ‘무릎과 무릎 사이’(1984년)를 찍었고, 이 영화가 성공하자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이 “에로틱한 영화 한 편 더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이 사장이 현진영화사에서 판권을 사와 다시 ‘어우동’을 만들게 됐고, 이보희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태흥영화사는 ‘어우동’ 제작비로 약 1억8000만 원을 썼다. 1년에 100억 원대 제작비를 투입하는 영화가 여러 편 나오는 지금의 상황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당시에는 영화 두 편을 만들고도 남을 큰 액수였다.

의상 제작비에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갔다. 사극에는 보조 출연자가 많이 출연하는데 그들에게 입힐 의상비가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걸 새로 만들려면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대개 이미 만들어진 옷을 입혔다. 그러다 보니 시대별로 달라지는 의상을 반영할 수 없었고, 고증을 무시한 채 조선 후기 옷으로 통일했다. ‘어우동’은 조선 초기 성종 대가 배경인 영화이기 때문에 후기 의상을 입힐 수 없었다. 내가 고심을 하자 이 사장이 “옷을 새로 제작해 제대로 만들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줬다. 그때까지는 조선 의상은 모두 흰옷이었는데 갈잎을 물들인 옷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극 의상의 혁신을 이뤘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보희와도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어우동이 전라로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파격적인 노출 신이라 이보희가 망설였다. 여배우에게 민감한 장면을 강압적으로 찍을 수는 없는 일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현장을 보니 필요한 소도구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걸 트집 잡아 조감독에게 호통을 치며 “이래서 영화 찍을 수 있겠어”라고 오버해서 화를 내고는 단양 현장을 떠나 혼자 경북 풍기로 갔다.

감독 증발 사건은 태흥영화사로 보고됐고, 하루 자고 나니 사방을 수배하던 조감독이 나를 찾아왔다. 못 이기는 척 다시 현장에 가서 서먹해 하는 이보희에게 “이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간곡히 말하자 비로소 이보희가 촬영에 응했다. 다행히도 완성본을 본 이보희가 만족감을 나타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배우다.

이런저런 추억에 젖어 촬영 현장을 둘러보다 문득 당시 겪었던 난센스 일화가 떠올라 그 장소를 찾아봤다. 촬영이 이어지던 어느 날 밤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나 산장 밖으로 나갔다. 방문을 열고 나가 난간이 있는 복도를 지나면 바로 산자락 숲이 맞닿아 있는데 그곳에 서서 숲을 향해 일을 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10여 미터 떨어진 소나무에 소복을 입은 여자가 목을 매고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내일 아침이면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가 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우선은 조용히 밤을 지내자고 급히 방으로 돌아와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나는 의아해 어젯밤의 모습을 확인하려고 숲을 보았으나 전혀 시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만 나를 비웃듯 평온하게 서 있었다. 일단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밤에도 똑같은 모습이 또 보였다.

나는 귀신이 내 눈에만 보인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났고, 자고 있던 조감독을 깨워 확인시켰다. 다행히 내 눈에만 보이는 환상은 아니었다. 조감독과 함께 시체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간 순간 자살한 여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나나 조감독이나 그저 빛의 환영을 본 것이었다. 산장 정원에 밤새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이 숲 속 나무 그림자와 교묘하게 어울려 만든 속임수에 내가 헛것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었다. 내친김에 그 장소도 찾아봤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그냥 싱거운 추억으로 넘겼다.

그날 내가 ‘어우동’을 촬영했던 그 원시적 자연 풍광이 그대로 있고, 도하산장이 외로운 모습 그대로 숨어 있었더라면 나는 펑펑 울면서 그때를 돌아봤을 거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추억의 잔인함에 배신당한 일흔세 살 노인의 비참한 모습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 기분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를 운전해 제천으로 향했다. 조금 달리니 늘어졌던 기분이 나아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노감독을 반겨줄 새로운 젊은 친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무영·봉만대 감독, 그리고 배우 오광록을 만나려는 기대로 설레는 건강한 이장호로 바뀌고 있었다.

이장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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