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치화한 司法은 진정한 法治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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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헌법학

어제 21일 여러 가지로 논란과 반대가 많았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가 국회의 임명동의를 얻었다. 대통령의 임명 수순에 따라 곧 대법원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논란과 반대의 이유는 현 진보 정권의 코드인사, 그리고 사법계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기수(期數)나 대법관 경력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라는 점에 모아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리는 대한민국의 기초인 법치주의를 지켜나갈 사법부의 수장이자 한국 역사를 쓰는 위치에 서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기본적으로 그는 법률가로서의 교육·훈련과 법조(판사)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과거 독재시대에 내려진 대법원 사형확정 판결들이 줄줄이 재심 판결로 파기·무효화된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번 코드인사는 코드 판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The Rule of Law·법의 지배)의 기초 위에 세워진 나라다. 법치주의에서의 법은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자(대통령·행정부)를 규율·통제한다는 점과, 무엇이 법인지는 독립한 사법부가 판단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점들은 자유민주국가의 권력분립, 사법권 독립 및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내재해 있다. 독재국가에서도 효율적 독재를 위해 법치를 중시한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법치는 정치(권력자)의 수단일 뿐 정치로부터의 사법권 독립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들의 법치는 법의 지배가 아니고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일 뿐이다.

법치주의는 정치공동체(민주공화국) 구성원(시민)들에게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주는 기능을 한다. 정치적 자의(恣意) 대신 법이 주는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때문에 시민은 자유를 누리며 안심하고 투자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전제조건이 된다. 이같이 국민에게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주는 법은 본질적으로 전통과 선례나 관례를 중시하는 속성을 지닌다. 법은 지키는 것이 속성인 까닭에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법은 정치를 포함한 인간사에서 원리·원칙을 지키게 만든다. 법이 정치적 편의나 경제적 이익 또는 인맥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것은 바로 범죄(뇌물죄, 권력남용 등)가 되거나 원리·원칙에 어긋나고 윤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그것은 법도 아니다.

한 지방법원 판사의 “재판이 곧 정치”라는 공개 발언이 논란을 야기했다. 재판이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만큼 일정한 정치적 의미를 띨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관찰과 재판을 통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Rule by Law)은 전혀 차원이 다른 말이다. 사법권 독립의 본질은 법 자체의 독립에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속에서 법을 발견·견지해 내는 교육은 법률가 양성교육·훈련·법조경력의 기초다. 재판과 정치의 혼동은 법관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대법원장은 최종심을 담당하는 대법원 수장으로서의 권한뿐만 아니라, 다른 대법관에 대한 제청권, 전국의 법관 임명권, 법원행정권,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 중앙선거관리위원 지명권 등을 통해 나라 전체의 법의 선언·집행에 이르는 막강한 법 관련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선다. 이 위치는 대한민국 정부를 구성하는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뤄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위치다. 장차 코드 정치의 일익을 담당할지 법치주의의 심화(深化)와 우리나라 발전의 일익을 담당할지는 역사가 똑똑히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