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장 10일에 달하는 이번 추석 연휴에는 과거 어느 명절 때보다도 가족·친지들 간에 ‘정치 토크’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고 진단한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가족·친지들이 서로 얼굴을 붉힌 채 헤어지는 사태를 피하려면 역지사지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5월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열린 한 대선 후보의 유세 현장에 모인 다양한 세대 시민들의 모습이다. 자료사진
지난 대선때 文대통령 득표율
부산·울산서 1위 대표적 사례
세대별 대결은 더욱 선명해져
청년층 실업률과 노인 빈곤율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며 대립
최순실 사태로 견해차 극대화
北核 안보 이슈에 복지확대 등
시각차 큰 사안 많은 상황에서
가족內 세대갈등부터 해결해야
올 추석 상을 맞댄 가족 사이 ‘정치 토크’는 여느 명절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지형의 압도적 변수였던 ‘지역 구도’가 ‘세대 구도’의 거센 도전에 휘청거렸던 지난 5·9대선 이후 처음 맞는 명절인 데다 연휴 기간이 10일에 달해 2∼3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80%대의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던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 이후 지지율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초반을 평가할 수 있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 토크의 주제도 풍부하다. 더구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등과 관련한 외교·안보 이슈나 소득주도성장론과 복지확대 등의 경제·사회 이슈는 세대 간 견해가 뚜렷한 현안들이다. 그러나 세대갈등을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논리를 벗어나 가정에서부터 세대 간에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인정하고 타협을 이뤄내면 가족 간 소통을 복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역 구도’ 대신 ‘세대 구도’=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좌우해온 ‘지역 구도’가 ‘세대 구도’로 대체되는 경향은 각종 지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19대 대선에서 진보 주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 정당의 우세 지역인 부산·경남(PK)에서 거둔 높은 득표율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은 부산과 울산에서 각각 38.7%와 38.1%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경남(36.7%)에선 2위였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차이는 0.51%포인트인 1만1000여 표에 불과했다. 18대 대선 당시 부산과 경남, 울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대 문 대통령의 득표율이 각각 59.8% 대 39.9%, 63.1% 대 36.3%, 59.8% 대 39.8%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대선에서 보수 정당을 향한 표 쏠림 현상이 상당 부문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세대 구도는 더욱 뚜렷해졌다. 19대 대선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를 보면 20∼30대에서 8%대로 한 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한 홍 후보 지지율은 40대에서 11.5%, 50대 26.8%를 나타내다가 60대에서 45.8%, 70대 이상에서 50.9%로 급상승했다. 반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20대(47.6%), 30대(56.9%), 40대(52.4%)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60대(24.5%), 70대 이상(22.3%)에서 크게 떨어졌다.
진보 후보에 대한 젊은 층의 선호에도 불구, 18대 대선 출구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20대와 30대에서 33% 이상 지지율을 기록한 것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제1 보수 정당 후보에 대한 젊은 층의 전례 없는 반감이 이번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정치 영역에서 확장된 경제적 세대 갈등= 정치권에서 세대 변수의 부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올 것이 왔다’는 해석을 내놨다. 경제적 소외 감정에서 비롯한 세대 대결이 대통령 탄핵 등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가치관 갈등으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청년층 실업률 상승 폭과 노인 빈곤율이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기성세대에게는 압축 성장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젊은 세대에게는 이들과 벌여야 하는 일자리 경쟁이 원망으로 작용해 서로 대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청년들이 기성세대 때문에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며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정치적 이념보다 경제적 실리에 가치관의 무게를 두는 만큼 세대 갈등 위험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정치 현안은 이 같은 잠재적 세대 갈등을 수면 위로 부상시켰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 경향성을 전례 없이 분출시킨 사건”이라며 “세대 간 정치적 입장 차이가 대통령 탄핵 국면만큼 명확히 드러난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판결 직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탄핵 인용에 대한 찬성 대 반대 응답이 20대에서 92% 대 5%를 기록한 반면 60세 이상에선 50% 대 39%를 나타내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세대 갈등 활용에 골몰하는 정치권= 세대 간 대립을 부채질한 것은 역시 정치권이었다. 20∼30대가 주축을 이룬 촛불집회엔 진보 정치인들이 수시로 얼굴을 비쳤고 60대 이상이 주류를 형성한 태극기집회에서는 보수 정당이 주도권을 잡았다. 대선을 앞두고 선거 연령 하향, 공직자 연령 제한, 공공 일자리 늘리기 등 젊은 세대를 겨냥한 공약이 쏟아지기도 했다. 정 교수는 “가치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세대 대결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지역주의를 대체할 만한 새 지지 프레임을 만들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세대 갈등의 심화 현상이 현재 진행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화 세대가 부정당하는 기류 속에 기성세대의 결집 여지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수 노년층의 소외감은 대선 이후 문 대통령의 고공 지지율을 바라보면서 확대됐고 북핵 위기로 인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젊은 층에선 ‘틀딱’(틀니를 딱딱거린다는 의미)이라는 노인 비하 신조어가 나타날 만큼 노인 혐오가 빈번해졌다.
세대 간 대립 골이 깊어질수록 정치권은 세대 가르기 전략에 더 큰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북 문제 등과 관련,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데서 세대 결집을 유도하려는 정치권의 행보가 읽힌다”며 “상대 진영에서도 정치적 생존을 위해 세대를 앞세워 맞대응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세대 갈등 완화의 해결책으로는 안정적인 경제 성장이 우선 꼽히지만, 차선책으로 공동체 복원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 교수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회에선 세대 간 오해가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며 “경제 활성화가 당장 쉽지 않다면 가족 또는 지역 공동체의 소통 활성화에 정책 역량을 투입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근평·송유근 기자 istandby4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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