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오랑캐에 조아린 인조에게서 우리들 아버지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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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개봉 앞둔 영화 ‘남한산성’ 원작자 김훈 소설가

“패배와 치욕에서 돋아나는 희망과 미래를 봤으면….”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 소설가인 김훈(69·사진)이 만족스러운 관람평을 전했다.

김 작가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남한산성’ GV(관객과의 대화) 시사회에 참석해 “영화는 감독과 연기자의 것이고 저의 것은 아니지만, 소설로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영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평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침략을 피해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대한 외세의 침입에 속절없이 남한산성으로 내몰린 조선의 조정(朝廷)은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로 나뉘어 언쟁만 일삼다가 나라와 백성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렸다. 결국, 전쟁에 패함으로써 인조는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3배9고두(三拜九叩頭)하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치욕적인 역사를 소재로 해 2007년 출간된 소설 ‘남한산성’은 지난 10년간 6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김 작가는 “‘삼전도의 굴욕’은 살기 위해 치욕을 견뎌야 하는 인간의 비루함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며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에게서 우리들의 아버지를 봤다. 인조가 성문을 나와 청군이 주둔해 있는 삼전도로 투항하러 내려갈 때 ‘저 임금이 비로소 만백성의 아버지가 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이었다”면서 “악과 그것에 짓밟히고 저항하고 신음하면서 또 앞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난과 슬픔을 묘사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영화의 제작에는 김훈 작가의 딸인 김지연 이든픽쳐스 대표가 참여했다. 김 대표는 부친의 작품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작가는 “작품 뒤에 감춰둔 메시지를 황동혁 감독이 잘 끌어내 언어화했다. 결국엔 ‘들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를 통해 내 문장이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실존적인 삶과 피와 영혼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도입 부분을 꼽았다. 그는 “척화파인 김상헌이 사공을 죽이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얼어붙은 산하를 보여줬는데 뜨겁고 격정적인 것들을 냉엄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살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에선 김윤석이 김상헌 역을, 이병헌이 주화파인 최명길 역을 맡아 열연했다. 전쟁 신도 장대하지만 인조를 사이에 두고 두 신하가 논쟁을 벌이는 대목은 칼과 창으로 이뤄진 전쟁 장면 이상의 비장미와 긴장감을 안겨준다.

황동혁 감독은 “영화 속 상황이 지금 우리의 상황과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영화는 재미로 먼저 존재해야 하지만, 그와 함께 380년 전 위정자들과 민초들이 겪었던 일을 통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