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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8일(木)
‘청산의 악순환’ 이젠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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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정치학

여야가 전전(前前) 정권의 과거 파헤치기로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이명박(MB)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 공영방송 장악 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 행위이며, 이를 지시한 MB는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이명박 죽이기’를 위한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왜 정권이 교체되기만 하면 이런 정치 갈등이 반복되는 것일까? 정권 교체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국정원, 검찰 등 국가 권력기관을 끌어들여 상대 진영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2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만났다. MB는 “노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에도 정책을 비판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직에 대한 권위와 신뢰를 지키는 데는 도움을 드리겠다”고 했다. 또한, “후임자가 전임자를 예우하고 잘 모시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 인해 친노 세력은 MB가 정치 보복으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굳게 믿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가 아는 최대 정치 보복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했던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 제90조 1항에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제2항에는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고 규정돼 있다. 만약, MB가 이런 헌법 정신을 따랐다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핵탄두의 경령화·소형화·다종화·표준화·양산화에 큰 진전을 이뤘다.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구도가 계속되면서 한반도 10월 위기설까지 떠돌고 있다. 이런 초(超)안보위기 상황에서 정치권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을 둘러싸고 프레임 전쟁을 벌이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한국 정치에는 상호 존중·책임·민생, 그리고 미래가 없다. 이 때문에 국민이 정치를 혐오하고 불신한다.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으로 서로 다른 인종들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무지개 국가를 건설했다. 그는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탄압받았던 흑인들이 백인 압제자들을 용서하도록 설득했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결성해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진영 논리에 빠져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만델라가 보여준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다.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經世遺表)’라는 거대한 국가 개혁론을 발표한 지 200주년이다. 다산은 개혁의 으뜸으로 ‘사유(思惟)체계의 변화’를 지적했다. 추상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생각이 바뀌어야 세상도 정치도 바뀐다. 분노만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미래 비전 없이 과거만 파헤치는 것은 극단의 정치를 잉태할 뿐이다. 과거 적폐에 대한 반성 없이 무조건 정치 보복으로 몰고 가는 건 무책임의 극치다.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 하지만 정치보복은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론몰이식 과거 정권 파헤치기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에 입각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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