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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09월 29일(金)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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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삼국시대에 세 나라가 모두 추석을 지냈지만, 원래 그 기원은 신라의 ‘가배’로 본다. 장보고가 당나라의 적산에 세운 신라인 사찰인 법화원에 머물렀던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박돈과 병식 등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여 8월 15일 명절을 보낸다”든지, “이 명절은 다른 나라에는 없으며 오직 신라에만 있다”는 기록이 있다. ‘박돈’은 지금의 국수, ‘병식’은 떡을 말한다. 밀 농사가 적어서였는지, 당시 국수는 추석에나 먹을 수 있는 특별식이었다. 불교가 압도했던 고려 때도 추석에 왕이 직접 궁궐에서 제를 올렸을 뿐 아니라 서민들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그때도 국수는 고위관료만 추석 제사에 쓸 수 있었다는 게 재미있다. 공양왕이 “1품에서 6품까지만 제사에 국수를 사용하고, 아래는 안 된다”고 제사의례를 공포한 기록이 있다. 그렇다 해도 햇곡식을 거둬들인 뒤의 추석은 민중에게도 항시 풍족한 음식을 나누고 즐기는 축제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추석제’(秋夕祭)란 단어가 실록이 시작된 태종 이래로 수없이 나온다.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되면서 이전 시대 풍속을 상당히 금했지만, 추석만큼은 임금이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등에 나가 친히 제사를 올렸다. 추석에 궁궐에서 음악을 사용하느니, 마느니로 대신들끼리 논쟁을 벌인 기록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어쨌든 흥겨운 날이었음이 틀림없다.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 한양의 세시 풍속을 모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추석에 아무리 궁벽한 집이라도 으레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먹는다. 안주나 과일도 분수에 넘치게 가득 차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구절이 나온다. 조상 대대로 추석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한 문구다.

일제강점기가 한반도 역사에서 추석 분위기가 쇠했던 유일한 시기였을지 모른다. 1923년 9월 26일 자 동아일보는 ‘추석 명절을 부흥하라’는 사설을 이례적으로 1면 톱에 실었다. 추석 다음 날이었다. 짐작건대 3·1운동 이후 일제의 더욱 교묘해진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그해 추석이 명절 분위기 없이 암울하게 지난 듯하다. 그런 울분을 쏟아낸 사설은 “어찌하여 풍성해야 할 민중적 명절인 추석이 이렇게도 쓸쓸할 뿐이오, 20년 이래로 점점 쇠퇴하여 형해(形骸)만 남고 말았다”며 일제 강점 20여 년을 탄식하고 있다. 말미에 “저상(沮喪)한 민기(民氣)를 흥분(興奮)하고 삭막한 우리의 생활을 환락(歡樂)하게 하기 위해, 학교에서도 휴가를 주고 지방청년회에서 명절놀이를 고안해도 좋을 것이다”라며 은근히 학생·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자극한다. 근 100년 전 추석이 민중 사이에 어떤 위상이었는지 보여준다.

열흘간 이어지는 황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인천공항이 이번 주 중반부터 북새통이었다. 휴일의 도심 놀이공원처럼 공항이 붐볐다고 한다. 이번 연휴에 인천공항 이용객이 역대 최다인 195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핵 위협으로 여느 해보다 한반도 긴장이 높은 가운데 추석을 맞지만, 별달리 영향은 찾아보기 어려운 듯싶다. 원래 가무를 즐기는 유전자를 이어받은 민족답게 모두 풍성한 추석을 맞으시길 바란다.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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