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가장 큰 ‘버그’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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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다시 묻다’ 책 펴낸 철학자 김재인

각종 우울한 전망 쏟아지지만
결국 알고리즘 짜는 건 ‘인간’

인간지능, 몸 - 마음 상호작용
AI가 마음의 기능 구현한다?
상상서나 가능하니 안심하길

“자율주행 자동차 교통망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인간 운전자입니다. 인간은 보복운전이나 경쟁운전처럼 시스템의 제어 범위를 벗어난 돌발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요. 네트워크 컴퓨터도 인간이란 버그가 끊임없이 출몰해서 고장 내는 막장 시스템이죠. 인간을 사유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말할 수 있을까요?” 국가적 과제로 떠들썩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정작 인공지능과 뗄 수 없는 인간지능(human intelligence), 곧 ‘마음’과 상호 관련된 국내 연구는 찾기가 쉽지 않다. 과학과 철학을 가로지르는 연구자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질 들뢰즈의 연구 및 번역으로 이름이 난 철학자 김재인(사진) 씨가 그러한 저작을 내놨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이다. 김 씨는 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에서 지난 7학기 동안 강의해온 교양과목 ‘컴퓨터와 마음’ 강의록에 바탕을 둬 책을 썼다”며 “책이 나오자마자 공학자, 정보기술(IT) 종사자, 관련 기업에서 먼저 책에 관심을 보이고 강의 요청을 해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AI시대를 말하지만, 정작 관련분야에서는 거시적이고 바탕이 되는 철학적 질문에 목말랐던 때문으로 보인다.

김 씨는 학부에서 이과를 전공하다 철학으로 옮겼고, 그가 박사학위를 한 들뢰즈도 과학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책에서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했던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진행돼온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최신 연구 성과를 꼼꼼히 살핀다. 그는 “실제 인공지능 연구에 대해 모른 채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인공지능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며 “인공지능을 의인화해 지레짐작하는 게 그에 대한 공포를 퍼뜨렸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현장의 언어로, 가능한 한 쉽게 정리했다”고 말한다. 책은 이어 인공지능이 구현하려는 인간지능의 정체를 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살펴본다. 그는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과 마음을 연구하는 인간지능은 관련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며 “어쩌면 인간지능을 모델로 하지 않는 편이 인공지능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능은 생명 진화의 마지막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으로 진화론적 접근을 해야 한다”면서 “인간지능을 다루려면 몸과 마음의 관계,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책은 플라톤과 데카르트를 통해 서양의 전통적인 몸과 마음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고, ‘인과(因果)’ ‘시간’ 등의 철학적 근본 문제도 끌어온다.

스티븐 호킹과 빌 게이츠 등 저명한 인사들이 묵시록적 ‘디스토피아’의 불안을 쏟아내는 ‘초인공지능’ 출현의 가능성을 김 씨는 일축한다. 그는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짜는 알고리즘인 건 맞지만, 알고리즘을 짜는 알고리즘은 정작 인간이 짠다”며 “마음의 몇몇 기능을 구현하는 뇌의 부분들 또는 커넥톰을 프로그램에 복사해 넣는 것은 상상에서나 있는 일이며 안심해도 좋다”고 말한다. 다만 인공지능 채팅봇 테이(Tay)가 막말을 쏟아내 개발이 중단된 것이 네트워크 컴퓨터에 인간이 개입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학습시킨 때문이듯, 인간이란 ‘버그’가 더 골칫거리자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대처할까. 김 씨는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 하는 질문이 이 강의의 목적이었다”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한마디로 창조적인 일은 인공지능의 몫이 아니다. 창조성은 긴 우주와 생명 진화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해온 것으로, 진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